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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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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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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대 맞을래? 스스로 정해."

엄마는 회초리를 내 발치에 놓으셨다. 내가 마당에서 직접 꺾어온 라일락 나뭇가지였다. '뭐로 맞을지 직접 가져오라'고 하셔서 울면서 찾아온 매였다. 맞는 이유야 뻔했다. 어린아이들이 혼나는 일은 고만고만하다. 밀린 학습지를 하기 싫어 마당에 감췄다가 들켰기 때문이다.

"한 대. 아니, 세 대요."

그날 나는 엉덩이 세 대를 맞았다. 매는 쓸모 있었을까? 효과는 딱 2001년 영국 세이브더칠드런이 정리한 '체벌 후 아이들이 느끼는 바' 만큼 있었다. 미안함과 반성은 없고 무섭고 창피했으며 슬프기만 했다. 거짓말은 '아픈 훈육'으로 이어진다는 정도만 깨달았다. 

엄마가 유난한 분은 아니셨다. '귀한 자식은 매로 다스리라'는 신념이 강했던 시절에 아이를 잘 키우고자 고군분투하셨던 분이었다. 평일에는 독박육아를 하셨고, 주말에는 할머니 댁 농사일까지 도우며 삼 남매를 키우셨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회초리를 들지 않으셨다. 매 없이도 아이가 스스로 잘 판단하리라 믿으셨기 때문이다. 

삼 남매는 탈 없이 잘 자랐다. 부귀영화를 누릴 만큼 출세하진 않았으나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시민이 되었다. 공부도 그럭저럭 하여 모두 교육 대학교로 진학했다. 나는 '매 맞고도 잘만 크더라'는 숱한 사례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맞고 자란 제가 체벌 없이 두 아이를 키웁니다
   
맞고 자란 나는 체벌 없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심지어 '체벌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마저 강하다. 

매가 보약인 시대에 자랐기에 체벌 없이 아이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초보 부모의 육아는 대개 '우리 부모님은 날 어떻게 키우셨더라?'하는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5살인 큰아이가 "먹을 게 없잖아"하며 까칠하게 식탁을 등지면 인상부터 구겨진다. '나 어릴 적 같았으면 등 한 대 맞았을 텐데'하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꾹 누른다.
  
 무법자 같은 두 아이와 산다. 그러나 체벌은 없다.
 무법자 같은 두 아이와 산다. 그러나 체벌은 없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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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훈육 목적으로 회초리를 들지 않는다. 나는 초등학교 교사인 덕에 '맞아야 잘 크더라'는 기존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교사는 학생 손바닥 한 대조차 때려서는 안 된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신체적 고통 없이 아이들을 가르쳐야만 했다. 

2011년 첫 발령을 받았다. 당시 나는 초심자의 열정으로 가득했다. '교육대학교에서 배운 바를 현장에서 펼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있었다. 대학에서는 '벌보다는 강화'를 하라고 배웠다. '벌'은 문제 행동의 빈도수를 줄일 뿐이지만 칭찬과 역할 모델 같은 '강화'는 올바른 행동을 유발한다. 아이들이 좋은 행동을 하려면 '매로 가르치'는 것보다 '칭찬과 모범으로 전염'시키는 게 유익하다는 걸 이론으로 깨우쳤다. 

하지만 현장은 조금 달랐다. 한창 사춘기를 치르는 6학년 아이들은 이리저리 튀는 공과 같았다. 현장체험학습 도중 사슴벌레를 모자에 넣고 도망친다거나,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선 PC방으로 향했다. 심지어 사회 수업 시간 중에 벌떡 일어나 리코더를 부는 아이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학부모님들은 일관되게 호소하셨다.

"때려서라도 우리 아이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지만 때릴 수 없었다. 체벌하는 교사는 밥줄이 끊긴다. 나는 내 밥줄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때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 안다.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말이다. 갓 부임한 햇병아리 선생님이 왔을 때를 기회 삼아 우리 반 아이들은 물 만난 물고기 마냥 그동안 못 해봤던 걸 다 해봤다. 

담임인 내가 할 수 있던 건 수업 시간에 딴짓 못 할 정도로 즐거운 수업 꾸리기와 상담 기법 공부였다.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수업 자료를 만들었고, 상담일지를 꼼꼼히 썼으며, 학교생활 잘하는 아이들에게 보상으로 부모님께 '칭찬문자'를 전하기도 했다. 매를 들면 편했겠지만 그랬다가는 직장을 잃는다. 나로서는 수업 연구와 민주적인 학급 운영이 살길이었다. 자연스럽게 '교육심리'를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 시험까지 치러 입학했다.
    
그리고 2016년, 제자들이 찾아왔다. 나는 돌도 안 된 큰아이를 업고 시내로 나갔다. 키가 작아 고민이던 제자가 170cm를 넘겨 훤칠해진 키로 돈가스를 앞에 두고 말한다. 용돈을 모아 샀다는 돌쟁이 여아 튜튜 치마를 건네면서 말이다. 

"제가 그때 너무 말썽부렸죠. 죄송해요." 
"나 같은 초보 담임 밑에서 너희가 고생했지. 나도 미안해." 


밥줄을 지키고자 매 들지 않았건만 아이는 감사하게도 잘 자라주었다. 입시를 앞두고 한창 긴장되고 바쁜 시기에 5년 전 담임 선생님을 찾아뵙는 마음이 어디 쉬운가. 제자가 잘 자란 건 운이 아니다. 숱한 연구 결과가 말한다. 체벌을 받고 자란 아이들의 반사회적 성향과 공격성,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단단한 내면을 말이다.

"체벌의 긍정적 효과는 그저 믿음 뿐이다"
   
현 여성가족부 차관이자 6년간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을 거친 김희경 작가는 저서 <이상한 정상 가족>에서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한다. 2016년 미국 텍사스 대학교에서 체벌에 관련한 50년 치 데이터를 메타 분석한 내용이다. 

체벌의 강도는 '손바닥으로 아이의 엉덩이나 팔다리를 때리는 정도'였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체벌은 신체적 학대와 같은 수준으로 아이에게 해로웠다. 공격적 성향, 반사회적 행동, 인지 장애 등 부정적 행태들을 보였다.
 
"매를 들고 무섭고 엄하게 다스려야 아이들이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고 잘 자란다는 통념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무수한 실증적 데이터는 오히려 그 반대를 가리킨다. 체벌의 긍정적 효과는 그저 믿음뿐이고, 체벌의 부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연구들은 워낙 많아서 이건 논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 <이상한 정상 가족> 중. 김희경 지음.
  
현재 정부는 민법 915조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내용 중 징계 부분에 '체벌 금지'를 명시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 아이 망치면 국가가 책임질 거냐' 혹은 '온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 거'라는 비판 여론과 다르게 이미 체벌이 사라진 학교 현장에서도 아이들은 탈 없이 잘 자라고 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주먹다짐에 대한 인식 변화다. 이제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때린다'는 데 익숙하지 않다. 맞으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자라는 중이다. '싸우면서 크는 거지'라는 오랜 관습은 '그래도 때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인식의 지평에 이르렀다. 

그 기저에는 교육기관과 보육 기관의 체벌 금지법, 그리고 학교 폭력에 대한 무관용 징계가 있다. 법은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 지평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학교뿐인가. 영유아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도 강화되었다. 법이 선행하자 아동의 신체적 고통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14개월 영아가 이유식을 먹지 않는다고 뺨을 때렸던 금천구 아이 돌보미에게 여론은 뭇매를 날렸다. 그 누구라도 아이를 때리는 교사와 보육교사에게 선처는 없었다. 아동 학대 금지법 덕이다.

아이는 체벌로 잘 클 수 없다
 
 매 없이'도' 잘 키우는게 아니다. 매가 없어야 아이들이 더 잘 큰다.
 매 없이"도" 잘 키우는게 아니다. 매가 없어야 아이들이 더 잘 큰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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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않기 위해 한 번 더 해야 할 일이 있다. 1960년 이래 59년 동안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낡은 법 민법 915조, 부모의 징계권에 대한 개정이다. 자녀 체벌 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주요 선진국 중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마저도 일본은 올해 '자녀 체벌 금지법'안을 상정해 심의 중이다. 

2015년 부모의 감금과 학대를 피해 가스 배관을 타고 내려와 간신히 탈출했던 11살 소녀가 있었다. 이 아이는 다시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져야만 했다. 아동 학대와 친권자의 징계권 사이에 분명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칠곡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16년 평택 아동학대 사망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경찰들은 헷갈렸다. '내 아이 삐뚤어지면 경찰들이 책임질 거냐'는 부모들의 말은 그럴듯했다. 우리는 아직 '아이는 절대 때려서는 안 된다'라는 인식보다 '교육 목적으로 때릴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폭력이 어떤 식으로든 용납될 수 없었다면 이 아이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지지 않고 살았을 거다. 

육아 전문가들은 입 모아 말한다. '아이는 체벌로 잘 클 수 없다'고 말이다. 오은영 박사는 저서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에서 '육아를 잘 하는 부모일수록 화를 덜 낸다'라고 말했다. 이임숙 소장은 저서 <따뜻하고 단단한 훈육>에서 '진정한 훈육은 엄격하기보다 따뜻하고 단단하게 깨달음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1호 영재 푸름이의 아빠 최희수씨는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에서 좀 더 강한 어조로 말한다. '체벌은 독서를 하지 않아 언어가 빈곤한 부모가 말로 타이르지 못하는 경우에 하는 행동이다.' 그의 말이 맞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체벌과 학대의 명명백백한 기준이 아니다. 체벌 없이 공감과 배려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육아 소양을 갖출 일이다. 

상전이나 다름없는 두 딸 육아에 나날이 도 닦는 심정으로 산다. '내 안의 미친년'은 내게도 예외 없다. 유치원 버스 도착 10분 전에 딱풀을 꺼내 색종이를 붙이는 아이를 설득하다가 버럭하기도 예사다. 그런데도 매를 들지 않는다. '혹시' 잘 클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아니다. 이렇게 해야 아이가 '더' 잘 클 거다. 수업 시간에 벌떡 일어나 악기 연주를 하던 아이가 5년 뒤 선생님 안부를 물으러 찾아와준 것처럼 말이다.

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2017)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지음, 코리아닷컴(Korea.com)(2016)


따뜻하고 단단한 훈육 - 소리지르고 후회하고, 화내고 마음 아픈 육아는 이제 그만!

이임숙 (지은이), 카시오페아(2017)


푸름이 이렇게 영재로 키웠다 -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평범한 부부의 육아 철학

최희수, 신영일 (지은이), 푸른육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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