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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쥬라기 공원>은 무려 6500만 년 전 멸종된 공룡을 복제해 되살려낸다는 상상 위에 세워졌다. 어마어마한 옛날 옛적의 과거를 더듬기 위해서는 최첨단 기술과 장비가 동원돼야 할 터. 그렇다면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백년 전이라면 어떨까. 

사료가 답이 아닐까 한다. 여기라고 기술과 장비가 필요 없겠느냐마는, 우선은 조상들이 남긴 말을 들어볼 일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드물게 조선시대 의학사 연구에 발을 들였다는 김호 작가의 <100년 전 살인사건>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사료, '검안'에 주목하는 책이다.

부제는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다. 검안이란 '검시문안(檢屍文案)'의 줄임말로서 조선시대의 살인 사건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담당 지방관이 시신 검시 결과와 함께 사건 관련자들을 심문한 내용 등을 기록하는데, 현재 500여 종의 검안이 남아 있다고 하며 책은 그 중 일부를 담았다.

검안을 통해 본 서민의 삶
 
 <100년 전 살인사건> 표지
 <100년 전 살인사건> 표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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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검안이 사회적 일탈행위를 담고 있기에 특별하고 예외적인 자료임이 분명하지만, 그 기록과 증언의 틈새마다 옛사람들의 일상이 묻어 있음에 주목한다. 또한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료의 대부분이 주로 지배층이나 남성들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반해, 검안은 소민들, 특히 다중적으로 억압받던 하층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귀한 자료라는 것이다. 

책을 통해 조선사회의 범죄와 처벌 양상뿐만 아니라 당시의 생활상과 윤리의식까지 엿볼 수 있다. 인명이 달린 흉악한 범죄가 등장하니 어째 으스스한 순간도 있지만, 책은 그보다 좀 더 복잡한 심정에 빠져들게 한다. 읽는 내내 놀랍고, 또 착잡했다. 말하자면 범죄물이지만, 스릴러보다는 가슴 미어지는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시대적 상황은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저자 역시 처음 검안을 접했을 때 적잖이 놀라고, 슬프고, 흥분하고, 분노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평범한 소민들의 삶에 집중해 '역사 저편의 역사'를 길어올렸다. 책은 검안 속에 깃든 민초들의 일상은 물론, 그들의 신산했던 삶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저자의 마음을 오롯이 담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살인사건은 엄중히 다뤄져 통상 두 차례, 때에 따라 3차 혹은 그 이상의 조사도 실시했다고 한다. 주로 시신의 외상과 색을 살폈는데, 지금의 눈으로 보면 과학적이고 비과학적인 모든 조사 방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단, 시체가 부패했거나 죽은 사람의 친인척의 요구가 있는 경우는 검시를 생략하기도 했다고 한다. 

책엔 16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그 시작은 가정 내 폭력이다. 내용은 이렇다.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남편이 아내를 죽인다. 그녀의 부정에 대한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범행도구는 밝혀진다. 남편은 평소 개를 잡을 때 사용하던 올가미로 아내를 목졸라 죽이고 자살로 위장까지 한다.
 
"100여 년 전에도 폭력은 사회의 작고 내밀한 집단에서 자주 발생했다. 그리고 쉽게 은폐되었다. 특히 가족 구성원들 간 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집 안에서 매 맞는 여성들, 그리고 처첩 간의 갈등은 현존하는 수백 건의 검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이다. 당시 여성의 지위가 높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사연은 가슴 아프다." (p45)

가정 밖이라고 안전했으랴. 한 파락호는 강간에 실패하자 여자를 살해하고 여우에게 홀렸다고 변명한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죽은 여인이 자신을 유혹했고 자신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책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술을 탓하며 감형을 구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고 하니, 이 낯설지 않음이 씁쓸하다. 

'분노할 의무' 가르치고자 한 정조

여자만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니다. 남편을 죽인 여자도 등장한다. 그런데 살인자가 된 그녀를 살인으로 응징한 자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그녀의 생모다. 이 사건을 맡은 군수는 친모의 살인 행위를 나라 사람 모두가 통쾌히 여길 것이라고 논술하고, 친딸을 죽인 어미 역시 조금도 애석하지 않다고, 패륜은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항변한다. 

저자도 주지했듯, 검안은 일탈행위를 담고 있기에 특별하다. 그러나 단지 개인의 일탈일까. 책에 따르면, 정조는 사람다운 행동을 강조하며 전 인민에게 '정당한 분노'와 '분노할 의무'를 가르치고자 했다. 그는 김은애의 전기를 지어 백성들에게 나눠줄 것을 명하고, 왕명을 받든 이덕무는 <은애전>으로 그녀를 칭송한다. 김은애는 자신이 음탕하다는 소문을 퍼뜨린 노파를 칼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자다.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고, 이를 장려하는 사회. 그 배경에는 성리학이 있다. 저자는 조선 전기에 사족을 지배하던 성리학적 이념이 19세기 말에 이르자 거의 모든 인민의 마음 속에 '감정의 체제'로 자리잡았음에 주목한다. 장삼이사들은 '인간의 조건'에 충실하려고 한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에 토대를 둔 자율적 도덕 공동체를 목표로 삼았으나, 그 폐단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인간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도 그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항변하는 역설이야말로 성리학의 세속화에 따른 감정 과잉과 인정 투쟁의 생생한 역사 그 자체이다." (p199)

역설적이게도, 성리학의 지배체제에 성실하게 순응하는 소민이 늘어갈수록 성리학의 강고한 지배가 무너질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한다. 소민들은 현실이 이상으로부터 너무 멀어지자 변혁을 꿈꾸었고 그렇게 조선은 근대로 향해갔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의 검안에 전통을 지속하려는 의지와 변화에 대한 갈망이 혼재함을 짚는다. 

책을 읽고 나니, 문득 백 년 뒤의 후손이 들여다볼 우리의 사건사고에 신경이 쓰인다. 그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음은 물론이다. 각종 혐오 범죄, 살인까지 이어진 가정 폭력, 나아가 '기업 살인'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검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현재를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현재에 이르는 과거를 탐구하고 현재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을 이해함으로써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역사학은 과거에 침잠하지만 과거를 속박하지 않고, 과거를 이해하지만 상대화한다. 역사가는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비난과 자학이 아닌 희망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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