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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처음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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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6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비판 대상이 되는 것 중 하나는 '금강산 피격 사건'에 관한 김연철 후보자의 관점이다.

금강산 피격 사건은 이명박 정권 때인 2008년 7월 11일 오전 4시 50분께 또는 5시 15~20분 사이에 발생한 일로, 관광객 박왕자씨가 산책 도중에 북한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비극이다. 북한 측은 박왕자씨가 금지구역을 침범했다고 주장했고, 피해자 측은 금지구역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곳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군이 어떤 이유로 총을 쐈든 간에 박왕자씨가 안타까운 희생을 당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디서 비극을 당했든, 북한 측이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 사실이다.

김연철 향한 전희경-TV조선의 비판... 원문 살펴보니
 
금강산 피격사건, 오열하는 유가족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고 박왕자씨의 유가족이 12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다.
▲ 금강산 피격사건, 오열하는 유가족 금강산 관광 도중 북한군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한 고 박왕자씨의 유가족이 2008년 7월 12일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에 차려진 빈소에서 오열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최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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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 대해 김연철 후보자가 '비정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그를 둘러싼 비판의 요지다.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16일 논평을 통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총격 사건으로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건·사고들은 일찍 시작했어도 우리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고 금강산 관광 재개의 필요성을 역설한 사실이 밝혀졌다"라면서 이렇게 비판했다.
 
"문재인 정권과 김연철 후보자는 북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그들의 역성을 들어주고, 그들의 잘못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통일의 길, 평화의 길이라는 확신에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날 TV조선 '뉴스 7'도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가 박왕자씨 금강산 피격 사건을 '어차피 겪어야 했을 통과의례'라고 표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라며 "안보관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나온 '어차피'란 단어는 이 기사의 뒷부분에서 다시 언급된다.

김연철 후보자가 기고한 문제의 글은 인터넷판 기준으로 2010년 4월 22일 <한겨레21>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강산 관광이 5년 먼저 시작됐다면'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이 글을 읽을 때 유의할 점이 있다. 일반적인 형식의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제목 위의 "1910~2010 가상 역사 '만약에'"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만약에 이랬다면'이라는 가정 아래 지난 100년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형식의 글이다.
 
 본문에 인용된 <한겨레 21> 기고문.
 본문에 인용된 <한겨레 21> 기고문.
ⓒ 김연철,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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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듬해인 2011년 6월 김연철·함규진·최용범·최성진 공저로 발행된 <만약에 한국사>의 일부로 편입됐다. 이 책은 '미국이 이승만을 제거했다면' '5.16 군사쿠데타가 불발되었다면' 하는 식으로 가정(if)의 방법으로 역사를 뒤집어보는 서적이다. 이 책에도 <한겨레21> 기고문이 제목과 본문 그대로 들어갔다.

그런데 제목에는 '5년 먼저 시작됐다면'이 들어갔지만, 본문에서는 '9년 먼저 시작됐다면'이라는 가정과 '5년 먼저 시작됐다면'이라는 가정이 중복적으로 나타난다. 아래는 '9년 먼저' 부분이다.
 
"금강산 관광은 1998년 11월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9년 전인 1989년에 시작될 수도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북한을 방문해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합의한 것이 1989년 1월이다. (중략) 북한은 그해 7월부터 관광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겨울 공화국" 같은 정세 속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은 무산됐고,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다가 실패를 맛봤다. 그뒤 1993년 2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 후보자는 "정 회장의 도전은 실패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 꽃피울 기회도 사라졌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1998년 금강산 관광 개시 5년 전에 있었던 정주영의 정계 은퇴로 금강산 사업의 첫 번째 기회가 사라졌다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김연철 후보자는 '5년 전인 이때라도 시작됐다면'이라는 역사의 가정을 시도했다. 1989년이나 1993년에 시작됐다면 금강산 피격 사건 같은 불행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가정을 이 대목에서 한 것이다.

'일찍 시작했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

이에 대한 그의 결론은 두 갈래로 나뉜다. '금강산 관광이 9년, 아니 최소한 5년 일찍 시작됐다면 남한은 북핵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고 북한은 1990년대 후반의 경제 위기인 고난의 행군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일찍 시작했더라도, 금강산 피격 사건 같은 불행은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관광이 시작되고 우리가 겪었던 소동들, 예를 들어 금강산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는 사람, 탈북자 얘기를 꺼냈다가 억류된 사람, 교통사고로 북한 군인이 사망하고, 총격 사건으로 관광객이 사망하는 사건·사고들, 일찍 시작했어도 우리가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
 
 
 <한겨레 21> 기고문.
 <한겨레 21> 기고문.
ⓒ 김연철, 한겨레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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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 '뉴스 7'은 '어차피'라는 단어까지 삽입해서 김연철이 '어차피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라고 말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실제로 그는 '어차피'라는 표현을 그 대목에서 쓰지 않았다. 또 그는 남한 국민들이 입은 불행뿐 아니라 북한 국민들이 입은 불행도 함께 거론하면서 '일찍 시작했어도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2005년 12월 27일 현대아산 협력업체 직원이 운전 중에 북한 군인 3명을 쳐서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사건까지 함께 언급했던 것이다.

금강산 관광이 9년 혹은 5년 일찍 시작됐어도 이 같은 사고들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추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과의례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몇 년 일찍 시작했어도 사고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관련해 그는 "접촉 초기에는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상호이질적인 두 문화가 접촉하다 보면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봤던 것이다. '통과의례'란 표현이 아주 적합한 표현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는 '일찍 시작했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에서 그 단어를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연철 안보관에 문제가 있다?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 사진은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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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통과의례란 단어를 사용한 것을 두고 안보관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글을 보면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쓴 '18대 대선의 통일·외교 분야 정책 비교와 평가'라는 논문을 보면,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한 그의 인식이 일반적인 남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느낄 수 있다.

대선 가도에 나섰다가 도중에 사퇴한 안철수 후보를 포함해 박근혜·문재인·안철수의 통일·외교 정책을 비교하면서 자기 의견을 중간중간에 피력한 이 논문에서 김연철은 박왕자씨의 희생과 관련해 이렇게 강조했다.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서는 2008년 남측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 측의 사과와 재발 방지 그리고 신변안전보장 조치가 필요하다." - 한국사회과학연구회가 발행한 <동향과 전망> 2013년 10월호
  
 본문에 인용된 논문.
 본문에 인용된 논문.
ⓒ 김연철, 한국사회과학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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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역시, 북한군이 남한 관광객을 죽인 일이 잘못됐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관광 재개의 조건으로 그는 북한의 사과와 재발 방지, 신변보호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생각 역시 일반적인 상식과 가치관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위와 같은 조치가 필요함을 인식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북한이 실제로 어떤 후속 조치를 취했는지도 확인했다. 이 점은 위 인용문의 바로 뒷부분에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확인한 북한의 후속 조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2009년 8월 16일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유감을 표시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특사단, 특히 김양건 통전부장 역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된 김정일 위원장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당과 일부 언론보도에서는 김연철 후보자가 남한 국민의 죽음에 대해 비정한 태도를 보이면서 오로지 금강산 관광의 재개만을 주장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은 26일 인사청문회 때 고 박왕자씨의 아들인 방재정씨를 참고인으로 출석시키고자 신청을 해놓기도 했다.

하지만 김연철 후보자는 금강산 관광이 일찍 시작됐더라도 충돌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남북한 현실을 역사의 가정이란 방법으로 서술했을 뿐, 고인에 대해 다른 뜻을 표하지는 않았다. 또 김 후보자 역시 일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사과 및 재발 방지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공격은 그가 쓴 글의 맥락은 물론이고 다른 글을 함께 살펴보지 않은 데서 생긴 오해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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