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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지만, 한국어가 어렵다.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글 쓰는 일을 했는데도 그렇다. 언젠가 전공 수업 중 교수님이 하셨던 말 중 아직도 기억 나는 말이 있다.

"규칙과 불규칙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규칙이고, 예외적으로 가끔 불규칙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어는 워낙 불규칙이 많아 뭐가 규칙인지도 모르겠다."

교수도 인정할 만큼 예외가 많고, 복잡한 언어여서 그랬을까. 나는 전공공부를 하면서 재미를 느낀 적이 별로 없다. 무수한 예외를 외우면서 '한국어는 왜 이렇게 예외가 많아서 사람을 힘들게 할까?' 하는 생각에 짜증을 내곤 했다. 이후 한국어능력시험을 준비할 때도 한국어공부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어원 알면 재미있는 한국어

하지만 <한국인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문 속 언어지식>(장진한 지음, 행담출판 펴냄)을 읽으면서 한국어공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한국인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문 속 언어지식> 표지
 <한국인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문 속 언어지식> 표지
ⓒ 행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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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어의 어원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그 이야기가 꽤 흥미롭다. 예를 들어 '흥미본위의 뜬소문'을 뜻하는 가십은 본디 신과 관계있는 단어다.

가십(gossip)을 고대영어에서는 'godsibb'이라고 썼는데 god은 '신', sibb은 '~에 관계가 있다'는 뜻으로 godsibb은 '신과 관계있는 사람', '신의 혈연자'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대부(godfather)'라는 뜻으로 사용되다가→허물없는 사람→부담 없는 대화→뜬소문이라는 뜻으로 변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인 스튜어디스도 원래 '돼지 우리를 망보는 사람'이란 뜻의 'stigweard'에서 유래한 단어다. 이 말이 훗날 '영주의 집사', '단체의 지배인' 등으로 쓰이다가 '항공기 승무원'으로 변했다.

메이지 정부가 비유적으로 사용한 혈세라는 말을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들의 피를  외국에 파는 것으로 오해해 '징병령반대일규'라는 무장봉기가 발생한 일화도 흥미롭다. 익숙하지 않은 비유가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왜'를 가르쳐주는 국어책

생각해보면 한국어공부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많은 경우 '왜'가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이런 규칙을 세웠고, 왜 이 단어는 예외인지를 알 수 없으니 달달 외워야 했고, 그런 공부가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단어의 어원을 상세히 풀이함으로써 재미는 물론이고 그 단어를 '왜' 그렇게 써야 하는지도 가르쳐준다.

예를 들어 장본인은 '나쁜 일을 빚어낸 바로 그 사람'이라는 뜻인데 국어사전을 봐도 왜 장본인이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책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장본은 고대 역사가들이 중요한 문서에 특별한 기록을 할 때 그 서술로 인해 큰 사단이 일어날 것에 대비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적어놓은 일종의 비밀 장부다. 뭔가 떳떳하지 못한 일과 관련해서 장본을 만들 때가 많았기 때문에 장본인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게 됐다.

'힘을 도와서 더 자라게 함'이라는 뜻을 가진 조장도 국어사전만 봐서는 왜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는지 알 수 없다. 역시 어원을 살펴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조장은 본디 <맹자>에 나오는 말로 한 농부가 논에 볍씨를 뿌린 후 자라는 것 같지 않자 모를 조금씩 잡아당기고는 "모가 자라도록 도와줬다"고 한 데서 비롯한 말이다. 물론 농부가 잡아당긴 모는 모두 말라 죽었다.

단점은 자의적 기준

이 책도 단점은 있다. 저자는 '인디언' 항목에서 15세기 유럽인들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서술하는데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된다. 제프리 버튼 러셀은 <날조된 역사>에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수많은 학자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시기인  15세기 초반에 5명의 작가가 둥근 지구를 부정했으며 다른 몇 사람은 분명한 입장을 취하지 않거나 그 문제에 무관심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거의 만장일치로 지구가 구체라는 사실을 표명했고 15세기 말쯤에는 모든 의심이 자취를 감추었다. - <날조된 역사> 63쪽 

실제로 콜럼버스가 제안한 항로의 실용성을 검토한 왕실위원회는 콜럼버스에 대한 여러 반론을 제기했지만, 그 가운데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은 없었다고 한다. 이는 워낙 널리 퍼진 통념이다 보니 단순한 실수라고 이해할 수 있지만 아쉬운 대목이다.

또 일본식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문제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듯하다. 저자는 일본어에서 나온 '무대포'는 '막무가내'나 '무모함' 등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지만, '빠따'는 '몽둥이'로 바꿔쓰기에는 어감이 다른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감은 말 그대로 느낌이기 때문에 어감을 기준으로 말을 바꿀지 말지 결정하면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무대포' 대신으로 제시한 '막무가내'와 '무모함'도 뜻은 비슷할지 몰라도 어감이 같은지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힘들다. 근본적으로 어감을 완벽하게 살리면서 다른 말을 쓸 수 있는지 자체가 의문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어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단어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 단어를 그렇게 써야 하는지도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왜'가 없는 한국어공부에 질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한국인이면 반드시 알아야 할 신문 속 언어지식

장진한 지음, 행담(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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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