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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 찍고 수술해야 돼요."
"수술이요?"
"뼈가 부러지면서 한 쪽 뼈가 다른 뼈 속으로 들어간 상태에요. 피가 고여 있는데 수술 안 하면 염증 때문에 후유증이 생길 수 있고 회복이 많이 늦어져요. 수술로 철심 박으면 깔끔하게 4주 정도 걸려요."
"수술 안 하면요?"
"시간이 길어지죠. 후유증으로 고생할 수 있어요."


남편과 둘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병원을 찾았다. 새로운 건물에 들어선 정형외과 전문병원이었다. 오전 11시,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응급으로 실려 간 '공주의료원'에서 찍은 내 오른쪽 어깨 CT와 엑스레이 시디를 화면으로 본 의사가 대뜸 수술을 권했다. 진료실 문을 나서자 간호사가 다가오며 말했다.

"MRI 40만 원이에요. 지금 찍으시겠어요?"
"아니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진료실 들어가실게요~."


지난 2월 명절 연휴 끝자락인 6일 오전이었다. '아무튼 명절'과 이것저것 신경을 쓰는 시기였고, 치매 증상이 있는 친정엄마 옆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바깥출입에 제약이 많은 내게 남편이 말했다. 가까운데 잠시 바람 좀 쐬고 오자고. 그래서 간 곳이 공주 공산성(公州 公山城)이다.

입장권을 구입하고 성을 올랐다. 그날은 미세먼지도 없는 파란하늘이었다. 푸근한 날씨는 눈앞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일 듯했다. 옛 산성의 운치를 더하는 깃발은 동서남북 각 방향에 따라 청룡과 백호, 주작, 현무를 배치하여 의미를 더 했다. 공주의 중심산성이었던 공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이 금강을 끼고 아기자기하게 펼쳐졌다.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길 중간쯤에서 절이 나타났다. 절 앞으로 약수터가 보였다. 걷는 동안 목이 마르기도 했다. 나는 손잡이가 있는 바가지에 약수를 받아 목을 축였다. 그때 약수를 지나쳐 가던 길을 그냥 걸었다면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남편은 내 뒤를 따라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곳에 아직 언 땅 위로 촉촉한 물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한 발짝 걸음을 딛는 바닥이 미끌하다 싶은 그 순간, 약수터 돌 받침이 순식간에 내 오른쪽 갈비뼈를 후려치는 몽둥이가 되었다. 나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불과 3초 사이, 숨통이 막혀 간신히 신음소리만 내뱉었다.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댔다.

"어머, 크게 다친 것 같아요."
"119를 불러야 해요."


남편이 내 가슴 쪽의 잠바를 살짝 들었다. 실바람이 지나가는 것 같은 가느다란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시 막히는 숨.

"여보, 조금만 참아. 119 불렀고 지금 오고 있대."

응급구조대가 출동했다. 구조대원들은 쓰러진 내 양 옆에서 각각의 깔판을 맞대었다. 깔판 위에 나를 다시 침대 위로 옮기는 신속한 움직임이 눈을 감고도 감지됐다. 눈을 떴을 때는 공주의료원 응급실이었다.

엑스레이, CT를 찍고 진통제를 넣은 수액 링거를 맞은 후 밸포팔걸이로 어깨 팔을 임시 고정시켰다. 오른쪽 어깨뼈가 부러지고 그 아래 갈비뼈 3곳에 금이 갔다. 의료원에서는 대전에 소재한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동하기를 권했다.

대전으로 옮긴 병원 응급실도 명절 연휴와 상관없이 환자들로 북적댔다. 엑스레이는 명확하지 않다 하여 다시 찍었다. 어깨부터 팔꿈치까지에 두툼한 겹수건 같은 천을 감싸자 서서히 석고처럼 굳었다. 그 위에 헝겊밴드로 가슴까지 칭칭 감아 어깨의 움직임을 고정했다.

"갈비뼈 부상은 병원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나아질 거구요. 어깨뼈 수술은 안 하셔도 돼요. 집에 가시면 일주일 후에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 찍고 과정을 보시면 될 거예요."

그래서 동네 정형외과를 찾았던 것이다. 수술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수술을 권하는 의사의 말에 설득력이 없지 않았으나 뭔가 밀어붙이는 느낌이 들었다. 진료실에서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의사는 오늘 수술이 어려우면 이틀 후에 입원하라고 했다. 늦어지면 후유증의 심각함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왔다가 수술 문제가 닥쳤다. 점심시간이었다. 일단 배가 고프니 우리는 밥부터 먹기로 했다. 식당에서 남편은 핸드폰에 입력된 전화번호를 찾아 누군가와 통화했다.

아는 분 남편이 비수술을 권하는 의사인데 그분을 만나 조언을 들어보잔다. 그곳은 정형외과가 아니고 재활의학과였다. 엑스레이와 CT 사진을 본 재활의학과 의사가 말했다.

"제가 가족이어도 수술 여부에 정말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근데, 수술 하지 않을 때는 장기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 부담은 있어요."

의사는 자분자분 성의껏 내 골절상태에 대해 의견을 표현했다. 표정이 굳어진 채 듣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생각난 듯 그가 말했다.

"저는 재활의학과라 뭐라고 말씀드릴 게 없어요. 같이 공부한 친구가 정형외과에 있는데, 열심히 해요. 잠시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게요."

의사가 정형외과 의사 친구와 스피커 통화를 했다. 골절 상태를 찍은 CD를 보낼 테니 봐달라고 했다. 그 내용을 우리도 다 같이 들을 수 있었다. 친구는 컴을 통해 내 골절상태가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말하는 전문적인 용어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왜 수술이 필요한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수술이 불가피하다면 그 의사에게 내 어깨를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40여 분 동안 밀폐된 MRI 통 속에서 나는 마치 마요네즈 빛깔에 감싸인 것 같았다.
 40여 분 동안 밀폐된 MRI 통 속에서 나는 마치 마요네즈 빛깔에 감싸인 것 같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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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의학과 의사 친구가 있는 정형외과에서 나는 생애 처음 MRI를 경험했다. 의사는 골절 상태가 어떤지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MRI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체에 고주파를 쏘아 메아리와 같은 신호가 발산되면 이걸 디지털정보로 변환해서 영상화하기 때문에 골절 상태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단다.

자석으로 구성된 장치(통) 안에 내 몸이 들어갔다. 영상기사는 기계 안에 들어가기 전 내게 헤드폰을 씌워주며 말했다.

"좀 시끄러울 거예요. 그래도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40여 분 동안 밀폐된 MRI 통 속에서 나는 마치 마요네즈 빛깔에 감싸인 것 같았다. 통 안이 온통 부드러운 미색이었다. 득득득...틱틱틱...드그드그드그드그... 뭔가 뜯고 긁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다지 거슬리진 않았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한숨 자고 일어난 것 같았다. MRI 영상을 살펴보며 의사가 말했다.
 
"수술 안 해도 됩니다. 여기 이렇게 힘줄도 깨끗하네요."


골절 7주째다. 나는 이제 두 손으로 세수를 한다. 왼손 하나로 움직이며 지냈는데, 아직 힘없는 오른손이 거드니 훨씬 수월하다. 갈비뼈는 시나브로 많이 좋아졌다. 아직 오른쪽으로 눕지는 못한다. 처음엔 화장실 물 내리는 버튼을 누르는 데도 호흡조절이 필요했다. 하품이나 기침을 할 때도 갈비뼈 부근이 울려 가슴이 통째로 아찔했다. 무심히 터지는 재채기는 정말 끔찍했다.

숨쉬기조차도 절실했던 시간. 사소하게 움직이는 모든 일상이 당연하던 때, 지금은 그 무엇도 사소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동안 범사에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몸으로 알게 되었다.

한때 119 응급차에 실려 가는 급박한 사람들은 누굴까 싶었다. 그게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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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