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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부터 군산 한길문고 상주작가(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2018년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가 되었습니다. 문학 코디네이터로 작은서점의 문학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연재는 그 기록입니다. - 기자말

"네, 꼭 가야겠네요. 지각도 하지 말고."
"왠지 아침부터 긴장됩니다."
"누가 온다고 하면 떨려요. 하지만 오늘은 늦지 않게 갈게요."


4월 10일 아침,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2기' 메신저 단체방에서 나눈 대화.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날 오후 7시 40분에 하는 모임을 지켜보기 위해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 모니터링단이 온다는 소식을 읽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 하면 돼요." 상주작가로 일하는 나는 담담한 척 말했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잘 하고 있나, 서울에서 모니터링단이 온다고 했다. 이숙자 선생님은 한길문고 상주작가 면을 세워주고 싶어서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잘 하고 있나, 서울에서 모니터링단이 온다고 했다. 이숙자 선생님은 한길문고 상주작가 면을 세워주고 싶어서 차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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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5시 6분, 이숙자 선생님은 내 메신저로 사진을 보내왔다. 한쪽에 꽃이 단정하게 수놓아진 갈색 다포 위에는 딱 두 가지만 있었다. 크래커 위에 딸기를 장식해서 놓은 하얀 접시, 그리고 길게 뻗은 벚나무 가지와 벚꽃 네 송이.

"작가님! 손님도 오신다기에 다화라도 챙겨 가려는데 괜찮을까요?"
"꺄아! 선생님 때문에 쓰러집니다.ㅋㅋㅋㅋ 저는 오후 6시부터 연구원들이랑 인터뷰해요."
 

이숙자 선생님은 나보다 먼저 한길문고에 와 있었다. 강연도 하고, 모임도 할 수 있는 한길문고 안쪽 서가에는 테이블이 있다. 선생님은 그 위에 직접 수놓은 천을 깔았다. 다도 세트를 꺼내고, 벚꽃을 꽂고, '철관음'이라는 차를 우렸다.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잘 하고 있나, 문화컨설팅 '바라' 우지연 연구원과 이세영 선생님이 왔다. 두 사람은 미리 작성해온 질문을 나한테 했다. 상주작가로 재미나게 일하고 있으니까 솔직하게 답했다. 그러나 같이 앉아 있던 예스트서점 이상모 대표님은 "배지영 작가가 취조 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였다"고 했다.

"서울에서 손님들이 오신다고 하니까, 우리 배지영 작가의 면을 세워주려고 왔어요."

이숙자 선생님은 물가에 내놓은 새끼를 저만큼에서 지켜보다가 보호하려고 뛰어든 어미처럼 말했다. 차를 따르면서 "상주작가와 한길문고가 있어서 제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 몰라요"라고 마음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멋있었다.
  
 이숙자 선생님이 챙겨온 다화.
 이숙자 선생님이 챙겨온 다화.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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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사이처럼 보이는 선생님과 나는 지난 2월 15일에 처음 만났다. 하필이면 내가 쉬는 수요일. 한길문고 직원 정민씨가 전화로 "상주작가 만나고 싶다는 분이 너무 간절하게 말씀하시는데 어떡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날 오후 7시 5분에 한길문고로 출근했다.

"나이를 먹다보면,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 항상 조심스러운 게 있어요. 진짜 큰 용기를 내서 한길문고에 왔습니다. 나는 이제 머뭇거릴 시간이 없거든요."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숙자 선생님은 말했다. 1944년생, 올해 일흔여섯 살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50대 때에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딸을 대신해서 7년간 손주를 키웠다. 그러면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공부를 했다. 동양화를 꾸준히 그렸고, 수를 놓았다.

지난 2월, 이숙자 선생님은 자주 가는 뜨개방에서 "한길문고에서 어떤 작가가 글을 가르쳐 준다네요"라는 소문을 들었다. 흘려들을 수 없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말이었다. 선생님의 일상을 흔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말이었다.

산길에서 만나는 풀과 꽃에게도 "1년 동안 잘 있다가 나하고 다시 만나는구나"라고 말을 건네는 선생님은 문학의 세계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당신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서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마침 한길문고에서 '에세이 쓰기 2기' 수업을 열 예정이었다. 이숙자 선생님은 "신청할게요"라고 했다. 미리 글을 써서 메신저 단체방에 숙제로 내야 한다니까 컴퓨터로 글을 쓰겠다고 했다. 그날 선생님에게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라는 책을 권했다. 일흔여섯 살부터 백한 살까지 그림을 그린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를.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2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모인 사람들. 바라던 일을 시작한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한길문고 에세이 쓰기 2기.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모인 사람들. 바라던 일을 시작한 사람들 속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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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살림, 직장생활에 치이면서도 "에세이 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찾아온 사람들은 열네 명. 바라던 일을 시작한 사람들 속에서 나도 에너지를 얻었다. 더구나 한길문고에 맨 먼저 온 이숙자 선생님은 매화꽃과 '대홍포'라는 차를 준비해 와서 분위기를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은 항상 차예요. 사람들한테 차 나눔을 많이 하죠. 먼저 가서 꽃 한 송이라도 놓고, 분위기를 만들어야지요. 작가님이 너무 좋아하니까 내가 다 기쁘더라고요."
 

우리는 이숙자 선생님 덕분에 봄이 오면 매화꽃을 앞에 두고 차를 마셔야 한다는 걸 알았다. 화전 부치는 사진도 실시간으로 감상하게 해주는 이숙자 선생님은 젊은 사람들 속에서 어른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다도를 연마해왔기 때문에 말과 행동에는 기품이 배어 있었다.
  
화전 이것은 작품인가, 음식인가.
▲ 화전 이것은 작품인가, 음식인가.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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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면서 24시간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공부하죠. 특히나 글을 읽으면 삶을 이해하고, 그 사람과 가까워져요. 글로 자기 삶을 진솔하게 내보일 수도 있고, 또 자신의 정신 세계를 풍요롭게 하기 때문에 외롭지가 않잖아요. 나는 댓글 올리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젊은 선생님들이 다 받아주니깐 이렇게 속을 열어보이게 되네요."
 

한 사람을 지탱해주는 일상에 누군가를 들이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이숙자 선생님은 당신의 일상을 재정비하고 서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었다. 컴퓨터로 글을 써서 메신저 단체방에 올리고, 책을 읽고 자기 얘기를 하는 북클럽에 참여한다. 서점에서 여는 작가 강연회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군산 한길문고 나태주 시인 강연회
 군산 한길문고 나태주 시인 강연회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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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오후 5시. 한길문고에서는 나태주 시인 강연회를 열었다. 먼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음악을 켜고는 시낭송 시간을 가졌다. 서점에 모인 100여 명의 사람들 가슴이 일제히 말랑말랑해지는 게 느껴졌다. "너무 떨려요"라고 하면서도 중고등학생들은, 평범한 시민들은, 앞에 나가서 시를 읽었다. 이숙자 선생님도 무대에 올라서 시를 낭독했다.

굉장했다. 원하던 포켓몬 카드를 '득템'한 아이처럼 내 얼굴은 해사해졌다. 서점에서 시 낭독회를 한다면 보나마나 재밌을 것 같았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는 드라마 속의 잘생긴 배우가 아니어도, 시를 낭독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특별했다. 자세히 안 봐도 예뻤다. 오래 안 봐도 사랑스러웠다.

맨 뒤에 서 있던 나는 강연장과 서가를 훑어보면서 한길문고 문지영 대표님을 찾았다. "서점에서 동네 사람들끼리 시 낭독만 해도 근사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 소름! 대표님도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무대에 올라 시를 읽을 때에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항상 마음 속으로 글을 써온 이숙자 선생님이 나태주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항상 마음 속으로 글을 써온 이숙자 선생님이 나태주 시인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 배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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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은 5월 달까지 하고 끝난다. 지구역사상 처음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사람들을 서점으로 불러 모으고 있다. 그렇게 드나들게 된 사람들은 SNS에서, 카페에서, 뜨개방에서, 동네서점에서 벌인 일들을 얘기한다. 그 덕분에 한길문고에 오게 된 이숙자 선생님은 말했다.

"항상 마음 안에 글을 쓰고 살았습니다. 배 작가님을 만나 그걸 조금씩 꺼내 보며 참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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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독립청춘>, <소년의 레시피>, <서울을 떠나는 삶을 권하다>를 썼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