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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와 그녀의 열 살 난 딸을 함께 만났다. 몇 마디 인사를 주고 받은 끝에, 나도 모르게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질문을 하고 말았다. 

"숙제는 다했어?" 

안 했으면 어쩔 거고 했으면 어쩔 건가. 요즘 들어 알게 된다. 어릴 때 내가 들었던 숱한 불편한 질문들도, 그저 할 말 없는 어른들의 아무말 대잔치였다는 것을. 그걸 알았다면 장래희망을 지어내느라 골치가 아프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말을 하자마자 아차차 싶은데, 아이의 태연한 답에 잠시 멈칫했다.

"그럼요. 제가 알아서 할 줄은 몰라도, 시키는 건 참 잘하거든요." 

놀란 건 나만이 아니었다. 친구 또한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어른들이 놀란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그저 먹느라 바빴다. 이 아이의 말은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 책표지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 책표지
ⓒ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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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사랑받고 자랐을 것이다. 그러나 양육자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깨닫는 것은 양육자를 재단하거나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심리 상담의 대가 라우라 구트만의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는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유년 시절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경험한 폭력과 두려움, 애정 결핍, 복종, 외로움 등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말은 기억한다. 자신이 어떤 아이인지 설명하고 평가한 말은 물론 어머니의 괴로움과 희생, 어려움까지도 기억하는 것이다. 즉, 우리의 기억은 어머니 혹은 양육자의 말을 바탕으로 형성된다는 것.

그러나 유년 시절의 기억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어머니에 대한 정서적 충성심은 가장 큰 장애물이다. 어머니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그녀의 수고와 희생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경우 또한 많다.

저자는 이 책이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특정 기준을 강요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다만,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할 뿐이다.
 
"나는 다양한 연구와 저술을 통해 객관적인 실제 현실에 접근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과거에 일어난 일, 그것 때문에 했던 행동, 그리고 지금 하는 행동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게 된다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될 것이다."(p11, 프롤로그)

이 책은 유년기, 기억하지 못하지만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근원이 되는 시절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 시절을 이해함으로써 유아기적 복종 상태를 벗어나 자기 자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규정한 모습대로 사는 것은 삶을 황폐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녀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혹은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존재인지' 결정된다. 뱃속에서부터 조용하고 착한 아이로 불릴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울보, 까다롭다, 보챈다, 조용하다, 고집세다, 짓궂다 등등 다른 누군가로부터 평가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연 그 말들이 사실일까. 그것은 양육자가 보기에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양육자의 기준이며 그에 따른 평가였을 뿐, 우리 자신의 기준은 아니었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되고 언급된 것이다. 그렇게 우리에게는 이름표가 붙여지고 배역이 결정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이론이다. 

가령, 당신이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는 헌신적인 아이였다고 치자. 당신은 어머니의 고통은 기억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머니의 돌봄과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착하고 책임감 있는 아이였을 뿐, 평생을 따라다니는 결핍이나 욕구 불만의 정체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구체적인 행동이나 태도에 대한 해석이 정서적 현실과 매우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기억 또한 누군가의 해석이 담겨 있을 뿐, 모든 진실이 반영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렇게 타인이 정해준 배역으로 사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까닭이다.

저자는 그 배역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모든 배역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자신을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배역이 본 모습과 균형을 이룰 수 없거나 오직 단점으로 남아 자신을 괴롭힌다면, 그것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설명한다. 

책을 읽으며 내게 익숙한 배역을 떠올리며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다. 그것이 나와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100%의 내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남이 재단한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어리석은 삶을 벗어나 내가 만든 나로 살아가고 싶다. 이것이 욕심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배역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첫째, 상황을 인식하고 둘째, 자신의 행동을 파악하고 셋째, 긍정이든 부정이든 자기가 한 일에 책임지겠다고 결단해야 하며 넷째,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반응이나 습관을 버리고 거짓말과 '방어 행동'을 줄이며 의식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배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 곧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것뿐이다. 맞지 않는 배역으로 삶이 고통스럽다면, 저자의 말을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오직 나만이 변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어떤 점을 싫어한다면 거기에는 자신의 그림자가 반영된 것이다. 시나리오에 나타나는 것(행복이든 고통이든)은 우리 삶의 이야기이다. 시나리오 전체가 고통스럽다면 먼저 자신을 바꿔야, 환경도 바뀔 것이다."(p111)

엄마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일까

라우라 구트만 (지은이), 김유경 (옮긴이), 르네상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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