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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하면 절로 떠오르는 단어가 '갑질'입니다. 갑질은 강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부당행위입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키는 대로 해라는 입장과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하 관계를 일컫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썩 유쾌하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갑도 되고, 을도 되는 공통분모 속에 살아갑니다. 갑과 을은 인간 세상에서 서열, 위치 등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중 하나입니다. 다만, 서로 상생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인류를 꿈꿀 뿐입니다. 양심상, 그렇다고 꿈만 꾸고 있을 순 없습니다. 변화를 꾀하려는 노력과 실천이 중요합니다.

삼 년 전, 모 대기업 계열사 생산라인 현장에서 경비로 근무할 적 이야기입니다. 3조2교대 근무. 일근자들이 없는 야간에 순찰합니다. 신입이던 초장기, 순찰하면서 놀랐습니다. 고용주가 누구냐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 미처 몰랐습니다.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들은 대부분 협력업체 혹은 하청업체에게 일을 나눠 맡깁니다. 제품 생산은 원청회사 생산 노동자 몫이고, 포장 등은 협력업체가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협력업체에서 일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차별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임금에서부터 작업환경, 편의시설 등 차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기업과 대기업 노동조합이 외면하는 사이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나락으로 내동댕이쳐지고 있었습니다.

생산직 현실 상, 제품을 만들다 보면 땀을 많이 흘립니다.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여름이면 에어컨을 최대한 가동해도 땀과 사투는 필수입니다. 자연스레 속옷까지 젖습니다.

일을 마친 후 근무 교대 시간에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샤워장으로 직행해 몸을 씻는 건 기본입니다. 원청 노동자와 협력업체 노동자의 샤워장과 탈의실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대기업 원청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대기업 원청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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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원청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입구 탈의실
 대기업 원청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입구 탈의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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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원청 소속 생산직 노동자의 샤워실과 탈의실입니다. 샤워실 바닥과 벽은 미끈한 타일로 깔끔하게 마감됐습니다. 1인용 샤워부스에는 유리 칸막이와 거울, 샤워기가 설치됐습니다. 정갈하게 나열된 탈의실 개인 옷장은 유명 가구업체 제품입니다. 정수기, 헤어드라이어, 화장품, 빗, 휴지통, 세탁기 등 기본 용품이 비치됐습니다.
 
 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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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앞 탈의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샤워실 앞 탈의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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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노동자의 샤워실과 탈의실입니다. 샤워장 바닥 타일은 깨졌고, 샤워기는 달랑 세 개에 멀쩡한 걸이가 거의 없으며, 배관도 노출돼 썰렁하고 지저분합니다. 탈의실 가구는 공동 옷장으로, 오래된 철제 제품입니다. 책상 위에는 헤어드라이어 하나가 달랑 놓였습니다.

샤워실과 탈의실 외에도 화장실, 사무실 등 '갑과 을'의 현실 차이는 현저했습니다. 원청 노동자와 하청업체 노동자의 편의시설을 비교하면 호텔과 여인숙쯤 된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고 전환이 필요합니다. '을'은 '갑'의 총알받이가 아닙니다. 언제나 필요하면 쓸 수 있는 '하인'이 아닙니다. 협력업체 '을'은 원청회사 '갑'을 지탱해 주는 근간입니다. 즉 을은 갑의 이익을 보존해주는 최후의 버팀목입니다.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요구하다  

제가 노동 현장에서 본 '을'은 처우뿐 아니라 근무환경, 편의시설 등이 너무나 열악했습니다. '대체 갑은 을을 사람으로 생각하긴 할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습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원청 회사와 협력업체 소속 여부를 떠나 공동 운명체입니다.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면 안전사고 등 부수적인 효과까지 동반됩니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방안 마련이 절실했습니다.

바람이 통했을까요. 갑과 을의 차별을 건의할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마침, 그룹 본사 감사팀이 방문했습니다. 현장에서 협력업체 편의시설 개선 등을 건의했습니다.

"빨리 개선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긍정적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공장장에게도 탈의실 수리를 요청했습니다. 기다려달라는 의지 표명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통했을까요. 그 후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편의시설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일을 그만뒀습니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곳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샤워실과 탈의실의 수리돼 말끔해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을 '갑과 을'의 다른 차이와 차별들도 더 많이 개선됐길 희망해봅니다. 더 나아가 경쟁보다 협력을, 대립보다 조화를 살피는 기업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정착하기를 꿈꿔봅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타인을 위하는 게 곧 자신을 위한 길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안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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