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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이 직접 몸으로 쓴 '직접고용'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이 직접 몸으로 쓴 "직접고용"
ⓒ <노동과세계> 정종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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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는 동안 하도급, 외주, 하청, 이런 걸 해보기도 했고 당해보기도 했다. 두 경우 모두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비슷할 법한데도, 세상엔 점점 하청, 외주, 프랜차이즈가 늘어간다. 결혼식에도 친구 대역을 하는 알바가 있고, 출판시장에도 대필 작가가 수두룩하다. 쇼핑에서 발품의 영역을 대신해주는 택배가 그러하고, 갈수록 번성하는 성산업 또한 아내, 여친의 대역을 하룻밤 해주는 대리 시장의 한 형태다. 

체육관 선거를 직접 선거로 바꾼 것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첫 승리, 첫 걸음이었던 것처럼,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실행하는 것은 인간 사회의 왜곡을 최소화하는 첫 단계다. 자신이 가꾼 농산물을 먹고, 직접 잡은 고기를 이웃과 나누던 시절엔 GMO(유전자 변형 생물)의 폐해도, 주기적으로 집단 살처분되는 가축도, 살충제로 범벅된 썩지 않는 과일도 없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작업 수행의 단계가 많아질수록 삶의 왜곡과 변질, 소외는 피할 수 없다.

IMF 시대를 거치면서 구내식당들이 모두 직영에서 외주로 바뀌었다. 뭘 의미할까? 외주가 될 때 절감되는 비용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먹는 음식 질의 저하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착취처럼, 어딘가에서 마이너스가 이뤄지면서 경영주의 지갑을 플러스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도급의 단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옥은 넓어진다. 인간관계는 기계화되고 소외되고 외면된다.

하청업체의 선정 기준은 '단가'다. 극소수가 이윤의 다수를 점하는 하청의 천국에서 다수의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국종 교수는 한 강연에서 "우리나라엔 일을 시키는 사람은 많은데, 직접 나서서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무수한 하청의 단계에 서서 소위 관리자들이 하달한 일을 해내는 사람은 가진 게 몸 하나뿐인 이들이다. 하청의 제일 아랫 계단에 선 그들이 일하다 꼬꾸라지면, 세상은 그 몸을 치우고 다른 몸을 끼워넣어 다시 기계를 돌린다. 

'하청'이라는 이름의 불필요한 겹겹의 외피는, 온갖 미사여구로 둘러대봤자 결국 그 핵에 자리한 기득권을 위한 착취 구조이며 보호장치일 뿐. 하청의 절차가 양산하는 부조리가 만악의 근원임을 파악한 사람들은 '직접고용'이라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1987년의 시민들이 외쳤던 직선제 개헌만큼이나 절박하다. 유토피아의 열매처럼 아득해 보이는 그 구호는 어느 먼 북유럽 국가의 얘기도 아니고, 고대 그리스의 전설도 아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장기 고용은 당연하게도 직접 고용이 아니었던가.

왜 그들은 함께 촛불을 들지 않는가

내 한 몸 만신창이 되고 내 가족이 수모를 겪을지언정, 사법개혁, 검찰개혁만은 기필코 해내겠다는 분이 있다. 그 결연한 뜻을 높이 산 대통령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두 사람의 결기를 보며, 그들의 진심을 믿어보고 싶은 마음 없지 않으나, 다시 한 번 마음이 멈춰선다.

해고된 톨게이트 수납노동자 1500명을 직접 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8.29)을 무시하고, 노동자들과의 교섭조차 외면하는 도로공사 사태를 두 분이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톨게이트 케노피 위에서,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던 노동자들은 대법원의 직접고용 판결이행을 거부하는 도로공사 사장 이강래와의 교섭을 요구하며, 9월 7일부터 본사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의 요구는 공기업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대통령의 공약이자 1심, 2심 재판부에 이어 대법원이 명한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다. 공기업의 최종적 수장인 대통령도, 법의 수호를 제1의 사명으로 해야 할 법무부 장관도 공기업에 의해 법치가 뭉개지는 현실에 눈 감고 앉아 공정을 말하고 사법개혁을 말한다? 

'조국 대전'의 소요가 번져가던 와중,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을 떠나며 한마디를 던졌다. "대입제도를 개선하라" 그 한마디에 정시와 수시, 학종과 수능 사이에 그어진 금을 다시 한 번 어디로 옮길지를 논하는 입시제도 개혁 논의에 시동이 걸렸다. 백날 입시제도를 뜯어고쳐도, 늘어나는 건 자살하는 10대의 비율이고, 강화되는 건 신출귀몰한 대치동 학원의 전문성이며, 높아지는 건 계급 사이에 쳐진 울타리였다.

10% 내에 들어온 자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세상, 아무나 쉽사리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의 울타리들이 쳐진 그 세상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녀를 울타리 안으로 들이밀고 보겠다는 부모들의 이전투구를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어떤 방식의 경쟁의 룰을 만들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아이들이 어떤 학교의 문을 나서든, 적어도 사람 대접 받으며 일하게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지 않는 한.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렸다.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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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학자는 법무부 장관 지정자 조국이 들춰낸 참여적 지식인 조국의 민낯에 분노하며 촛불을 든 서울대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생들이 조국 교수의 일로 촛불을 들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 촛불을 광주의 전남대생들이나 나주의 동신대생들이 같이 들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만약 같이 들 수 있다면, 그것은 새 아침을 부르는 촛불일 것이다. 아니라면? 그것은 공동묘지 도깨비불일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두의 좋음만이 참된 공공선이기 때문이다." - [김상봉, 씨알의 철학] 서울대생의 촛불, 너릿재 너머의 아이들

전남대생들이나 동신대생들은 조국 사태로 촛불을 들고 일어서지 않았다. 그 이유가, 서울대생들이 그들의 집회에서 했던 학생증 검사 때문인가? 이너서클에서 이미 멀찌감치 서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은 제 몸을 일으켜 집회를 주도할 만큼, 구체적으로 분노하지 않았다. 동신대에 다니는 학생은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에 분노하지 않도록, 그들 사이엔 건너 뛸 수도, 냄새 맡을 수도 없는 견고한 울타리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이 있으며, 그 비극을 만든 주체는 바로, 그들의 울타리 쳐진 촛불을 보고 비웃었던 바로 그 자들, 586들이다.

30대 초반의 젊은 작가 정지우가 이번 조국 사태와 관하여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들여다 보자.

"기성세대의 상당수가 세상을 평등하게 바꿀 수 있고, 출발점을 똑같이 맞출 수 있는 세상이 가능할 거라 꿈꾸고, 혁명을 공부했다면, 청년 세대들은 더 이상 그런 꿈을 믿지 않는다. (…) 그들은 왜 이 세계의 거대한 불평등에 분노하지 않는가? 왜 이 세계 전체를 바꾸는 어떤 정치적 가능성에 기대를 걸지 않는가? 그 대신 왜 그토록 자기가 속한 영역의 공정성만을 강박적일 정도로 요구하는가? 그 작은 세계의 룰이 무엇 때문에 그리도 중요한가? 왜 그들은 대의도 모르고, 넓은 세계관도 없고, 장기적인 인생 전망도 없이, 그 코앞의 공정성에 눈에 불을 켜고 집착하는가?

그 이유는 청년 세대가 겪은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체성, 존재, 심리적 안정감, 기쁨과 인정의 매커니즘, 절망과 좌절이 작동하는 인생의 사이클 자체가 그랬기 때문이다. 아직 스스로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기 전부터 강요받았던 끝도 없는 평가의 연속, 그 평가에 따른 상벌, 줄세우기, 그로 인해 계속하여 재구성되는 미래의 전망, 자기 존재의 가치, 서열지어진 정체성 따위가 평생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구속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학점이 B+이냐 B냐에 따라 절망과 기쁨의 강을 오가고, 토익 점수가 910점이냐 890점이냐에 따라 시간과 자유를 결정당한다.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건동홍국숭세단광명상가 중 어딘지에 따라 존재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느낀다. 인생의 모든 요소들에 관해 서열을 부여하고, 가장 섬세한 측면에까지 우열을 만들어 그들에게 던져준 건 이 세상이다."

'코 앞의 공정성'에만 절박하게 매달리는 오늘의 청년들을 만든 '이 세상'의 건설자들은 구체적으로 1998년부터 2008년, IMF를 극복했다고 자랑하던 그 10년간, 신자유주의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도입하여 사회 곳곳에 꼼꼼하게 이식하던 바로 그들이다. 공기업에서부터 민간기업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계급의 계단을 만들며, 숱한 미생을 만들어 오던 그들. 비정규직, 하청, 외주, 자회사를 건설하며, 다수의 국민들을 극소수의 기득권을 위해 부려먹을 개돼지로 전락시키던 바로 그들.

죽음에 매겨진 점수
 
민주당 의원 워크숍 참석한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2019년 정기국회 대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인사한 뒤 나서고 있다.
▲ 민주당 의원 워크숍 참석한 조국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2019년 정기국회 대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 참석해 인사한 뒤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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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5사 내부 경영실적 평가 지표를 보면, 원청노동자가 사망하면 공식에 따라 12를 곱해 감점하는데, 하청노동자는 4를 곱해 평가점수를 깎습니다." 고 김용균 특조위 간사 권영국 변호사의 말이다.

공기업에서조차 사람의 목숨에 등급별로 점수를 매기는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 과정의 정의, 결과의 공정을 말한다는 것은 파렴치한 위선이다. 며칠 전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가 머리와 몸이 분리된 채 또 다시 죽어갔다. 조선업에서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자 중 하청노동자의 비율은 79.3%다.

원청에서 일하는 사람과 하청에서 일하는 사람의 목숨값이 12와 4로 매겨지는 현실이 달라지는 않는 한, 교육부가 아무리 신출귀몰한 방식으로 입시제도를 개혁해도, 오늘의 미친 교육환경은 달라질리 없다. 칸막이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엔 몸을 일으켜 분노할 기운도 없는 청년들의 트라우마도 치유될 길이 없을 것이다. 공기업이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해도 구경만하고 있는 법무부 장관이 사법개혁 같은 걸 이룰 가능성은 더더욱 없어 보인다.   

정당한 투쟁에 나선 노동자, 세상을 바꿀 지렛대

피케티는 그의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각 사회는 불평등을 정당화 하기 위한 자신들만의 이데올로기를 발명해내 왔으며" 오늘의 자본주의 착취구조가 한 줌의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피조물이라면, 인간은 얼마든지, 다수의 필요에 의해 또 다른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10대 청소년에게 내가 누군지,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코끝에 스치는 시큰한 바람을 맞으며 먼산을 응시할 한 줌의 시간도 허락치 않은 채, 끝도 보이지 않는 스펙 쌓기라는 게임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넣는 세상을 만든 사람들. 혁명을 꿈꾸지도 못하는 청년들의 무기력을 꾸짖는 대신, 그들은 지금이라도 그들이 만든 지옥의 틀을 뜯어고쳐야 한다.

3권 분립의 엄연한 구조를 탓하고, 여전히 강성한 자유한국당의 힘을 탓하며, 이룰 수 없는 개혁에 대한 핑계를 구하던 정부는 마침내, 그 유일한 적임자가 사법/검찰 개혁을 할 것이며 더불어,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듯하니 입시제도도 공정하게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그 효과가 언제쯤 나타날지 모르는, 제도의 개혁을 새삼 논하기에 앞서 눈앞에 현재진행형으로 펼쳐져있는 모순부터 해결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절대 다수가 중년 여성으로 구성된 1500명의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대법원이 부여한 막강한 정당성의 마패를 붙들고, 비굴한 공기업의 멱살을 잡으며, 대통령이 약속한 바 있는, '공기업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법원이 명한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다. 공정한 세상은 입시제도를 다시 건드리고 공직자들의 전횡을 벌할 또 다른 권력기구를 만드는 데서 이뤄지기보다, 일하는 사람들이 존엄한 존재로, 사람 대접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을 한구석에서부터라도 만들어 가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투쟁은 우리를 직접고용으로 가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11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 투쟁을 이기고 직접고용을 쟁취해야만 앞으로 우리 후세들에게도 비정규직 없는 좋은 세상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전기가 끊어지고 전원이 차단된 건물에서 흔들림없이 농성을 이어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다짐이다. 

1611년 광해군은 과거 시험 최종 관문에 오른 이들에게 직접 이렇게 책문한 바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한 나랏일은 무엇인가." 임숙영이란 자는 "나라의 병은 왕 바로 당신에게 있다"고 답했다. 임금의 실정을 비판하는 고언을 왕의 면전에 올렸으나 그는 병과에 합격하였다. 이것이 조선왕조를 500년간 지탱하게 한 저력일 터이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당신들에게 주어진 기본적 도리부터 행하시라. 이 나라의 가장 시급히 고쳐야 할 병폐는, 자신이 약속한 바를 실천하지 않고, 가장 기초적인 임무도 수행하지 않은 채, 세상을 개혁하겠다고 약속만 하는 권력자들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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