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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잠시 A와 B가 되었던 줍냥이의 사랑스러운 표정.
  아주 잠시 A와 B가 되었던 줍냥이의 사랑스러운 표정.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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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끼리 근황을 주고받는 메신저 단체채팅방(일명 '카톡방')에 아들이 보낸 사진과 글이 떴다. 생후 한 달쯤이나 지났을까 싶은 새끼고양이 두 마리다.

"공사판에서 주움."

메시지를 확인한 나와 남편, 딸이 각자의 공간에서 이모티콘이나 글을 올렸다. '어미가 찾을 텐데 새끼가 있던 자리에 다시 놔줘라', '카페에 올려서 입양할 곳을 알아봐', '지금 뭘 먹고 있어? 귀는 깨끗해? 화장실 준비는?' 등.

대학 인근에서 자취 중인 아들은 새끼고양이를 데리고 온 즉시 밥(사료)과 모래를 준비했단다. 두 마리가 함께 있으니 집을 비워도 부담이 덜 하고 서로 별탈 없이 잘 지낸다고 했다. 내가 고양이 털 빛깔로 '깜냥'이와 '누렁이'이로 표현하자, 식구들은 그렇게 이름으로 부르면 정드니까 A와 B로 하잔다. 아들은 한창 시험기간인데 어쩌다 길고양이들이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주워 온 곳이 공사장이어서 데려오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었단다.

우리는 저마다 속한 모임의 카페나 단체 카톡방에 깜냥이와 누렁이의 사연을 올렸다. 시간이 얼추 지나 한 지인한테 연락이 왔다. 검은 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고 싶은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려달란다. 아들은 두 마리가 같이 입양되는 줄 알았다가 실망했다. 깜냥이가 입양되고 누렁이가 혼자 남으면 우리 '상냥이'와 같이 키워야겠다고 나는 내심 마음먹고 있었다.
  
    꽃보다 더 예쁜 상냥이
  꽃보다 더 예쁜 상냥이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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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프린터 위 박스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해서 아예 '상냥이 쉼터'라고 해놨더니 그곳에 알맞게 자기 몸을 맞춰 들어간다.
 컴퓨터 프린터 위 박스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해서 아예 "상냥이 쉼터"라고 해놨더니 그곳에 알맞게 자기 몸을 맞춰 들어간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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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수가 조금 넓어진 상냥이 쉼터박스, 어쩜 자기가 들어갈 자리라는 걸 아는지. ^^
  평수가 조금 넓어진 상냥이 쉼터박스, 어쩜 자기가 들어갈 자리라는 걸 아는지. ^^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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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이는 작년 가을, 아들이 집 근처에서 '냥줍(길에서 고양이를 줍는다는 뜻)'했다. 어미가 주변에 있을까봐 두고 봤는데, 이틀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아무래도 상냥이가 자기를 선택한 것 같다면서 정식 보호자가 됐다. 아들의 가운데자 이름과 길고양이의 냥 자를 붙여 '상냥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지난 겨울방학 때, 상냥이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됐다. 마치 신생아를 맞이하는 것처럼 식구들 관심은 온통 상냥이에게 쏠렸다. 삼색 털에 암컷인 상냥이는 저를 쓰다듬기라도 하면 손을 물었다. 어미한테 옮았는지 귀에는 진드기가 있었고, 엉덩이가 앙상할 정도로 영양 상태도 부실했다.

두 애가 번갈아가며 상냥이를 데리고 병원에 드나들었다. 진드기 치료를 받고 영양제를 구입했다. 온라인을 뒤져 사료와 별개로 습식사료 캔과 짜먹는 닭고기맛 간식, 건빵에 별사탕 골라먹듯 사료에 넣어주는 맛과자 등을 샀다. 장난감은 흔들면 반짝이며 팔랑거리는 것과 불빛을 따라 뱅뱅 돌게 하는 것을 준비했다.
  
    동그라미가 된 상냥이
  동그라미가 된 상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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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바구니에 들어간 상냥이.
  빨래바구니에 들어간 상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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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하고 와서 잠시 망토냥이 되었던 상냥이. 병원에서 플라스틱 깔때기를 해줄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움직이기 좋다.
  수술하고 와서 잠시 망토냥이 되었던 상냥이. 병원에서 플라스틱 깔때기를 해줄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움직이기 좋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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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이가 어미로부터 받아야 할 '사회화'가 덜 된 만큼 식구들은 세심하게 관찰하고 보살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상냥이 울음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알고 보니 발정이 난 것. 중성화 수술은 불가피했다.

수술을 마친 날, 플라스틱 깔때기가 상냥이 목에 둘러 있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한 것 같았고, 털 고르기를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이었다. 허공에서 계속 몸짓만 하는 게 안쓰러웠다. 딸은 헝겊으로 된 에코백을 잘라 플라스틱 깔때기를 빼고 대신 씌웠다. 목 둘레가 번거롭긴 해도 훨씬 움직임이 유연했다. 소독하고 약을 먹고 수술한 곳의 실밥을 풀고 병원에 가는 일을 겪으면서, 상냥이는 점점 상냥스럽게 변해갔다.
 
     화장실에 들어간 식구를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상냥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덩어리.
  화장실에 들어간 식구를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상냥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덩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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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냥이 이쁜짓!! 이때 배를 만져주면 싫어한다는 걸 '집사'들은 알지요~
  상냥이 이쁜짓!! 이때 배를 만져주면 싫어한다는 걸 "집사"들은 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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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무쌍한 상냥이. 장롱과 천정은 물론 여닫는 문 위로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전생에 타잔이었을 듯. 나무를 타고 놀아야 하는데.
  변화무쌍한 상냥이. 장롱과 천정은 물론 여닫는 문 위로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전생에 타잔이었을 듯. 나무를 타고 놀아야 하는데.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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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이의 '야~옹' 하는 소리는 상황에 따라 감이 다르다.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냉큼 현관 앞으로 나와 꼬리를 바짝 세운다.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 내가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라는 표정으로 자기 몸을 슬쩍 비빈다.

간식을 줄 거라는 건 소리로 알아채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의 눈빛은 애절하다. 이제 저음으로 '앉아!'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간식을 기다리는 자세'로 앉아 기다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방울 달린 쥐장난감을 물고 와서 '호~옹'한다. 제 딴엔 전리품을 내세우는 것 같다. 때로는 냉정하게 토라져서 혼자 고독한 뒷모습을 보인다. 식구들이 얼굴을 자기 얼굴에 들이밀면 젤리 같은 분홍 손바닥으로 살살 토닥인다.

상냥이를 얼추 사람으로 보자면 질풍노도의 18세에 해당된다. 상냥이와 함께하며 우리의 생활영역은 예전과 달라졌다. 문이 열린 어느 곳이든 침범하며, 책상 위는 말할 것도 없고 컴퓨터, 책꽃이, 장롱, 냉장고, 에어컨 등 물건의 꼭대기는 모두 올라간다. 털은 말할 것도 없다. 바닥 청소는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시로 '돌돌이'(테이프 클리너)를 돌리고 박스테이프나 어쩌다 돌아다니는 스티커 등으로 털을 찍어낸다.
 
    둘이 꼭 붙어있는 줍냥이 A와 B. 둘이 헤어지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둘이 꼭 붙어있는 줍냥이 A와 B. 둘이 헤어지지 말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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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깜냥이와 누렁이를 데리고 집에 온다고 했다. 상냥이가 새끼고양이들을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척 궁금했다. 그래도 새끼고양이와 수개월 차이가 있으니 어미처럼 돌봐줄지, 아니면 시샘과 질투를 할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됐다.

한 시간이 지난 후, 아들한테 연락이 왔다. 출발하기 직전, 카페에 올린 글을 보고 동아리 선배가 두 마리를 같이 입양하겠다고 했단다. 다시 가족 카톡방의 알람이 계속 울렸다. '오~정말 다행! 형제끼리 헤어지는 줄 ㅠㅠ', '누군지 모르겠지만 복 받을 거야!'이라는 글과 함께 이모티콘이 줄줄이 떴다.

어쩌다 한 식구가 된 상냥이는 고양이로 태어났으나 점점 개의 '충성심'을 보인다. 때로는 '냥냥' 대면서 간식을 내놓게 유도한다. 귀차니즘의 대가인 딸이 날마다 화장실을 청소하고 주기적으로 손톱을 깎아주며 눈곱과 코딱지를 떼어 주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렇게 '묘한 가족'이 됐다.

상냥아, 새해에도 아프지 말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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