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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을 읽었다. 이로써 스티븐 호킹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쓴 교양 과학서를 거의 다 읽은 셈이다. 2018년, 이 위대한 학자가 우리를 떠나갔을 때 나는 아무 글도 쓸 수 없었다. 1년이 지나 그의 마지막 책을 읽고 나니,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해볼 용기가 생긴다.

<시간의 역사> 서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호킹이 교양 과학서를 쓴다고 하자 동료가 조언을 한다. 방정식을 하나 넣을 때마다 판매 부수가 절반씩 줄게 될 테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호킹은 서문에서 말한다. 어쩔 수 없이 방정식 단 한 개를 넣었는데, 그걸로 독자 수가 절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그 방정식은 바로 그 유명한 E=mc2이다.

호킹은 이 방정식이 '꼭 필요해서' 넣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전환된다는 사실만 말해도 되고,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될 때 어떤 상수의 비율로 변환된다고만 말해도 된다.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될 때 그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고 무식하게 말해도 된다. 어느 쪽이든 방정식은 필요 없다. 호킹은 그저 저 방정식이 너무 좋아서, 그리고 아인슈타인에 대한 경의에서 저 식을 쓴 것이다.

탁월한 물리학자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표지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표지
ⓒ 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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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신의 존재, 우주의 기원, 미래 예측, 시간 여행 등 열 가지 질문, 소위 '빅 퀘스천'에 대한 호킹의 대답을 담고 있다. 절친 킵 손이 서문에서 밝히듯, 호킹의 가장 중요한 공로 중 하나는 소위 '정보 모순'에 관한 것이다. 그는 블랙홀이 정보를 삼켜버리고 뱉지 않을 수 있다는, 즉 정보 소멸의 '문제'를 제기했고, 비록 그 기제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사실은 정보가 소멸하지 않는다는 '대답'도 내놓았다.

정보 모순이란 복잡한 개념을 어찌 교양 과학서에서 다룰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방대한 수학적 풀이를 배경으로 한다. 호킹은 물리학자로서, 그리고 장애를 이겨낸 한 인간으로서 위대하기 그지없지만, 교양 과학 해설자로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1960년 대 헤르만 본디 등은 초전환(supertranslation) 대칭이란 것을 발견한다. 초전환 대칭과 연관된 보존량은 우주에 무한대로 존재한다. 블랙홀은 어쩌면 질량, 전하량, 스핀 등 세 개의 기본값 이외에 수많은 초전환 전하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블랙홀은 대머리다'라는 주장과는 다르게 각각의 블랙홀은 아주 다양한 개성을 지닌 존재가 된다. 뭘 먹었든 똑같이 보이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블랙홀은 뭘 먹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보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홀은 초전환 전하도 실어 나른다. 따라서 어쩌면 블랙홀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전하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블랙홀은 대머리이거나 머리카락이 세 가닥밖에 없는 것이 아니고, 실은 아주 풍성한 초전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170쪽)

2004년, 호킹은 한 강연에서 친구 프레스킬과의 내기에서 졌음을 시인한다. 정보가 보존된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때 호킹은 내기 상품이었던 백과사전을 그대로 주지 말고 태운 다음에 재로 줄 걸 그랬다는 유명한 농담을 남겼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때에는 백과사전이라는 쓸모 있는 형태의 정보였지만, 블랙홀에서 증발될 때 나오는 정보는 백과사전을 태우고 남은 재나 연기와 같이 쓸모없는 형태라는 이야기였다.

행동하는 양심

이 책의 제10장은 상상력에 관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열여섯 살 때 빛의 등에 올라타 세상을 바라보는 상상 실험을 했다.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현대 문명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력의 산물인 현대 문명은 오히려 상상력을 압살하고 있다. 호킹은 어렸을 적 여러 가지 물건들을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볼 뿐이다.

브렉시트와 트럼프로 대표되는 국수주의적 반항이 역사의 발전을 가로막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호킹은 외친다. NASA의 예산은 1970년대나 지금이나 액수로 비슷하다. 그 당시에는 미국 GDP의 0.3%였지만 이제는 0.1%에 불과하다. 과학에 대한 투자를 지구 전체 GDP의 0.25%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호킹의 주장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겨우 0.25%를 투자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호킹은 또한 인공지능의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인공지능이 반항하면 그냥 플러그를 뽑으면 되지 않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하지만 호킹은 대답한다. 과연 플러그를 뽑을 수 있을까?

영화 <터미네이터>가 보여주는 미래에서 과연 사람들이 스카이넷의 플러그를 뽑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이미 신의 영역에 도달한 컴퓨터는 인간 따위가 플러그를 뽑는 행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한 통제를 유지해야 하며, 그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그것의 통제와 함께 연구되어야 한다.

호킹은 또한 핵전쟁, 기후 변화 그리고 소행성 충돌이라는 미래의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핵 대치 상황은 고의가 아니라 실수에 의해서도 재앙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인공지능에 의해 제어되는 무기와 결합하면 그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수많은 군사 기업이 인공지능 무기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런 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소행성 충돌에 대해서도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가장 최근의 대규모 소행성 충돌은 6600만 년 전에 일어났으며, 공룡을 멸종시켰다. 평균적으로 2천만 년 정도마다 그런 소행성 충돌이 일어났으니, 이렇게 오랫동안 재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저 요행일 뿐이다.

현재 인류는 소행성 충돌에 대항할 방법이 없다. 우주 탐사와 개척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가 우주 진출을 꿈꾸지 않는 것은 무인도에 갇힌 사람이 탈출을 꿈꾸지 않는 것과 같다고 호킹은 말한다.

기후 변화는 코앞에 다가온 위협이다. 많은 이들이 과학이나 사실이 아닌 이유를 들어 기후 변화를 의심한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이미 현실이다. 어느 단계를 지나면 기후 변화는 스스로 가속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컨대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버리면 태양광을 반사하는 정도가 줄어들어 지구는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하고 기온을 높이게 된다.

그럼에도 호킹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다. 앞으로 1000년 안에 인류는 자신의 DNA를 완전하게 재조합할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그는 예언한다. 달, 화성, 그리고 외계 행성에도 차례로 유인 탐사선을 보낼 것이라 생각한다. 핵 대치, 소행성 충돌 그리고 기후 변화라는 암울한 가능성에 대해 호킹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인류가 미래의 위협에 대해 알고 대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위대한 인간
 
 스티븐 호킹, 1980년대
 스티븐 호킹,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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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은 겨우 21살의 나이에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 (소위 '루 게릭' 병) 진단을 받았으며, 의학적 예측을 뒤엎고 76세까지 살았다. 50년이 넘게 신체적 한계와 싸워온 모습만으로도 호킹은 위인의 칭호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말미에는 그의 딸 루시 호킹이 붙인 후기가 있다. 호킹은 어떻게 그런 잔인한 장애를 딛고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까.

그녀가 아직 아이였을 때 이야기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케임브리지 교정을 뛰어가는 아이 둘, 그리고 그 뒤를 미친 속도로 질주해 따라가는 휠체어를 탄 어른. 그런 모습을 노골적으로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1970년대에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어땠을지 생각해 보지 않더라도, 호킹 본인은 물론 가족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은 쉽게 짐작이 된다. 그러나 호킹은 언제나 낙관적이었고, 성실했다.
일흔다섯의 나이로, 몸이 완전히 마비되어 얼굴 근육 몇 개만을 간신히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아버지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옷을 입고 일하러 나가셨다. 그에게는 할 일이 있었고, 사소한 문제들이 그를 막아서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다. (285쪽)

호킹은 그가 경애해 마지않던 아이작 뉴턴과 찰스 다윈 사이에 묻혔다. 실험에 의한 입증이 불가능한 관계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 못한 그는 이제 그 상을 받을 가망이 전혀 없다. 노벨상은 사망자에게는 수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위대함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는다. 물리학자로서, 장애를 이겨낸 인간으로서, 그리고 시대의 양심으로서 그의 위대함이 인류의 미래와 함께하기를 빈다.

호킹의 빅 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

스티븐 호킹 지음, 배지은 옮김, 까치(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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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