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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 있다. 삼십대 중반이지만 내가 자라던 때와는 너무 다른 요즘, 아이들을 키우며 그들만의 세상을 나도 새로이 경험한다. 아이들의 문화랄 것이 특별히 없던 시대, 나는 그저 어른들의 세상을 기웃거리며 빨리 어른이 되기를 꿈꿨다. 이젠 다르다. 아이들도 제 위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접하고,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다.

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어린이 도서를 접했다.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다양한 내용, 작품 같은 그림에 많이 놀랐는데 어린이 도서도 마찬가지였다. 봉사로 이 주에 한 번씩 학교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책을 한 권씩 빌려온다. 다양한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의 독서 독립을 미루던 나는 안 되겠다 싶어진다. 아이 스스로 이 책들을 느낀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얼마나 달라질까.

책이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은 옛말이다. 요즘 책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담아내어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느낌이다. 뒤통수 맞은 독자가 어떻게 대처할지는 온전히 독자인 우리의 몫이다. 우리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려줄 책, 바로 유은실 작가의 <멀쩡한 이유정>이다.
 
지금도 우리 집은 문제투성이다. 나는 훌륭한 어른이 되지 못했고, 가족이 겪는 문제를 거의 해결하지 못한다. 하지만 더 이상 멀쩡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도, 집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유정이만 했을 때 그걸 알았으면 어땠을까? 아마도 멀쩡해 보이려고 애쓰는 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지금도 멀쩡해 보이려고 무진장 애쓰는 어린이가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편해졌으면 좋겠다.
 
책 서두, 작가의 말이다. '멀쩡한 이유정'이라는 제목을 보고 유정이는 왜 멀쩡하지 않을까 궁금했던 나는 작가의 말을 읽고 하늘아래 멀쩡한 것이 있을 수 없음에 마음이 아득했다. 고단한 삶의 과정을 지나며 체득하는 진실을 이처럼 슬며시 알려준다면 같은 삶일지라도 아이들의 마음이 덜 고단하지 않을까?
 
 유은실, <멀쩡한 이유정>
 유은실, <멀쩡한 이유정>
ⓒ 푸른숲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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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의 말대로 '엉망진창인 세상을 살아가는 문제투성이 얘기 다섯 편'을 들려준다. '할아버지 숙제'는 할아버지가 살아온 얘기를 적어오라는 숙제를 하는 경수의 이야기다. 친구들의 할아버지 자랑에 풀이 죽은 경수는 할머니, 어머니에게 할아버지에 대해 묻는데 친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술주정뱅이였고, 외할아버지는 노름을 하시다 결국 병으로 돌아가셨단다.

어른들이야 흔한 이야기지만 그것을 처음 듣는 아이는 충격이 크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유명하다며 큰 소리 치던 명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 일 모두 멀리서는 그 진실을 알 수 없는 법이다.

'새우가 없는 마을'은 읽다보면 눈물이 찔끔 난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빚지고 도망간 기철이, 칠 년째 생활 보호 대상자인 할아버지와 살고 있다. 짜장 라면 여섯 개 값이나 되는 짜장면은 엄두도 못 내지만 손자의 부탁에 할아버지는 가을 내내 모은 빈 병을 팔아 중국집으로 향한다. 두 사람이 짜장면을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읽는 내내 마음이 찌릿하다.

그리곤 이내 궁금해진다. 이런 상황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떤 마음이 생겨날까? 여러 가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텔레비전보다 훨씬 가깝고 애잔하게 느껴지리라.

그리고 그럴 수도 있다는 것, 그러한 삶을 보며 마음 짠해 지는 것, 그렇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멀쩡한 이유정>은 짧은 이야기지만 아이들 마음에 묵직한 무언가를 던져준다.

할아버지는 겨울 내 모은 빈병을 팔아 왕새우도 사주러 나서지만 시내 대형마트에 가야 사먹을 수 있다는 말에 낯선 세상에 용기내지 못하고 결국 돌아선다.

이 책이 가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남과 다른 나, 부모가 없는 빈자리를 느끼는 아이, 부모의 틀에 갇혀 답답한 아이 등 어린이가 좌절하거나 힘들어 할 수 있는 상황들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외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아이가 남들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하라고 교육하는 책이 아니다. 자기만의 어려움이 있는 아이에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삶이란 원래 그러한 것임을 조금 더 빨리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다양한 상황의 이야기들을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인 상황들로 그려낼 수 있는지 작가에 관심이 간다.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어쩌면 '멀쩡한 이유정'은 작가 유은실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어 자기처럼 어리석게 살지 말라 이야기 하는 작가는 어른다운 어른이다. 여전히 아픔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저 작가가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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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세상을 배우고 싶은 두 아이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