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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운동을 하다가 무릎을 다쳤다. 연골 튼튼하던 학창시절에도 달리기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평생에 처음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면서 시속 10킬로미터를 훌쩍 넘겨 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건강해지겠다고 한 운동으로 부상을 입어 걷기조차 불편해지니, 참 미련한 일을 했구나 싶었다.

악 소리나게 아프진 않았지만 거동이 불편해 가까운 병원에 갔다. 다행히 집 근처에 정형외과는 여럿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내가 병원을 세 군데나 찾아가게 될 줄은 몰랐다. 첫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하자, 의사는 내 무릎을 보지도 않고 어떤 검사도 없이, 환자인 내게 물었다. 

"물리치료 해 드려요?" 

딱히 건강 체질은 아니어도 무릎이 아픈 것은 처음이다.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지도 모르는데 물리치료만 받으면 되는 걸까. 일단 받긴 했으나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조금 큰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간 날은 무릎 전문의의 휴진. 

잘은 모르지만 대단한 부상은 아닌 듯해 다른 분께 진료를 받고 싶다고 말해봤지만, 접수도 할 수 없었다. 어깨면 어깨, 허리면 허리, 각 부위의 전문가들이 철저히 본인의 전문분야만 다룬단다. 진료도 받지 못하고 아픈 다리 품만 더 팔며 세번째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제대로 찾았다. 문진 후 엑스레이를 찍었고, 의사가 내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아픈 곳을 짚어냈다. 만지는 순간 완쾌가 된 것도 아니고 하물며 치료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 아픈 곳을 찾아 바른 진단을 받은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쾌감이라니. 몇 주간 약을 먹고 다리는 싹 나았다. 

내 몸 아픈 것은 내가 잘 안다고들 하지만, 우리에겐 전문가가 필요하다. 내 고통을 알아보고, 정확히 진단하고, 아픈 곳을 낫게 해주는 의사. 여기서 의료 실태를 성토할 생각은 없고 잘 알지도 못하지만, 이 당연하면서도 간절한 바람이 때로는 기대와 어긋나곤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래도 내과, 치과, 정형외과 등등은 후기라도 찾아볼 수 있지, 정신과는 세상 모든 정보가 모인다는 맘 카페에서도 후기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니 더욱 난감한 일이다. 그렇다면 8년간 7명의 정신과 의사를 만나봤다는 자칭 '베테랑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치료를 받을 순 없지만, 팁을 얻을 순 있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책표지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책표지
ⓒ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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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의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저자 본인이 난산으로 고생한 뒤부터 앓아온 '좌충우돌 현재진행형 우울증 치료기'다.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니 눈물 콧물 쏙 빼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천만의 말씀. 책엔 유머가 가득하다.  

책 날개부터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하니, 저자를 소개하는 첫 문장은 이렇다. 

"본명이다." 

본문 내내, 슬픈 이야기를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최적의 무게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이 한껏 발휘된다. 얼마나 고통을 겪은 뒤에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지지만, 일단은 이 명랑함이 나로선 퍽 고맙고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몸이 아프면 얼른 병원에 가라고 등을 떠민다. 잘 먹고 잘 쉬면 나을 감기에도 병원을 찾는 것이 우리네 익숙한 풍경 아니던가. 그런데 유독 마음의 병만은 선뜻 병원을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병이 난 환자를 탓하기도 한다. 

"그렇게 약해 빠져서 험한 세상 어찌 살겄냐."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야."(p13)


저자의 주변도 그랬고, 저자 역시 스스로를 그렇게 다그쳤다고 한다. 그러다 벼랑까지 몰렸을 때, 도저히 이렇게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정신과를 찾았다고. 세상의 편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고통을 겪어냈던 세월은 대체 누굴 위한 것인가. 부디 이 책을 보는 그 누구도, 그러지 않기를. 

세상 어느 직종에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겠지만, 의사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녀가 만난 첫번째 의사는 내 혈압마저 솟아올라 뒷목을 잡게 한다. 의학적 능력이 뛰어난지 어떤지 나로선 확인할 수 없으나, 대인관계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매너가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괜찮은 의사도 있다. 상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환자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환자를 안심시키는 의사. 그러나 치료가 3년차에 접어들고 상담이 반복될수록 과거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부담스러워졌다고 한다. 겨우 앉은 딱지를 뜯는 것만 같았다고. 

그녀로선 최적의 의사를 만나기도 한다. 나마저 야호, 외칠 뻔했다.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진료. 단순한 위로가 아닌, 용기와 의지를 북돋아주는 의사. 그러나 그의 병원 이전으로 어쩔 수 없이 이별해야 했다니, 로미오와 줄리엣 못지 않게 내 마음이 쓰렸다. 

그 외에도 의사라기보다 바텐더처럼 약 처방에 매진하던 의사, 어찌나 차분한지 로봇 같은 의사, 자식 이야기하며 맞장구 칠 수 있던 의사 등 여덟 해 동안 저자가 만난 의사들과 이에 따른 치료기가 이어진다. 저자의 약물 의존 경험과 약을 중단하려는 시도 등도 진솔하게 담겨있다. 

에필로그엔 진료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해 정신과로 가는 문턱을 낮추기도 하지만, 저자는 정신과가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주는 완벽한 정답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은 용기를 내 병원에 갈 것을 저자는 권하고 있다. 병원에 가면,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의 진심어린 조언으로 마무리된다.

"우울증은 치료기간이 길다.  당신도 우울증으로 고민하고 있다면 부디 자신과 잘 맞는 의사를 찾을 수 있기를. 그래서 소소한 행복과 삶의 기쁨을 되찾으시기를."(p173, 에필로그)

나는 늘, 자신의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품는다. 부디, 저자의 목소리가 꼭 필요한 곳에 가 닿기를 희망한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버텨내며 자신에게 맞는 병원과 의사를 찾자. 우리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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