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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어린 시절 동네의 또래 아이들과 함께 힘차게 그 노래를 부르며 놀곤 했다. 양편으로 나뉘어 서서 상대편을 마주하고, 우리편끼리는 손에 손을 잡는다.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노래를 부르지만 결국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가위바위보에 많이 이겨서 더 큰 패거리를 이루는 팀이 이기는 놀이다. 

예나 지금이나 게임도 좋아하지 않고 큰 소리로 노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다 한 번 시작하면 꽤 열을 올려가며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힘은 꽤 컸다. 어쩌다 한 편이 된 것뿐인데도 우리끼리는 뭔가 모르게 끈끈해졌고, 우연히 상대편이 된 아이들과는 눈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우리'라는 단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마치 울타리처럼 둘러싸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과하게 사용하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배척할 수 있지요. 이 울타리는 울타리 안의 사람과 울타리 밖의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이때 울타리는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지만 그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차단막이 됩니다."(p19)

울타리 밖의 사람들을 밀어내는 말, '우리' 
 
 <차별의 언어> 책표지
 <차별의 언어> 책표지
ⓒ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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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업 교수는 <차별의 언어>에서 한국인이 '우리'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는 것에 주목한다. 우리나라, 우리말, 우리 집, 우리 엄마, 우리 아빠는 물론, 심지어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는 말까지도 쓰이는 실정이다. 외국어로 옮기면 어색해지기 쉬운 표현인데, 유독 한국에서는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의 '우리주의'를 비롯하여 일상 언어에 담긴 한국 사회의 차별 의식을 고찰한다. 다문화시대에 역행하는 잘못된 언어는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을 인용하며 잘못된 언어를 쓰면 잘못된 사고를 할 수도 있음을 설명하고 이를 경계하고자 한다.

'우리주의'는 한국의 집단주의 성향과도 맥을 같이 한다. 집단주의 성향은 그 자체로서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한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모두 금붙이를 들고 나왔던 것처럼, 국가와 사회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집단주의는 다른 집단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

우리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으로 다른 국가와 구분짓기도 한다. 이는 언제, 무엇으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책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04년이고, '단일민족'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33년으로, 5000년 역사 중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해방 이후 신탁 통치를 반대하고, 분단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해 우리가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강조한 바 있지만, 그 사고가 뿌리깊게 자리하게 된 것은 더 최근의 일이라고 한다. 저자는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 때 만들어지고 강조된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그 인식을 만든 주역으로 지목한다.

"날마다 민족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 사람은 자연스레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즉 국기에 대한 맹세는 개개인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맹목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와 민족에게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했지요. 단일의식을 키운 것입니다."(p58)

40여년 간 강조된 민족의식은 지나친 단일의식을 심었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받아온 다문화적 공간이고, 한국은 본래 '다문화'를 가진 '다문화사회'이며 이 사회에 사는 우리는 '다문화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문화라고 하면 외국인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사고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다문화라는 용어가 국제화,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경의 개념이 약해지고 다양한 문화들 간의 교류가 빈번해지며 생겨난 용어일 뿐, 결코 외국이나 동남아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님을 강조한다. 즉, 다문화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지, 소수의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민이었으나 난민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지나친 단일의식은 외국인 혐오증으로까지 이어진다. 책에 실린 세계가치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영국, 미국, 캐나다 등이 외국인에게 우호적인데 반해, 한국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과 함께 외국인에게 비우호적인 나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대체로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으면 외국인 혐오증이 낮았지만, 한국은 예외였다고 한다. 

그 영향일까. 독립운동의 거물 김구 선생,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도 한때 '정치 난민'이었고, 한국의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전쟁 난민'이란 이름으로 세계로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에서 난민을 가장 잘 받아들이지 않는 여러 나라 중 하나라는 것은 뼈 아픈 사실이기도 하다. 

또한 저자는 많은 한국인들이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세계 각국의 이주 노동자가 되어야 했던 과거를 짚는다. 일본의 탄광, 하와이의 사탕수수 농장, 독일의 간호사 등. 지금의 우리가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에게 보이는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지 자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저자는 다름과 틀림을 자주 혼동하는 한국의 잘못된 언어 현실을 짚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문화의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지구촌 시대를 맞아 다양한 민족이 더 활발하게 만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다문화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차별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우리의 편견을 돌아보고 성찰하게 만든다. 국민 여동생, 단일민족, 다문화가정 등의 말들이 내포하는 국가주의와 차별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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