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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만화경 프로젝트>는 민화라는 공통의 주제로, 여러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보여드리려는 기획입니다. 흔히 민화의 주제가 '길상(吉祥)과 행복(幸福)의 기원'이라고 하지만, 그 내용은 보다 확장될 수 있습니다. 형식 또한 '한지에 분채 채색'을 벗어나 보다 다양화될 수 있지요. 그래픽디자인과 실크스크린, 전사와 도자기, 자수와 스템프 등은 그런 예입니다. 새롭게 창조되지만, 여전히 민화로 인식되는 예술의 세계. 그 경계의 긴장을 경험하는 것이 <민화 만화경 프로젝트>의 재미일 것입니다. - 기자말

4월 17일, 작품 전시를 거절 당하고 전시장에서

4월 17일 정현 작가는 월간 민화 5주년 창간기념 특별전시회 <뉴웨이브 25인의 작가전>을 보았습니다. "(기존) 민화이되 새로운 물결의" 여러 작품들을 개막식 이전에 다 둘러보고, 번잡함을 피해 2층 다실에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작품을 어떻게 보았을까? 궁금했습니다.
 
작가 또한 전시를 관람한다.  왼편부터 <민화 뉴웨이브 25인展> 참여 작가인 김민성, 김달지, 김희순. 월간민화 유정서 발행인과 정현 작가.
▲ 작가 또한 전시를 관람한다.  왼편부터 <민화 뉴웨이브 25인展> 참여 작가인 김민성, 김달지, 김희순. 월간민화 유정서 발행인과 정현 작가.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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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았어요. 초대작가 안성민님 작품은 간결하면서, 민화적 요소를 많이 가진 편안한 그림이더군요. 오래 깊게 작업하신 이들은 작품이 균일하게 나오는데 그런 것이 좋았어요. 배영남 작가는 자신이 해온 염색천에 그림을 얹으셨더라구요. 기존에 자신이 하던 작업의 장점을 잘 살렸구나 싶었어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테지만, 배울 점이죠. 김언영 작가의 작품도 눈에 띄었어요."

김언영 작가는 책과 책거리를 한아름 손에 든 소녀를 그렸습니다. 배영남 작가는 영역이 다른 곳에 민화를 접합했죠. 안성민 작가의 그림 또한 보면, 그 작가 작품임을 곧바로 알 수 있습니다. 작가가 좋아한 작품들을 보면, 작가 자신이 어떤 작가일지도 조금은 알 수 있죠. 이날 정현 작가는 "어제는 조금 '개무룩 시무룩' 했다"고 했습니다. 

"2월 달쯤 개인전 초대 제의를 받았었는데, 어제 그걸 접기로 결정했어요. 규모가 백여 평 되는 어느 박물관에서 제게 전시 기회를 주셨어요. 제가 '해낼 수 있을까?' 한 달 이상을 고민하다가 결심을 하고 답신을 드렸죠. 구상한 작품 사진도 보내드리고, '150호 이상 대작으로 가보겠습니다'하는 말씀도 드렸어요. 그런데 제 작품에서 보이는 종교적 도상들이 문제가 됐어요. 공공의 공간이라 종교색을 빼고 작업해야 한다는 거였죠. 제 작품 속에 나오는 신들은 특정 종교에서의 신앙 대상이 아니예요. 단지 전통문화 속에 녹아있는 친근한 도상일 뿐이었죠.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어요."

처음엔 박물관 측을 설득해 볼까 했지만, 정현 작가는 한발 멈추기로 했습니다. 무교인 자신은 애초 종교색을 띨 생각도 없었지만, 보는 이가 그런 것을 느꼈다면 아직 그림이 무르익지 않았다 생각한 것입니다.

"박대성 화백도 불상을 그리고 신진환 작가도 부처를 그렸지만 그 그림들 속 부처는 특정 종교라기보다 우리의 익숙한 전통문화로 읽히거든요. 제 그림 속 도상들이 제 의도와는 다르게 종교색만이 읽혔다면 제 그림이 아직 미숙한 거죠."

"외설을 정의할 순 없지만, 보면 안다"던 미국의 대법관 포터 스튜어트의 말처럼, 그렇게 보인다면 그게 맞겠지! 하는 '쿨한' 태도입니다. 작업을 조금 뒤로 미루는 대신, 그는 소논문 한 편을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박사 논문인 '조선후기 제사도 연구' 내용 중 간략했던 부분 중 하나를 조금 더 보완하는 작업.

4월 18일, 온양민속박물관서 감실을 탐구하다

"4월 18일 온양민속박물관 방문에서 제가 관심을 두는 건 제사도예요. 특히 현재 전시되고 있다는 감실(龕室)이 제일 기대가 돼요. 이미 홈페이지로 찾아봐 두었거든요. 수장고의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으면 제일 좋고, 자료사진도 얻었으면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온양민속박물관의 감실.  감실의 안은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4대 조상의 신주(조상의 가상 신체)를 모신다. 충청남도 민속자료 29호.
▲ 온양민속박물관의 감실.  감실의 안은 4개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4대 조상의 신주(조상의 가상 신체)를 모신다. 충청남도 민속자료 29호.
ⓒ 온양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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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실은 조상의 신주를 모셔둔 사당의 축소판입니다. 온양민속박물관에 있는 그 감실은 어느 지역 반가에서 사용하던 것입니다. 정교함과 예스러움이 '정성과 공경'을 핵심으로 하는 제사문화의 정수 같은 것이었습니다. 정현 작가는 기존에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로 통칭하던 그림들을 불교적 성격의 원당도와 유교적 성격의 감모여재도 및 교의도로 구분하였습니다.

화제(畵題)가 있는 민화 그림은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그런데 제사 용도로 사용된 그림 중에 '감모여재도'라는 화제 그림들이 발견되면서 제사용도의 그림들이 모두 '감모여재도'로 통칭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작 성격도 다르고 화제도 '감모여재도'와 '영위도(靈位圖)'로 다르기 때문에 구분을 했습니다. '명확한 논거와 문헌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학문이라고 믿으니까요. 

정현 작가는 제사 그림에 대해 이론적으로 연구했고 제사 그림도 상당수 그렸다고 합니다. '왜 제사가 그렇게나 중요한가?' 물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가, 자신은 누구인가를 아는 일이니까! 자신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면, 자신의 생물학적 뿌리인 조상에 대한 감사로도 표출된다고 봐요. 저는 제사를 추억의 공유이자 감사 의식이라고 생각해요!"

정현 작가는 제사도의 그림을 꼼꼼히 봤었죠. 제수로 진설된 음식은 무엇이었지? 그 음식들은 현재와는 어떻게 다르지? 이전 제사도엔 수박, 참외, 석류, 오이, 가지도 썼는데, 이것들은 "씨가 많거나 넝쿨식물이거나 남근을 연상케 하는 형태로, 다산을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자신들이 기원하는 바를 담았던 상징물들의 표현인 것"이죠(2015년 10월 월간민화 <화제의 論考> 민화 제사그림의 기능에 관한 재고찰).

4월 24일, 한가람미술관에서 꼭두소녀 가족을 전시하다

정현 작가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서 개막한 <현대미술 그 벽을 넘고 거닐다>(4월 24일~28일) 전에 참여했습니다. 민화작가 정현의 그림은 전통적이지만 새로움이 있습니다.

오방색 천이 드리워진 사라수 밑에는 빨랫줄이 나란하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반가사유상이 등에 아기를 업은 사내의 모습으로 일상의 풍경 속에 있습니다. 가족 사진에는 양복을 입은 반가사유상 사내와 부처 머리를 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습니다. 양장 원피스를 입은 작은 여자아이와 소녀 꼭두도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한가람미술관 <2019 K-SKAF 아트페어>에서.  작품의 인물은 작가를 닮는다. 꼭두소녀는 당찬 소녀로, 세상의 어려움을 이기고 타인을 위로한다.
▲ 한가람미술관 <2019 K-SKAF 아트페어>에서.  작품의 인물은 작가를 닮는다. 꼭두소녀는 당찬 소녀로, 세상의 어려움을 이기고 타인을 위로한다.
ⓒ 원동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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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의 모티브가 된 것은 베이비박스였어요. 버려지는 아가들 이야기가 한창 이야기되던 때였어요. 그 기사들을 끝까지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아파서…. 유기되는 개들, 버려지는 노인들도 있죠. 사라지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다시금 생기(生氣)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린 것이 꼭두예요. 꼭두는 상여장식에 있는 나무인형이에요. 저승길의 동반자 또는 한국판 천사로 부르기도 해요.

그렇지만 제 꼭두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형상을 갖고 오기 이전부터 그리고 이 세상에서 형상을 버리고 다른 어느 세계로 건너가는 어디까지고 함께하는 수호천사 개념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하나씩 꼭두가 있다고 생각하면 버려지고 흔적없이 사라지는 많은 생명들에게 조금은 가슴이 덜 아플 거 같았어요. 이번 전시에 그린 소녀꼭두는 천진하고 결연한 눈빛이 일당백의 파워를 가지고 있어요. 제가 소녀꼭두에 부여한 콘셉트는 '무소불위의 용기'입니다."


정현 작가에게 신은 '초월한 능력을 갖거나, 우리들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진 '슬픔과 고통에 대해 공감해 주는 모든 이들'에게, 정현 작가는 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로부터 신과 우리 이웃의 경계는 모호해집니다. 천수관음의 손바닥마다 눈길이 그려져 있는데, 그 눈은 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손에 있으니, 곧 실천도 합니다.

경계를 보는 데서 오는 '긴장의 미'가 있다면, 경계 없이 통합된 작품서 오는 '합일의 아름다움'도 있을 것입니다. 삶의 문제와 예술의 표현에 경계가 없는 작가들에게서, 우리가 얻는 힘과 위안의 정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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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고, 흙길을 걷는다. 글자 없는 책을 읽고, 모양 없는 형상을 보는 꿈을 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