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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이종찬 회장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이종찬 회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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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역사에 꼭 하루만 있는 뜻깊은 이날을 앞두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건립추진위원회 이종찬 위원장을 지난 3일 만나봤다.

이종찬 위원장은 1936년생으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1981년 서울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김대중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런 그는 2005년부터 우당기념관 관장 등을 맡아 후세에 독립운동을 가치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3.1정신의 용광로, 통합의 장을 만들겠다"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 취지를 말씀해주십시오.
"주지하다시피 3.1 정신으로 임시정부가 세워졌습니다. 그때의 그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함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론 분열이 매우 심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을 '통합의 광장'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좌와 우, 세대와 세대, 빈부, 지역과 지역의 갈등을 3.1정신의 용광로에 넣고 하나로 통합하자는 겁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강점기에 민족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모든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과 끊임없는 항전으로 매진해 왔습니다. 이런 점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은 오늘날 국민 통합과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민족 통일의 광장이 돼야 합니다."


- 언제부터 기념관 건립을 구상하셨습니까?
"임시정부 요인들의 후손들은 오래전부터 기념관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대 정권들의 협조를 받지 못해 지지부진하던 중, 마침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이를 추진하게 됐습니다. 원래 계획으로는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2019년 4월 11에 기공식 첫삽을 뜨려고 했으나 설계도면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침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대문독립공원(구 서대문형무소) 옆 서대문의회 부지를 제공했고, 정부에서 건립비 480억 원을 전액 마련해줬습니다. 지금 예상으로는 올 가을쯤 기공식을 가질 겁니다."

 
 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 청사의 모습.
 상하이대한민국임시정부 초기 청사의 모습.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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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산 김원봉은 무장투쟁 선봉, 훈장 주지 못할지언정..."

- 해방 70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친일파 청산 문제'가 아직도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독립운동가 후손의 입장에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작 청산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때를 놓친 바람에 아직도 일부 야당 의원조차도 '반민특위는 국론을 분열시켰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사실은 반민특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오늘날까지 국론이 분열된 게 아닙니까?

저는 지금에 와서 물리적인 친일 청산은 불가능할지언정,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는 말처럼, 계속 이를 교육하고 계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또 다시 우리나라가 외침을 당해도 국민들이 외세에 영합치 않고 분연히 일어나 항거할 겁니다."


이종찬 위원장은 그 예시로 백범 시해사건과 약산 김원봉 임시정부 군무부장 이야기를 꺼냈다.

"누가 백범을 시해했습니까? 일제 잔재 세력들이 백범에게 총구를 겨눈 것 아닙니까? 약산 김원봉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무장 투쟁의 선봉장이었습니다.

그런 그분에게 해방된 조국은 훈장은 주지 못할지언정, 수도 경찰청장 장택상은 일제 고등계경찰 출신 노덕술을 시켜 수갑채워 연행했습니다. 약산은 아직 독립이 되지 않은 일제의 연장이라고 여겨 홧김에 월북한 겁니다. 북에 가서도 이용만 당했지요. 결국 그분의 혼은 아마도 여태 구천을 헤맬 것입니다. 그런 분을 우리 기념관에 담으려고 합니다."

기자는 서울에서 40여 년을, 대부분 종로구 구기동에서 살았다. 그래서 신교동 우당기념관은 출퇴근길로 매우 익은 동네요, 이종찬 관장은 종로에서 4선을 한 국회의원이기에 매우 낯익은 이름이다. 하지만 그분도, 나도 현직에 있을 때는 일면식이 없다가 기자가 항일유적을 답사하는 과정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을 알게 된 뒤부터 인연이 닿았다.

그리하여 우당기념관을 방문하자 사진자료를 잘 구비하고 있었다. 마침 안내를 하던 이 관장에게 직언했다.

"가보로만 간직하지 마시고 국보로 만드십시오."
"네에?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사진집을 내십시오."

결국 이 대화는 실현됐다. 우당기념관이 제공하고 기자가 엮은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가 2005년 눈빛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때 사진 설명을 적는 일로 함께 자장면을 먹어가면서 밤늦도록 일한 적이 있었다.

가까이서 살펴본 이종찬 위원장은 무서운 국정원장도 아닌, 삼한갑족의 우당 이회영의 손자였다. 할아버지가 전재산을 신흥무관학교 세우는 데 헌납한 독립운동자 후예답게 합리적이고 학식과 문장력이 뛰어났다.

'왜 임정? 새로운 반일운동 아닌가'라는 일본 기자
 
 문재인 대통령 충칭임시정부 방문 때 수행하다(2017. 12. 제2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종찬 회장).
 문재인 대통령 충칭임시정부 방문 때 수행하다(2017. 12. 제2열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종찬 회장).
ⓒ 이종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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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함께 경쟁한 이명박,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됐는데 왜 위원장님은 대권을 잡지 못했습니까?(이 위원장은 뜻밖의 질문에 잠시 멈칫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 부덕의 소치였습니다. 내공도 부족했고요. 이젠 다 지나간 일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기에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권에 대해 비판도 할 수 있고요. 아마도 하늘에 계신 선열님께서 당신들이 못다 한 광복사업을 이어가라는 것으로 알고, 최근에는 주위 분들의 추천으로 광복회장 선거에 나섰습니다.

최근에 한 일본 언론과 인터뷰를 했어요. 기자가 '왜 한국은 이즈음 100년 전 임시정부를 부활시키려고 하느냐? 새로운 반일운동이 아니냐?'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너희들은 3.1운동의 근본 정신을 모른다. 당시 독립선언서에 나와 있다. '우리는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했다. 그리고 우리는 '인류 평등과 동양평화,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자 펼친 운동'이었다. 지금도 그 3.1 독립정신은 유효하다.

그러자 그 기자도 고개를 끄덕이더군요."

이야기는 다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로 흘러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은 일부 인사만 영웅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임시정부에 기여한 2000여 명 모두를 영웅으로 담으려고 합니다. 다시 강조해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세워질 임시정부기념관은 좌우, 빈부, 지역, 세대를 초월한 통합의 장이 될 것입니다. 모두를 껴안고자 합니다."

1936년생으로 여든을 넘겼음에도 언제 봐도 동안(童顔)이다. 건강의 비결을 묻자 이 위원장은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삽니다"고 짧게 대답했다. 기자가 떠날 차비를 하자 이 위원장은 바깥까지 나와 거수경례로 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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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오마이뉴스 정치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