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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에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활짝 피었다. 약사사 일원과 중머리재에서 당산나무 쪽으로 하산하는 산비탈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무등산에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활짝 피었다. 약사사 일원과 중머리재에서 당산나무 쪽으로 하산하는 산비탈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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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 저절로 느슨해지는 것은/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이 아니라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동방규(東方虯)가 지은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화친을 위해 억지로 오랑캐 흉노족에게 시집간 '왕소군(王昭君)'의 원망과 향수가 담겨 있는 시다.

양귀비, 초선, 서시와 함께 중국 고대 역사를 대변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한 사람,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이 담겨 있는 시의 한 구절인 '춘래불사춘'은 봄이 오면 뭇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문구 중의 하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라는 의미다. 분명 봄이지만, 추운 날씨가 계속되거나, 좋은 시절이 왔어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이어질 때 은유적인 의미로 더 많이 회자되고 있는 고사성어다.

요즘이 딱 그렇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가 지나고 겨울잠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어도, 정국은 꽁꽁 얼어 있고 서민들의 봄은 아직 멀리 있다. 3월 들어 연일 발령되는 초미세먼지 경보 또한 봄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래 저래 시끄러운 정국의 시계는 한참이나 뒤로 돌아가 있어도, 자연의 시계는 어김이 없다. 무등산에 봄의 전령사, 복수초가 피었는 소식을 들은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으로 산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주말에 미세먼지 상태가 보통이라는 기상청 예보가 떴다. 미뤄뒀던 산행에 나선다.
 
 임금님의 옥새를 닮은 새인봉에는 단칼에 잘린 듯 아찔한 낭떠러지 수직 절벽이 있어 암벽 등반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임금님의 옥새를 닮은 새인봉에는 단칼에 잘린 듯 아찔한 낭떠러지 수직 절벽이 있어 암벽 등반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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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에 잘린 수직 절벽, 새인봉

가까이 있는 무등산으로 향한다. 산 봉우리 모양이 '임금님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봉을 거쳐 복수초 군락지가 있는 약사사를 돌아볼 요량이다. 이번에 복수초를 보지 못하면 일 년을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무등산 증심사 버스 종점에 이르자 맑아진 하늘 덕에 봄맞이 산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많던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흩어지고, 새인봉으로 오르는 길은 한가하다. 등산로와 한동안 동행하는 실개천에서는 졸졸졸 흐르는 봄물 소리와 함께 파릇한 풀포기들이 올라오고 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계곡은 풀리고, 죽은 듯 서있던 나무들도 거세게 펌프질을 하며 물을 뿜어 올리고 있다.

나무줄기에 귀를 대보면 '쏴아' 하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봄은 무릇 탄생의 계절이다. 가을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봄은 땅으로부터 올라온다 했다. 무등의 봄은 그렇게 언 땅 녹이고 생명의 소리를 내며 땅으로부터 올라오고 있다.

모든 산들이 그렇듯이, 초입에서 일정 거리까지는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새인봉도 그렇다. 주차장에서 약 2km 남짓으로 줄곳 오르막이다. 약 한 시간 가량 올라 무등산 절경 중의 한 곳인 새인봉에 도착했다.

새인봉은 멀리서 보면 그 모양이 임금님의 옥새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인괘봉이라고도 한다. 두 개의 큰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투구를 닮은 투구봉과 뱃머리를 닮은 선두암이다. 단칼에 잘린 듯 아찔한 낭떠러지 수직 절벽이 있어 암벽 등반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투구를 닮은 투구봉
 투구를 닮은 투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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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인봉에서 내려다본 약사사 전경
 새인봉에서 내려다본 약사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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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은 산행객들의 발길을 한동안 묶어 놓는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화순의 모후산은 물론이며, 멀리 영암의 월출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미세먼지가 걷힌 광주 시가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발 아래로 오늘의 목적지 약사사가 조감도처럼 아스라이 보인다.
 
 복수초가 갈색 낙엽이 덮인 산비탈을 온통 노랗게 수놓고 있다
 복수초가 갈색 낙엽이 덮인 산비탈을 온통 노랗게 수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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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과 장수를 부르는 봄의 전령사, 복수초

서둘러 약사사로 향한다. 새인봉 사거리를 거쳐 약사사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오늘의 주인공, '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봄의 화신, 복수초(福壽草)를 만난다. 갈색 낙엽으로 덮인 산비탈을 온통 노랗게 수놓고 있다. 마치 노란 병아리 떼를 풀어놓은 듯 산비탈에서 종종 거리며 장관을 이룬다.

봄을 맨 먼저 알리는 꽃으로 보통 매화나 산수유를 들고 있지만, 이들보다 먼저 엄동설한 쌓인 눈을 뚫고 나와 가느다란 줄기에 샛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는 부와 행복을 상징하는 꽃이다. 눈과 얼음 사이를 뚫고 꽃이 핀다 하여 '눈새기 꽃' 또는 '얼음새 꽃'이라고 부르며, 꽃말은 '영원한 행복'이다.
 
 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꽃, 복수초는 미나리 아재비과 여러 해살이 풀이다
 복과 장수를 가져다주는 꽃, 복수초는 미나리 아재비과 여러 해살이 풀이다
ⓒ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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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아재비과 여러해살이 풀로 산지 숲 속이나 활엽수 밑에 한 곳에 모여 자라는 특성이 있다. 밤 사이 꽃망울을 오므리고 있다가 해를 만나는 아침에 노란 겹치마 꽃잎을 활짝 펼친다.

무등산에는 약사사 일원과 중머리재에서 당산나무 쪽으로 하산하는 산비탈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평두메에도 군락지가 있다. 지금이 절정이다.
 
 약사사 일주문 현판. 단청이 화려 하다
 약사사 일주문 현판. 단청이 화려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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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넘게 '중생들의 아픔'을 구원하는 약사사

복수초를 뒤로 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돌려 무등산의 명소, 새인봉을 정면으로 올려다보고 있는 약사사로 들어선다. 일주문의 단청이 호화롭다. 이른 봄 햇살이 가득한 경내에 들어서자 세월의 더께가 가득 묻어 있는 삼층 석탑이 약사사의 연륜을 대변하며 참배객을 반긴다.
 
 무등산 서쪽 기슭에서 천년이 넘게 광주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약사사. 대웅전과 삼층 석탑, 새인봉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약사사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무등산 서쪽 기슭에서 천년이 넘게 광주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약사사. 대웅전과 삼층 석탑, 새인봉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약사사는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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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사는 신라시대 철감선사 도윤 스님(798~868)이 847년(문성왕 9)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여 인왕사(仁王寺)라 했다. 증심사 보다 먼저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된 자료는 없다. 고려 선종 때 혜조국사가 다시 지었고, 공민왕 때 세 번째 지으면서 약사암(藥師庵)이라 불렀다.

그로부터 약 500년 후인 1856년, 조선 철종 때 관찰사 주석면의 도움과 시주로 성암과 학산 두 스님이 네 번째로 다시 지었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그러했듯이 약사사도 6·25 때 전쟁의 화마를 비켜가지 못하고 모두 불타 버렸다. 1970년대에 다시 지어 오늘의 모습을 보이며, 천년이 넘는 동안 무등산의 서쪽 기슭에서 중생들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약사사 장독대에도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
 약사사 장독대에도 노란 복수초가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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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어 있는 약사사 앞마당에는 창건 당시 세웠다는 삼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은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던 부재들을 모아서 복원하였다. 9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탑으로 추정되며 약사사의 역사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약사사에는 보통 절과는 다르게 석조여래좌상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보물제 600호다
 약사사에는 보통 절과는 다르게 석조여래좌상이 주존불로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보물제 600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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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는 특별한 부처님이 계신다. 보통의 절에는 금동 불상이 있으나, 약사사에는 경주 석굴암 에서나 본 듯한 석조불상이 있다. 대한민국 보물 제600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이다.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중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있다.
 
 약사사 나한전
 약사사 나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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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헌에 따르면 이 불상은 병마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상처와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자비로운 약사불로 짐작되며, 호남 지방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석불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른 봄햇살에 나한전 앞 홍매화도 활짝 웃고 있다
 이른 봄햇살에 나한전 앞 홍매화도 활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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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사사 대웅전 앞마당에 매화가 활짝 폈다. 임금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봉이 멀리 뒤로 보인다
 약사사 대웅전 앞마당에 매화가 활짝 폈다. 임금님 옥새를 닮았다는 새인봉이 멀리 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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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뒤편 나한전은 활짝 핀 홍매화에 반쯤 가려져 있고. 나한전으로 올라가는 길목 장독대에 피어 있는 복수초가 소담스럽다. 대웅전 마당 한쪽 끝에도 희디 힌 매화가 새인봉을 배경으로 팝콘처럼 터져있다.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아름다운 것들은 금방 사라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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