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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기자 말

책 하나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적이 있었다. 학교폭력 대처법에 관한 책이었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또는 학대위) 소집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피해학생들을 사법적인 힘으로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함께 책을 만들 변호사를 수소문했고, 곧이어 약속을 잡았다. 변호사가 있는 강남으로 향했다.

변호사와 시인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학교에 꼭 필요한 것들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폭력을 없애겠다는 나 혼자만의 정의와 열의로 가득 차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뿌듯함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지면에 적힌 시 하나가 심각하게 상처 입은 학생과 학부모 들을 치유할 수 있을까? 또는 법률적인 정보가 학교폭력으로 상처 입은 학생들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이 지칠 때까지 법적으로 싸우는 것. 그것을 한낱 응원하는 것. 그래서 조금이라도 덜 잘못한 쪽이 그 싸움에서 이기도록 돕는 것. 그것이 학생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움이 될까? 학교폭력의 해결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할까? 이런 질문은 그때 내게서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변호사와 내가 서로 협력하면 학교폭력 근절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어떤 자신감은 진실의 눈을 가리기도 한다.

그렇게 느낀 계기가 있었다. 변호사와 함께 열심히 원고를 주고 받고 하던 중에 '회복적생활교육센터'에서 하는 공동체 대화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거기서 학폭위의 어두운 면에 대해 듣게 됐다. 교사 한분이 꺼낸 이야기 하나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았다.

'한 남학생이 한 여학생의 따귀를 때렸다.'

발표자로 나온 선생님이 학폭위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 이야기 하신다기에, 나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폭력이 발생했고 학폭위가 열렸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폭력을 행사한 남학생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데 무엇이 문제일까.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발표자 선생님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때린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폭력의 발단은 더 오래 전에, 다른 데 있었던 것이지요. 여학생을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거기 연루되어 있었고, 그 학생들은 남학생이 듣도록 일부러 심한 욕을 했다고 합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심지어 남학생이 볼일을 보고 있으면 화장실 밖에 무리지어 서서 흉을 보고 조롱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일이 6개월 동안이나 일어났다고 합니다."

남학생은 상처 입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 (정당방위적인?) 폭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점이 안타까웠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그러나 학교폭력을 경험한 나로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작정하고 조롱하는 무리 앞에서 누구든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곧바로 요구하는 것이 학교라는 시스템 속에서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이해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자기 속을 파먹게 된다는 것. 스스로 파먹고 스스로의 감정에 파 먹히다가 결국 바닥을 만나게 된다는 것. 

어릴수록, 아직 입체적인 사고가 힘든 나이일수록 이런 상황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남학생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학교폭력으로 인한 청소년 자살은 답답함과 우울함, 억울함과 고립감으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치유되고 알아서 괜찮아지는 그런 단순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약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더라면, 남학생은 더 심각한 일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남학생에게 있어서 폭력은 일종의 응급처방이었던 셈이다. 스스로가 죽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싸운 결과가 '폭력'이었다는 것은 우리 학교 사회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까. 남학생은 억울함을 해소하지도 못한 채, 가해자로서 처벌까지 받아야 한다니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그 사건 이후가 어떻게 되었을지 지금도 너무 걱정이 된다).

발표를 다 듣고 난 후, 남학생도 실제로는 피해자였다는 데 나는 많이 놀랐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학교폭력 사건 속에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할 것 같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가 공동작업으로 만들고 있는 학교폭력 대처법이란 책이 오히려 요즘 학폭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작용을 부추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의 말보다 사법적인 정보나 결과에만 귀를 기울이는 현상이 늘어난다면, 2차 3차의 피해가 무수히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상황 속에서는 정작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 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의 학교폭력 대처법에도 문제가 있다

현재 많은 학교들이 학교폭력에 대응하고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법적 판단이다. 또는 학폭위에서 내린 '강제 퇴학'이나 '강제 전학'과 같은 처벌이다. 학교는 폭력 문제를 학폭위에서 처벌 징계토록 하고, 더 심각한 사안일 경우 사법 체계로 인도한 지 오래됐다. 법률을 마치 용이한 도구처럼 생각하는 어른들이 학생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지 않는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실제로 학교폭력 발생 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모든 학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된다. 이는 학생들이 점점 더 흉악해져서라기보다는, 아주 사소한 다툼까지도 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관심과 이해, 공감과 소통보다 사법적인 판단과 사법적인 해결이 우선순위라는 인식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 더 많이 퍼져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서 우리들은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학생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하는 것이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단순하지 않은 사건을 아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버리는 것. 그 안에서 학생들은 어린 나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 학폭위 결정의 가장 큰 맹점은 그것이 늘 사후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에만 머무른다는 점이다. 

그 이후의 세심한 보호와 원인 규명이 없다는 점에서 학교관계자들의 모든 관심은 처벌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것이 사실은 제일 손쉬운 처리방법이기 때문이다. 대다수가 면밀하게 학교폭력을 들여다보려고 하질 않는다. 결국 법을 들고 싸우는 어른들 사이에서, 진짜 피해자가 되는 쪽은 학생들이다.

많은 학교의 이런 현실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결국 우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모든 계획은 사건과 사건 사이에서 서로 잡아당기거나 밀어내는 힘에 의해 끊임없이 그 방향이 수정되거나 보완된다. 실제로 원고를 힘차게 써나가던 힘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변호사에게 보내는 원고의 양도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학교폭력 사건을 무조건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이야기가 무엇일까. 내가 목격한 폭력과 폭력 이후의 현실을 통해 나는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사후적인 대책보다 사전에 학교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진짜 현실에 맞는 강의를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새로운 수업을 연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학교폭력 문제에 균형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생들을 위해 내가 어떤 수업들을 운영해야 하는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학교폭력 '예방법' 필요

나는 '김승일 시인의 모의법정'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학기마다 그 수업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켜서 학생들 간의 갈등 상황에 적용하려고 애쓴다. 첫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칠판에 쓰고, 크게 읽어본다.

"타인을 괴롭힐 때 쓰는 건 창의력이 아니야, 타인을 돕는 데 쓰는 게 창의력이지."

나는 결국 법률이 시도하지 않는 법률로 조금 색다른 교육을 하기로 결심했다. 학생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금세 양분하는 법률이 아니라, 인문학 수업을 활용해서 학생들과 함께 이 세계의 법과 질서의 원리를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나는 '법률'을 들고 '교실'로 들어가는 방법을 택했다. 기존의 '펀펀! 모의법정' 수업이 직업 교육의 의도에서 시작되었다면, 내가 새로 고안한 '모의법정' 수업은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체험 토론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학생들은 이 수업에서 실제로 학교폭력이 일어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상황들을 대리 체험한다. 학교폭력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 스스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교실 안에 마련되는 것이다. 나는 이런 류의 수업이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근본적인 교육이자 대안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업 때 촬영한 사진들을 학기 말에 전시한다.
 수업 때 촬영한 사진들을 학기 말에 전시한다.
ⓒ 최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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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속의 학교폭력 모의법정에서 변호사 역을 맡은 학생들이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 증거자료로 제출한 단톡방의 내용이다. 학생들은 요즘 이렇게 카톡이나 SNS를 통해서 학교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물리적인 폭력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 무서운 실정이다. 단톡방에 초대되어 여러 명으로부터 집단 언어폭력을 당한 학생은 자존감이 무너져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모의법정에 참여하거나 참관하는 학생들은 이런 증거자료들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또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게 된다.
▲ 카톡 속의 학교폭력 모의법정에서 변호사 역을 맡은 학생들이 피고인을 변호하기 위해 증거자료로 제출한 단톡방의 내용이다. 학생들은 요즘 이렇게 카톡이나 SNS를 통해서 학교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물리적인 폭력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 더 무서운 실정이다. 단톡방에 초대되어 여러 명으로부터 집단 언어폭력을 당한 학생은 자존감이 무너져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모의법정에 참여하거나 참관하는 학생들은 이런 증거자료들을 스스로 만들어보고, 또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갖게 된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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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 학기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된다.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나는 모의법정 수업을 통해서 '사람이 사람을 왜 존중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의 기회를 학생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자꾸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디테일하게 연기해보기도 한다.

학생들은 미처 알지 못했거나 외면했던 상황들을 피부로 느낀다. 판사, 변호사, 검사의 역할은 어쩌면 '진짜'를 보기 위한 상황극의 도구일 뿐이다. 내 수업은 법률전문가를 양산하기 위한 수업이 아니라, 학교폭력을 서서히 근절시키고, 더불어 좋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유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학생들은 가상의 학교폭력 사건을 더 밝은 곳에 놓고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어떤 것이 학교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또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망치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개중에는 진실로 감동해서 미래를 기약하는 학생들이 나오기도 한다. 좋은 법률전문가가 되어서 학교폭력 근절에 힘을 쏟겠다는 몇몇 학생의 발표를 들었을 때 나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으로 완성된 예방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판결 선고 최종적으로 판결 선고를 하는 모습이다. 모의법정이기는 하지만, 어떤 것도 이 법정 안의 공기를 흩어버릴 수는 없었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 왜 폭력을 행사했을까' 하고, 피고인은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의법정에서 피고인은 아직 학생인 점을 감안하여 500만 원의 벌금 납부와 사회봉사활동 및 폭력재발방지 프로그램 교육 이수 등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감옥에 가는 일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고백을 피고인으로부터 받아냈다. 판사님들은 판결 선고를 하고 난 후 '땅땅땅' 판사봉을 세 번 두드리는 것으로 모의법정의 모든 과정을 종결했다. 법과 질서의 권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판결 선고 최종적으로 판결 선고를 하는 모습이다. 모의법정이기는 하지만, 어떤 것도 이 법정 안의 공기를 흩어버릴 수는 없었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에 대해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 왜 폭력을 행사했을까" 하고, 피고인은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의법정에서 피고인은 아직 학생인 점을 감안하여 500만 원의 벌금 납부와 사회봉사활동 및 폭력재발방지 프로그램 교육 이수 등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폭행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감옥에 가는 일까지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다시는 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고백을 피고인으로부터 받아냈다. 판사님들은 판결 선고를 하고 난 후 "땅땅땅" 판사봉을 세 번 두드리는 것으로 모의법정의 모든 과정을 종결했다. 법과 질서의 권위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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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어뜯겨 빠진 머리칼처럼
저들도 한 올 한 올
혼자 다니기 시작하는 때가 오는 것이다
- 시집 <프로메테우스>, '마그덴부르크의 저녁' 부분
 
학생들이 때론 외로워져도, 학생들이 저마다 혼자라도, 학생들이 더 멀리 걸어갈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내 수업을 더 많이 수정하고 보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누구나 인생에서 혼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 놀림과 조롱과 괴롭힘 가운데 처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우리가 혼자라고 해서 영영 혼자인 것은 아니다.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는, 언제든 더 큰 '우리'가 될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이 한 개인으로서, 또는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당당하게 불의에 항거하는 올바른 저항 정신을 갖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더 나은 것들이 필요하다는 의식을 '지금-학교'에 불어넣는 주체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 대처법에 관한 책 출판은 자연스럽게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 무산됨은 나에게 양분이 되었다. 시인 선생으로서 한 시절을 살아가게 할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최근에 한 것 같다. 정작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법률 지식으로 도배된, 그런 책 한 권이 아닐 것이다.

법률 지식만을 전하고 말 그런 책의 자리에, 어떤 진정성이 먼저 도착해 있었으면 한다. 법적 진흙탕 싸움에 학생들을 끌고 들어가는 일은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니다. 사법적인 처리에만 관심을 갖고 있는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들도 조금 더 학생 편에서 학생의 미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019년 5월호에도 실은 글을 다듬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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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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