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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청소년을 지원하면 언제나 '피해자 지원도 부족한 마당에 왜 가해자를 돕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도대체 가해 청소년들은 왜 지원을 받아야 할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돕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가 만난 청소년들의 사연에서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한다. 기사 내용은 실화를 토대로 했으나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을 쓰고 세부 사항도 재구성했다. - 기자말
 
 신호대기 중이던 오토바이 앞으로 경찰차가 멈춰 섰다. 조수석에서 내린 경찰이 오토바이 쪽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그 때 신호등이 청색으로 바뀌었다. 혁태와 수현이가 탄 오토바이는 경찰차를 지나 유유히 떠나갔다.
 신호대기 중이던 오토바이 앞으로 경찰차가 멈춰 섰다. 조수석에서 내린 경찰이 오토바이 쪽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그 때 신호등이 청색으로 바뀌었다. 혁태와 수현이가 탄 오토바이는 경찰차를 지나 유유히 떠나갔다.
ⓒ tvN 라이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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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태의 죄명은 특수공무집행방해상해였다. 교통단속 경찰을 오토바이에 매달고 40m를 끌고 다녔다고 한다. 무려 시속 50km로 달리는 오토바이였다. 특수공무집행방해상해는 3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다. 혁태의 범죄는 살인미수로 입건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런데 검찰은 혁태를 소년재판부로 송치했다. 죄질을 고려해 본다면 아무리 청소년이라고 해도 소년사건으로 처리된다는 걸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혁태 사건 뒤에 무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수업이 끝나고 혁태는 수현이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하나뿐인 헬멧은 혁태가 썼다. 집 앞 사거리에서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뀌었다. 신호대기 중이던 오토바이 앞으로 경찰차가 멈춰 섰다. 조수석에서 내린 경찰이 오토바이 쪽으로 다가왔다. 공교롭게도 그 때 신호등이 청색으로 바뀌었다. 오토바이는 경찰차를 지나 유유히 떠나갔다.

CCTV에는 혁태와 수현이가 입고 있던 교복, 오토바이가 인근 아파트로 들어가는 모습 그리고 오토바이 번호판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경찰이 혁태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 다음 날 경찰은 학교로 연락을 했고 선생님은 혁태와 아버지에게 알렸다. 일하던 중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버지는 공사 현장 한편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겨우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적막한 집이 싫어 거리로 나선 혁태

혁태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를 잃었다. 어머니는 3년 동안 병치레를 하다 결국 혁태를 남겨두고 숨을 거두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상처(喪妻)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터로 나가야 했다. 아내의 오랜 투병은 고스란히 아버지의 빚으로 남았다. 마땅한 기술 없이 공사장에서 잡부로 일하던 아버지는 휴일도 없이 일했다. 다행히 건설 경기가 좋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이 없어 쉬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지방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방으로 내려가 1주일씩 머물다 올라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만큼 혁태가 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도 길어졌다.

아버지의 지방 출장이 잦아지면서 혁태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TV를 켜는 것이었다. 현관문을 열면 적막함이 혁태를 맞았다. 적막을 깰 수 있는 것은 TV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TV 소리도 적막을 깨지 못했다. 적막함의 무게가 TV 소리마저 삼켜버릴 때 즈음 혁태는 집이 아닌 거리를 선택했다. 거리의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혁태의 비행도 잦아졌다. 결국 혁태는 특수절도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다. 다행히 초범이고 범죄피해도 크지 않아 소년사건으로 송치될 수 있었다. 법정에서 아버지는 눈물로 호소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돈을 벌어야 아들놈을 제대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죽어라 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들놈을 망치는 일이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이놈을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면 제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책임지고 잘 키우겠습니다."
 
거리의 청소년들을 아들과 함께 키운 아버지

다행히 혁태에게는 1호, 4호 처분이 내려졌다. 1호 처분은 보호자에게 혁태를 돌려 보낸다는 뜻이었고 4호 처분은 보호관찰이었다. 법정을 나온 아버지는 혁태에게 건넨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친구들 다 데리고 와라!"
 
혁태가 다시 비행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거리에서 만나 함께 비행을 저지르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참 친구들과 어울릴 시기인 혁태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버지는 차라리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였다. 그렇게 혁태의 집은 하루아침에 청소년 쉼터가 되었다. 혁태가족은 좁디좁은 임대 아파트에서 건장한 남자 청소년 셋과 동거를 시작했다.

다섯 남자의 먹성을 채우기 위해 항상 전기밥솥에 12분을 꽉꽉 채워 밥을 했다. 쉴 새 없이 도는 세탁기를 감당하기 위해 아예 25리터짜리 액상세제를 사용했다. 그렇게 1년가량 지내자 친구들은 하나둘 떠나고 같은 학교에 다니던 수현이만 남게 되었다. 혁태 더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다만 공부에 적성이 맞지 않았던 혁태는 오토바이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밤까지 일했고 성실하게 저축도 했다. 아버지는 그런 혁태가 대견스러웠다. 그렇게 마음을 잡았다고 생각했던 혁태가 다시 비행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것도 특수공무집행방해상해라는 엄청난 범행이었다.

아버지의 믿음, 가장 강력한 지지
 
 아버지는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는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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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혁태와 함께 찾아온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강한 확신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억울하다는 혁태의 말에는 진실함이 묻어 있었다. 사건기록 역시 혁태의 범행을 입증하기보다는 의심을 품게 만들고 있었다. 시속 50km의 오토바이에 40m를 끌려갔다는 경찰은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단지 다친 부위라며 첨부된 사진은 제복 바지가 살짝 쓸린 정도였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다행일 사건의 피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색했다.

혁태는 경찰이 다가오는 것은 봤지만 자신들에게 오는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수현이는 경찰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데는 듯했지만, 오토바이에 매달려 끌려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찰차 앞으로 지나간 혁태의 오토바이의 모습이 블랙박스에 찍혔을 것이지만 블랙박스 영상은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오토바이에 다가온 것은 인명보호장구(헬멧) 미착용을 단속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범칙금 2만 원을 피하기 위해 대낮에 경찰을 매달고 달렸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혁태는 운전면허도 있었고 오토바이도 아버지 소유로 문제될 것이 없었다. 사건을 살펴볼수록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을 살펴보면서 나름대로 범죄를 재구성해 봤다.

"헬멧을 쓰지 않은 현수를 발견한 경찰은 단속을 위해 신호대기 중이던 혁태의 오토바이에 다가왔다. 하지만 신호만 응시하던 혁태는 경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뒷자리의 현수는 경찰이 다가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자신이 운전하지 않았으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경찰이 오토바이에 다가갈 때 즈음 신호가 바뀌었고 혁태의 오토바이가 출발했다. 경찰은 오토바이의 출발을 제지하기 위해 현수의 어깨에 손을 대려 했지만 이미 출발하고 있던 오토바이를 멈출 수는 없었다. 현수의 어깨를 잡으려던 경찰은 중심을 잃고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화가난 경찰은 CCTV를 통해 혁태를 찾아냈고 입건시켜 버렸다. 하지만 누가 봐도 모순투성이인 사건이었고 검찰마저 경찰의 주장을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무혐의 처리를 하기는 부담되었던 검찰이 혁태를 소년사건으로 송치해 버렸다."

억울하지만 무죄를 주장할 수는 없다

경찰의 주장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주장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아무리 억울해도 무죄라는 말은 꺼낼 수조차 없었다. 소년법정에서 "무죄"는 금기어였다. 무죄를 다투기 위해서는 증거를 꼼꼼히 조사해야 하는데 소년재판에서는 증거조사 자체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관례적으로 소년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사건은 검찰 재송치 결정이 내려지고는 한다. 검찰에 재송치 된 사건은 다시 수사가 이루어진 후 일반 형사재판으로 기소되고는 한다.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입증하면 되지만 소년재판에서 낮은 처분을 받고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다면 쉽게 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비율은 1% 정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년사건의 처분은 전과가 남지 않지만 형사재판에서의 유죄는 전과가 남는다. 억울함을 풀겠다고 전과자의 위험을 선택할 수는 없다. 소년사건에서 '무죄'가 금기어인 이유다.

결국 억울함은 호소하되 비행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선처를 바라는 것으로 혁태와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법정에 찾아왔다. 하지만 예전 같이 읍소를 하지는 않았다. 마음을 잡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아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도 혁태가 억울하다고 생각하셨고 재판정에서 읍소를 한다면 아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법정에 선 것 자체를 반성하는 혁태

"지난 번 처분을 받은 이후 혁태는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 녀석이 공부를 죽어라 싫어합니다. 그래서 저도 공부하라는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저를 닮아 공부를 싫어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하지만 그 날 이후 다시는 비행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공부는 안 했지만 성실히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취직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그런 혁태가 정말 대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또 이 자리에 서게 되었네요.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만으로도 혁태가 잘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은 비행이 아니라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판사님도 혁태가 비행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안타깝게도 실수했다고 생각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판사 역시 사건기록이 의문투성이임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당당함을 보면서 혁태에 대한 신뢰를, 그 신뢰 뒤에는 혁태의 성실함이 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혁태에게는 다시 4호 처분이 내려졌다. 아버지의 말대로 법정에 다시 선 것만으로도 혁태에게는 잘못이 있었다. 헬멧을 쓰지 않은 친구를 오토바이 뒤에 태운 것만으로도 혁태는 꾸지람을 받아 마땅했다. 4호 처분이 조금은 과할 수는 있지만, 아버지도 혁태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혁태가 다시 법정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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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