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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들려오는 '불편한 소식'이 있다. 바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대한 일본 고위 관료 정치인들의 참배나 봉납(捧納) 관련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매년 4월 21일~23일은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예대제(春季例大祭)' 기간으로, 이 제사는 10월 추계예대제(秋季例大祭)와 함께 신사의 가장 중요한 제사로 여겨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도 이 기간에 맞춰 '마사카키(真榊)'라는 공물을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한 것으로 알려졌다(4월 21일).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예대제.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예대제.
ⓒ 야스쿠니 신사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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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19년 올해는 좀 더 심각하다. 야스쿠니 신사 공물 납부는 2019년판 '외교 도발'의 전초에 불과했다. 국회의장격인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 다테 주이치(伊達忠一) 참의원 의장의 공물 봉납이 이어졌고, 이틀 뒤인 23일 일본 우익 정치인 70명이 일제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일본 외무성은 독도 영유권, 레이더 갈등,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양국간 이슈화 된 사안들을 일본 중심의 시각으로 서술한 <외교청서>까지 확정했다. 일본 <외교청서>는 1957년부터 매년 발간되는 일종의 '백서'로 전년도 기준 일본 외무성이 파악한 국제정세와 일본의 외교활동 전반을 기록해놓은 중요한 지침이다. 그러나 거기에 포함되는 도발적 내용 때문에 <외교청서>를 둘러싼 한·중·일 3국의 외교 논쟁은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4.23 '일본발 외교 공세'

이 정도면 가히 '외교적 파상공세'라 부를 만하다. 특히 23일 발표된 <외교청서>의 한일관계 관련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 관계 추구'에 대한 내용이 아예 삭제됐다. '미래지향'에 관한 표현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비난할 때마다 수시로 언급하는 '변명적 수식어'로 아무리 한일관계가 좋지 않던 시점이라도 유화적 메시지의 일환으로  삽입됐던 표현이다. 그러나 2019년판 <외교청서>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최소한의 온건적 표현도 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인 걸까.
 
 초계기-레이더 갈등관련 사진(출처: 국방부)
 초계기-레이더 갈등관련 사진(출처: 국방부)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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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지난해부터 한일 양국 사이에 쟁점이 됐던 ▲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 화해·치유 재단 해산 ▲ 초계기-레이더 갈등 ▲ 한국 주최 국제관함식 불참 문제 등을 모두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잇따랐다"(韓国側による否定的な動きが相次)라면서 전면 왜곡·부정했다.

모든 논쟁의 결론을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라는 문장 하나에 함축하고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특히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는 2페이지 '특집면'으로까지 편성해 '최종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사안이라는 그들의 입장을 강조했다.
 
 외교청서 및 야스쿠니 신사 참배관련 종합자료.
 외교청서 및 야스쿠니 신사 참배관련 종합자료.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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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의미심장한 부분은 이러한 <외교청서>가 하필이면 야스쿠니 신사의 가장 중요한 제사일인 23일에 맞춰 확정됐다는 점이다. 실제 올해처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일'과 <외교청서> 확정일이 겹친 경우는 최근 5년간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이 <외교청서> 하나만으로도, 매년 주변국의 항의와 비판을 받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슈가 횡횡한' 시점에 두 가지 쟁점 사안을 동시에 내놓는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사전 의도 없이 불가능한 일로 보여진다. 

사실 우리로서는 날카로운 내용의 도발을 당했다. 반면 오랜만의 속 시원한 '한방'에 일본 우익들은 신이 났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한국 측이 만들어 낸 수많은 문제를 건드렸다'면서 환호했고 관련 기사는 <산케이 신문> 인터넷 지면에 토픽으로 오후 내내 오르며 정치면 뉴스 1위, 전체 뉴스 2위에 오르기도 했다.
 
 4월 23일 산케이 신문 홈페이지 메인화면.
 4월 23일 산케이 신문 홈페이지 메인화면.
ⓒ 산케이신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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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대응은 매년 판박이

하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은 한발 늦은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 등 고위 정치인들의 공물 봉납이 이뤄진 21일, 외교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올리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 관련 문제 발생 당일 즉시 발 빠른 논평으로 대응한 지난 2017년, 2018년과는 다른 모양새다. 
  
판에 박힌 듯한 외교부 논평 내용은 더욱 실망스럽다. 지난해 일본 <외교청서>에 대한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올해 <외교청서>에 대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비교해보면 두 문건이 무척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문체와 유사한 문장과 수식어가 사용되고 있다. 
 
 2018년과 2019년 일본 '외교청서' 발표 이후 외교부 대변인 논평.
 2018년과 2019년 일본 "외교청서" 발표 이후 외교부 대변인 논평.
ⓒ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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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논평은 일반적인 행정 문건과 다르다. 한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식 입장이기에 외국 언론에 의해서도 빠르게 전파된다. 한일 양국의 외교부가 물밑으론 어떤 입장을 주고받든, 일반 국민들이 자국 언론을 통해 가장 빠르게 인지하는 기초 문건이 바로 논평인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2019년 외교부 대변인 논평은 2018년 문건과 비슷하다는 논란을 차치하고도 실망스러운 면이 많다. 금번 일본 <외교청서>에서는 비단 독도문제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 일제강제 징용 배상 판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에 대한 일본의 왜곡적인 입장이 적시됐음을 앞서 언급했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독도 이외의 문제들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변인 논평 1~3호 모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내용이다. 어째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논평이 없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최소한 현재까지 드러난 쟁점 사안들에 대해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의 함정

일본의 도발이 계속되면 이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피로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매년 비판을 가해도 변함없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과 교과서 왜곡, 정부 문건인 <외교청서>와 <방위백서>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우리를 '공격'할 무기는 이렇게도 많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전범국인 일본의 도발에 매번 시달려야 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어느 순간 익숙함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 된 1978년 10월 17일 이후 일본 총리의 참배는 1986년부터 20여 년간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물꼬를 텄고 이후 2006년까지 내내 일본 총리의 참배가 이뤄졌다. 2013년에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러는 순간,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일본 우익들의 머릿속에 뿌리내렸다. 
 
 아베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21일 공물을 보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작한 춘계 예대제(例大祭·제사)에 맞춰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명의로 '마사카키'(眞신<木+神>)라는 공물을 보냈다. 사진 오른쪽 부분에 보이는 마사카키는 신사 제단의 좌우에 세우는 나무의 일종이다.
 아베 일본 총리가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21일 공물을 보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시작한 춘계 예대제(例大祭·제사)에 맞춰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 명의로 "마사카키"(眞신<木+神>)라는 공물을 보냈다. 사진 오른쪽 부분에 보이는 마사카키는 신사 제단의 좌우에 세우는 나무의 일종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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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역시 익숙함에 빠져있는 것 아닐까. 장기영 박사는 자신의 연구(2018,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여론 분석)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연구가 한일 관계보다는 '중일 관계'에 초점을 두고 조명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만큼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논의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반의 인식은 어떨까? 계량화할 순 없지만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참배를 하지 않고 공물을 봉납하는 것을 크게 이슈화하지 않는 언론보도 행태도 존재하지만, 6년째 이어지는 이 행태에 나도 모르게 '올해도 야스쿠니. 그나마 참배는 안 했으니까' 하는 익숙함의 우(愚)를 범하진 않았을는지. '4.23 일본발 외교공세'에 즈음해 생각해볼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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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니스트, 작가 한국 근현대사 및 일본 역사/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역사 팟캐스트 채널 <역사와 사람 이야기>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