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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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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과 성희롱이 뉴스의 중심인 세상을 살고 있다.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밥 먹듯 성희롱 서울대 교수들"이다. 대학교수에 의한 성희롱이 특별한 뉴스가 아닌 세상이지만 이 기사가 주목을 받은 것은 "서울대 교수들"이 주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서울대학교는 우리 사회에서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다. 과거에 수없이 반복되었던 입시 비리에서조차 서울대가 끼어 있으면 언론의 흥분지수는 급상승하고, 그렇지 않으면 좀 시시하게 취급되었다. 비리에서조차도 학벌주의가 작동하는 것이 한국이고, 서울대는 비리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성폭력에서도 서울대 교수가 주어인 것과 아닌 것이 차별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는 여러 가지로 특별하다.

우리나라에 알파벳 S로 학교 이름이 시작하는 대학은 32개였다. 지난해에 S대 중 하나였던 서남대학교가 폐교되면서 S대는 31개가 되었다. 그런데 이들 중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학교들은 감히 "S대학교"라고 부르지 못한다. S대학교는 오직 서울대를 지칭하는 특별한 명칭이다.

성균관대학교가 2018 중앙일보 대학평가 종합 순위에서 2위였고, 공학 계열에서 7위인 서울대를 누르고 3위에 이름을 올려도 S대학이 되지는 못한다. S대는 오직 서울대뿐이다. 서울대만이 S대로서의 특권을 누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서울대가 특별한 이유 3가지

첫째, 탄생 과정이 특별하다. 알려진 대로 이 땅에 처음 세워진 근대식 종합대학교가 서울대이다. 설립 당시에는 K(경성)대학이었으나 해방 직후 일본식 명칭 경성이 서울로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S대학이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경영을 위해 세운 대학이 경성제국대학이고, 이 대학교는 또 다른 제국주의 미국에 의해 1946년 교육계의 거센 반대 운동을 물리치고 서울 주변 관공사립 대학을 흡수해 국립서울대학교로 재탄생했다. 두 개의 제국주의 권력의 합작이라는 특별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S대학교는 아마도 지구상에 서울대 외에는 없을 것이다.

둘째, 서울대는 정부의 특별한 사랑 속에 성장한 학교다. 2018 회계연도 기준으로 서울대는 4371억 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비슷한 규모인 부산대학교가 1295억 원을 받은 것과 비교하면 3.5배 수준이다. 부산대의 2018년도 총예산은 2660억 원이고 서울대의 총예산은 8031억 원이다. 충북대학교는 정부지원금 1210억 원을 받으며 총예산은 1982억 원이다.

서울대 학생 수는 2만8102명이고 교수 총수는 2101명(교수 1인당 학생 13.4명), 부산대는 학생 2만8854명에 교수 총수는 1185명(교수 1인당 학생 24.3명), 그리고 충북대는 학생 2만3363명에 교수 총수는 755명(교수 1인당 학생 30.9명)이다. 학생 규모가 비슷한 다른 지방 국립대학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제오늘이 아니라 지난 70년간 서울대는 이런 특별 대우를 받아 왔다. 물론 대학평가에서 이런 차등에 대해 어떤 위로점수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평가 기준은 하나이며, 평가 기준 중 많은 것이 재정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차등 지원을 하고 공정경쟁을 요구하는 국가권력의 모순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셋째, 서울대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서 가르치는 특별한 학교이다. 전국의 60만 입시 지원생들이 공부하는 목표는 서울대 입학으로 획일화되어 있다. 지원자 중 불과 0.5%만이 합격하고 나머지 99.5%는 실패하는 것이 현실임에도 모두 하나의 목표에 올인하며 초·중·고등학교를 다닌다.

서울대가 대학평가 공학 계열 순위에서 7위, 자연 계열 순위에서 3위를 하더라도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서울대를 향한 열정은 전혀 식을 줄 모른다. 서울대는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우리 사회가 주는 온갖 권위와 특권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학부모들이다. 서울대에 입학할 확률이 20~30배 높은 강남구로 전입하려는 금천구나 중랑구 거주 학부모를 탓하는 것은 피해자를 비난하는 졸렬한 짓이다.

서울대가 사라져야 할 이유 8가지

우리 교육이 창의성이나 다양성을 억누르고 획일성을 강요하는 상징적 폭력기구의 오명을 벗어버리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제4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절박한 이 시점에서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온갖 교육특권을 폐지하는 것은 일차적 필요조건이다. 서울대(적어도 학부) 폐지론을 다시 주장하는 이유는 허다하지만 지면 관계상 여덟 가지 정도만 제시한다.

첫째, 서울대가 특별한 대학교, 유일한 S대학교가 된 것이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학 간의 현실적 차이를 인정하자'는 주장, '서울대 폐지론은 서울대를 나오지 못한 자격지심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그동안의 경쟁이 공정해야 했는데 앞에서 제시한 통계가 보여주듯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고, 지금도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불공정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교육특권은 비교육적이다. 서울대 졸업생들이 사회생활에서 누리는 특권의 어디까지가 왜곡된 학벌에 의한 것인지를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학벌이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왜곡된 학벌을 증명하는 것보다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공정하지 않은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 특권, 그 특권에 의해 우수한 학생을 뽑는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1위를 하고 있는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가져올 부정적 영향은 결코 크지 않을 것이다. 공정경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대학 간 특성화와 전공에 따른 서열화야말로 우리나라 대학의 발전이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둘째, 서울대로 인해 우리나라 공교육의 목표가 단일화되었고, 이것이 공교육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이 자신의 특성이나 꿈과 무관하게 오직 특별한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경쟁하는 장이 우리나라의 학교이고, 이 야만적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학부모들이다. 우수 학생을 선발하는 능력에서 서울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인데, 과연 교육기관인 학교의 기능 중에서 '뽑는 기능'이 중심적인 기능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지 뽑는 곳이 아니다.

셋째, 이런 획일화된 교육으로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적 삶이 고단하고 그들이 살아갈 미래의 대한민국이 불안하다. 시험성적 올리기와 일류 대학 진입에 유리한 학교에 입학하는 것 외에는 공부의 의미를 용납하지 않는 것은 비교육적이다. 아이들의 타고난 다양성이 존중받고, 우리 사회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삶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 목표의 획일화를 고착화시켜온 특별한 대학교가 사라지는 것 외에 대안이 없어 보인다.

넷째, 서울대가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교육의 의미가 비로소 정상화될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반대 논리 중에 '서울대 폐지는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어불성설이다. 서울대가 폐지되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초중고 학생들은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울대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따라 공부하지는 않을 것이며, 목표로 했던 서울대에 입학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실망감이나 자기 부정의 심리는 완화될 것이다. 어느 학교에 입학했다는 것 하나로 평가를 받는 세상은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고, 무엇이 되기 위해 어느 대학에 입학하여 얼마나 최선을 다하였는지를 기준으로 평가를 받는 세상이 점차 열릴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성적에 맞추어 서울대에 무조건 입학하던 학생들이 원하는 전공, 교수진 구성, 교육환경, 통학 편의, 등록금, 장학금, 기타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여 대학을 선택하고, 스스로 선택한 학교에서 원하는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원하는 공부를 위해 입학을 결정하는 것이지, 입학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폐지는 공부의 의미를 바꿀 것이고, 그것을 통해 공부의 참다운 의미가 살아날 것이다. 다양한 기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사립대나 통합된 국립대의 특정 캠퍼스에 입학하여 원하는 공부를 하면 혁신 노력 없이 특권에 안주하고 있는 지금의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은 지적·정서적 성장을 이룰 것이다.

다섯째, 서울대에 매년 투자하던 정부 재정 수천억 원을 활용하여 국공립대학의 등록금을 과감하게 낮추고, 교육여건을 개선한다면 전국의 국공립대학 캠퍼스가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 수준 향상과 공공재로서의 역할 회복에 기여하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서울대 폐지가 대학교육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는 우리나라 모든 대학에 대한 모욕이며 서울대 구성원 일부, 졸업생 일부, 엘리트 일부가 지닌 오만함의 표현일 뿐이다.

여섯째, 특별한 대학교가 없어도 최고의 교육, 최고의 복지 국가 건설은 가능하다.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나 영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보여준 경험적 교훈이고 현실이다. 서울대 폐지 혹은 국공립대 통합의 목표는 대학교육 평준화가 아니라 대학교육에서의 특권의 폐지와 공정 경쟁을 통한 대학교육의 정상화일 뿐이다.

'서울대를 폐지해도 학벌사회는 해소되지 않는다'거나, '서울대를 대신해 연세대나 고려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 폐지를 통해 얻는 것은 실제로 없다'는 주장이 많다. 세상 어디에도 완벽하게 평준화된 대학시스템을 지닌 사회는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특권화된 대학이 없는 것이 교육을 정상화하고 나아가 복지국가로 가는 데 전혀 불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곱째, '서울대를 폐지하기보다는 서울대가 가진 기존의 경쟁력을 보강해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육성하는 노력을 더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의 모순이다. '서울대가 무능력한 관료주의의 간섭과 미국의 작은 주립대보다도 적은 정부의 예산 지원 하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 대학들과 경쟁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더욱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서울대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하기 이전에 대한민국 관료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무능력한 관료들을 만들어낸 것이 어느 대학인지? 서울대 옹호론자들은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탓하기 이전에 그런 관료주의를 만들어낸 책임에 대해 자성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무능력한 관료주의를 키워온 주인공이 서울대이기에 그것의 폐지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서울대 발전의 장애물로서 미국의 작은 주립대보다도 적은 정부예산 지원을 탓한다면 그보다 열악한 나머지 국공립대학교들이 서울대와 경쟁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인지. 70년 이상 특혜를 누려왔는데 더 이상 무슨 특혜를 요구하는 것인지.

여덟째, '국가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인재 양성 대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시대착오성이다. 우리나라는 근대 학교의 출범 당시부터 교육이 구국의 수단으로 등장했던 측면이 있다. 식민지 시대에도 교육은 독립의 수단이거나,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해방 이후에도 국가발전에 필요한 인재의 양성은 교육 부문에 맡겨진 숙명 같은 사명이었고, 이것에 많은 국민이 동의하여 왔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적지 않은 해결과제를 안고는 있지만 나름의 경제성장과 민주화,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는 교육이 국가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를 넘어 국가가 교육발전을 위해 힘써야 할 때이다. 교육을 통해 시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 권력의 일차적 과제가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서울대가 있어야 국가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대로 인해 고통 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을 생각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입니다. <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2019, 살림터)에서 주장한 내용의 연속으로 일부 문장은 중복됩니다.


한국 교육 제4의 길을 찾다 - 야만의 길을 지나 인간의 길로

이길상 지음, 살림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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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 제4의 길을 찾다" "세계의 교과서 한국을 말하다" 저자. 교육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