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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에 도전했었다.
 채식에 도전했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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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나의 가장 큰 화두는 '채식'이었다. 봄부터 채식을 시작한 뒤 적어도 하루 세 번은 빠짐없이 생각해야 했다. 아무거나 잘 먹는 것을 자랑으로 알고 살아온 내게, 채식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일이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메뉴를 고민하고, 재료를 확인해야 했다. 그만큼 자주, 긴 시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상 채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완벽한 채식을 한 기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잠시 시도한 적도 있으나, 떡볶이 속 어묵과 빵은 결국 포기하지 못했다. 완벽하게 배제한 것은 오직 육류일 뿐, 우유·계란 등의 동물성 식품과 해산물을 섭취했으니, 이른바 '페스코'로 분류된다. 

나의 채식 시도는 결국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로 끝났다. 반 년 넘게 육류를 먹지 않았으니 성공이며, 결국 먹었으니 실패다. 소위 '정신 승리'를 하고자 절반의 성공을 짜내는 것은 아니다. 실패라고 결론을 내리면, 앞으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게 우려되기 때문이다. 가령 이렇게. 

"채식에 실패했어요. 지금은 고기를 먹는다는 뜻이죠."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간 나의 채식 시도를 아는 지인들은, 이제 '먹느냐 먹지 않느냐 하는 극단적인 방법 말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권하기도 한다. 일면 합리적으로 들린다. 얼른 그 말을 받아들여 좀 더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뿌리 깊은 육식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7개월 만에 고기를 먹었다고 말했을 때, 친구 하나가 대뜸 말했다. 

"그 정도면 너 충분히 했어!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삼겹살 구워 배터지게 먹어보자!" 

"뭘 먹어요?"라는 질문

자학하는 내게 건네는 위로이기도 했으나, 동시에 그간 내가 느낀 압박의 또 다른 형태이기도 했다.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은 내가 채식을 중단하기를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권했다. 나는 아직 채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데, '융통성을 발휘해' 고깃집에 가 전처럼 고기를 구워 먹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채식 중단이 아닐까. 채식을 하는 동안, 육식은 섭식인 동시에 문화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물었다. 

"그럼 대체 뭘 먹어요?"

그 외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이게 문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단지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한 것뿐이지만, 다수가 아닌 소수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전보다 자주 생각하게 됐다. 굳이 대답을 하자면, 먹을 것은 많다. 고기만 제외할 뿐. 채식을 하기 전에도 나는 고기를 매일 먹진 않았다.

그렇다고 채식을 하는 것이 쉬웠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식당에서 일일이 식재료를 묻고, 확인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서비스라며 차돌박이 된장찌개가 나왔을 때는 당혹스러웠고, 집으로 초대한 지인이 나를 배려해 고기를 넣지 않았다며 치킨 스톡으로 육수를 낸 쌀국수를 내줬을 때도 울고 싶었다. 

호의를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음식은 골고루 잘 먹어야 한다, 음식에 대해 캐묻거나 까다로운 요구를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 등 고정관념이 나를 시시각각 압박했다. 육류만 배제해도 이럴진대, 해산물과 동물성 식품 모두를 제외한 엄격한 채식을 했다면 어땠을지, 나로서는 눈앞이 캄캄하다. 

나는 육식이 죄악이라거나, 채식만이 옳다고 주장할 생각이 없다. 무엇보다 그럴 자격이 없다. 다만, 채식이 내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실천하고자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나이므로, 채식을 오랫동안 실천하는 사람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존경한다. 내겐 쉽지 않은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이니까. 

채식을 바라보는 시선

그러나 채식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의 눈은 나와 다른 듯하다. 채식에 관한 내 기사가 게재된 후, 포털 사이트에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관련 기사 : "나 채식해" 그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선플보다는 악플이 훨씬 많았다. 식물은 생명이 아니냐며 채식이 차별적이라고 폄하하는 말은 빠지지 않았다. 실생활에서도 몇 번 들은 말이다. 

굳이 답하자면, 당연히 식물도 생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구마를 캘 때와 개를 죽일 때의 감정이 다를 것은 내겐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채식을 시도할 때, 나는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다. 집안에 바퀴벌레가 보인다면 주저없이 박멸을 궁리할 게 바로 나다.

다만 '나를 괴롭힌 적도 없고,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도 않은 동물을, 그것도 죄의식을 느끼면서까지 먹어야만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다른 채식주의자들의 생각은 알지 못한다. 나는 그저 나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 나는 고통을 토로했는데, 사람들은 악플을 달았다. 악플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채식하면 우월한 거 같냐? 웃기지마. 인간은 원래 잡식이야. 무식한 소리 하기는."
"채식하는 사람들 보면 다들 자기 건강 때문에 하는 건데 윤리적인 이유로 포장한다. 꼴값이야."


잘난 척 하거나 위선 떨지 말라는 말로 요약되는데, 나로선 의아할 뿐이었다. 왜 채식이 우열의 개념과 엮이는지, 건강 때문에 채식을 시작했으나 윤리로 사고가 확장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비난받아야 하는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채식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았고 단지 내 고민과 체험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왜 이들은 화를 내는가. 

어쩌면 비난 퍼붓는 그들도...

놀란 것도 잠시. 문득,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됐다. 어쩌면 이들도, 육식에 대한 원초적인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채식이라는 단어가 그들 안에 잠자고 있던 감성을 흔들어 깨워 발끈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날선 댓글들이 밉지 않았다. 오히려 인사를 건네고 싶어졌다. 반갑습니다 동지들이여, 하고. 

물론 악플들 사이에는 빛나는 선플들도 있었다.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는 늘 감사할 따름이다. 생각보다 큰 힘을 얻는다. 단순히 먹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던 채식은,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동물과 환경에 대해 이전보다 큰 관심을 갖게 됐고,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엉뚱한지 모르지만, 채식 덕분에 '다름'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늘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것이 나의 애정법이라 생각했지만, 그 이해 또한 내 기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이해하지 못해도 지지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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