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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는 못했지만 나만의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성실히 살아가는 낙관주의자입니다. 불안하지만 계속 나아가는 X세대 중년 아재의 좌충우돌 일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유년 시절을 돌아보면 구기 종목과 남들을 웃기는 재주는 확실히 평균 이상이었다. 하지만 평균 이하의 실력을 뽐내던 분야도 있었으니, 수영과 그림 되겠다. 냇가가 있는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여름만 되면 물놀이를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미술 시간은 고통스러웠다.

학창 시절의 나는 정물화라는 이름으로 교탁 위에 올려진 과일 바구니나 꽃병을, 풍경화라는 이름으로 학교 운동장에서 바라본 하늘과 산을 스케치북에 수 놓았다. 그러나 미술 점수는 아름다운 '미'와 '양'으로 성적표를 수 놓았다.  

우리 민족은 양궁이나 수공예, 골프 등 손의 섬세함을 살리는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온 세상에 떨치고 있으나 나만은 제외인 것 같았다. 각종 손재주 발휘의 시간이 오면 내 차례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다행히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그림을 그릴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그림과 자연스레 멀어졌다.

왜 나는 그리는가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와 명상을 하고 한약을 먹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와 명상을 하고 한약을 먹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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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인생에서 그림 그리기는 삭제된 것으로 생각하고 살던 40대의 어느 날, 회사로부터 좌천 통보를 받았다. 퇴사하라고 압박하는 인사 발령이나 다름없었다. 하루하루를 살얼음판 위에서 살다 보니 각종 부작용이 찾아 왔다. 가슴 떨림, 소화불량, 대인기피증, 얼굴 붉어짐, 잦은 분노 등.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글쓰기와 명상을 하고 한약을 먹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한적한 카페에서 그림을 그렸다. 40대 직장인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저비용의 방법을 선택했다. 잘 굴러가는 볼펜으로 이면지에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은 삐뚤었고 구도는 엉성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나면 기분 좋은 뻐근함이 어깨 주위로 느껴졌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만큼은 세상만사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그렇게 이면지와 철 지난 다이어리의 여백은 나의 놀이터가 됐다. 그림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다는 게 이런 걸까.

미술학원 성인반이라도 다녀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나만의 생각과 스타일대로,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려 보고 싶었다. 반 고흐 같은 화가가 될 것도 아니고 대학 진학을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그림이니까.

점심 식사를 마치면 덕수궁 돌담길을 지나 서울시립미술관을 들르곤 했다. 평일의 한산한 미술관에는 나처럼 잠시라도 여유를 즐기려는 직장인들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미술관 입구부터 인산인해였다. 심지어 전시관 앞은 맛집처럼 입장을 기다리는 줄까지 있었다. 대체 무슨 그림이기에.

'현존하는 화가 중 가장 비싼 그림의 소유자, 데이비드 호크니 내한.'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그의 명성과 그림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그림이 사진처럼 정교하거나 색다른 기교를 써서 감탄하는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그림에 담긴 아이디어와 생각에 마음이 움직이는 듯했다. '어떻게 그릴 것인가'보다 '무엇을 그릴 것인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면, 역시 굳이 미술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게 나의 결론이었다.

나의 자화상을 완성하다

얼마 후, 펜 드로잉이 아닌 채색을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고, 지인의 소개로 관련 원데이클래스에 참가했다. 이태원의 미로 같은 골목을 지나 도착한 복층의 작업실은 낭만을 상승시켰다. 캔버스에 붓만 스쳐도 멋진 그림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수업이 시작됐다. 캔버스에 간단한 스케치를 하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물감으로 채색을 하기 시작했다. 옆자리 수강생은 파리의 센강에서 바라다보이는 에펠탑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현실이 아닌 어떤 공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지나친 감상주의라고 웃었지만, 화실이란 공간에서 캔버스 위에 물감을 칠하는 시간은 나에게 몹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원데이클래스 화실에서
 원데이클래스 화실에서
ⓒ 김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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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데이클래스에서 완성한 작품
 원데이클래스에서 완성한 작품
ⓒ 김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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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후, 드디어 첫 작품이 완성됐다. 나는 출근 후와 퇴근 후가 완전히 달라지는 자화상을 일차원적으로 그려보았다. 캔버스를 양분해 왼쪽에는 족쇄 같은 붉은 넥타이를 맨 뭉크가 9시 출근 시간 1분 지각 후 절규하는 모습을 그렸다. 오른쪽에는 저녁 6시 1분. 퇴근하며 즐거워하는 알라딘 지니의 모습을 그렸다.

이 엉성한 그림에 나의 20년 가까운 직장생활에 담겨 있다니!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자화상 아닐까 싶다. 허무하기도 하고, 나의 기발한 생각에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아내는 내게 나르시시즘의 최고봉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림을 보며 생각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낮 동안은 타인에 의해 절규하겠지만, 퇴근 후에는 스스로가 램프의 요정이 되어 나의 작은 소원들을 들어주리라.

(그림 오른쪽 하단에 아내의 영문 이니셜을 새겼다. 아내는 정말 고맙다며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야겠다고 했지만, 그림은 한 달이 넘도록 제자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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