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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류석춘 교수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그러면서 류 교수의 발언 자체에 대한 비판에 더해 그의 과거 행적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가 어떠한 성향의 연구자였으며, 어떠한 방향으로 연구를 이어왔는지에 대한 분석이 더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류 교수의 과거 행적들로는 ▲ '안중근 의사 극우, 테러리스트' 발언(2006년 경향신문 좌담회 '진보개혁의 위기' 중)과 ▲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2003년 아시아연구기금 후원 한·일 밀레니엄 포럼) ▲ 아시아연구기금 사무총장(2004~2010), 뉴라이트 전국연합 대표 역임 경력 등을 들 수 있겠다.

그중에서도 아시아연구기금과 관련된 이력은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연구기금 설립에 돈을 댄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과 관련된 논란 때문이다. 이미 과거 몇 차례 아시아연구기금에 대한 추적보도(2015년 9월 2일 <주간경향>, '사회공헌 탈 쓴 일본재단과 연세대의 수상한 커넥션')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지만, 일본재단은 겉으로는 공익활동의 탈을 쓰고 안으로는 역사 수정주의와 내셔널리즘의 확대를 도모하는 우익단체라고 비판받아왔다.

이에 아시아연구기금이 일본재단의 우익적 방향성에 영향을 받는 것 아닌지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2003년 아시아연구기금이 후원한 '한·일 밀레니엄 포럼'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두둔하는 류석춘 교수의 발표문이 다루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의혹은 더욱 증폭된다.

이에 일본재단이 과연 어떠한 방향성을 가진 조직인지를 알기 위해, 그들이 한국에 조성한 자금과 조직, 관련 인물들에 대한 사항들을 분석해봤다.

일본재단 자금, 수백억이 한국으로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일본재단 건물(퍼블릭 도메인)
 일본 도쿄에 위치한 일본재단 건물(퍼블릭 도메인)
ⓒ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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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일본재단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일본재단은 총자산이 3000억 엔에 달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공익재단법인이다. 재단의 전신은 일본 정부가 관리하던 공영 경기였던 경정(보트 경주)의 사업권을 따내 그 수익금으로 운영하던 '일본선박진흥회'로, 사사가와 료이치가 설립했다. 

자산의 규모만큼 일본재단이 주관하는 사업 영역은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 만큼 방대하다. 기반사업이라 볼 수 있는 해양·선박 지원 사업에서부터 학술지원, 공익·복지·자원봉사, 해외 협력 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자금력을 토대로 일본재단은 세계 각지에 다양한 사업 자금을 조성, 기부 형태로 지원해왔다.

그중에서도 일본재단이 한국에 지원한 사업과 그에 따른 조성자금현황은 22개 사업, 17억 8600여만 엔(한화 약 200억 수준, 4일 환율 기준)에 달한다. 이 수치조차 2015년까지의 현황이다. 어떤 사유에선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재단은 2015년 이후 한국에 대한 사업 지원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관련 링크). 아시아연구기금 홈페이지 또한 2015년 이후의 지원사업이 공개되어 있지 않다. 
  
 일본재단 국가별 지원현황(일본재단 도서관)
 일본재단 국가별 지원현황(일본재단 도서관)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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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공개가 멈춘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 확인된 바 없으나, <주간경향>은 2015년 추적 보도 당시 일본재단의 설립자 사사가와 료이치가 A급 전범 용의자라는 사실과 함께 일본재단의 우익활동 전력, 아시아연구기금에 대한 일본재단의 영향력 등을 크게 부각한 바 있다.

아시아연구기금, 일본재단으로부터 영향력 없다?  

아시아연구기금은 1995년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과 연세대학교의 합의에 따라 설립된 재단법인으로, 설치기금은 일본재단이 제공한 10억 엔(한화 약 112억 원)을 기반으로 했다. 특히 일본재단의 '아시아연구기금 설치보고서'에는 당초 연세대학교의 자금 협력 요청이 있었으며, 이를 배경으로 공동연구기금이 설치되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관련 링크).

하지만 연세대 측은 2015년 <주간경향>에 대한 서면답변을 통해 "기금의 출처가 일본재단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재단과 법률적인 관계가 전혀 없는 완전히 독립된 법인체"라고 주장했다. "기금의 기본적인 활동에 대해서도 일본재단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쳐 아시아연구기금의 활동을 주도하지는 않는다"며 일본재단의 개입과 영향력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그런데 2015년까지 일본재단이 한국 단체에 지원한 사업현황표를 보면, 재단 측이 아시아연구기금에 지원한 내용과 금액이 기록돼 있다(관련 링크).
 
 일본재단이 한국단체에 지원한 현황, 붉은 박스는 아시아연구기금 관련 (일본재단 도서관)
 일본재단이 한국단체에 지원한 현황, 붉은 박스는 아시아연구기금 관련 (일본재단 도서관)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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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재단이 아시아연구기금에 지원한 사업현황 정리
 일본재단이 아시아연구기금에 지원한 사업현황 정리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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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재단 도서관 자료에는 ▲ 1995년 연세대에 설치된 아시아연구기금의 조성, ▲ 1987년 고려대에 설치된 영리더 장학기금에 대한 내역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특히 아시아연구기금에 대해서는 심포지움, 연구사업의 명목으로 2013년~2015년 사이 4회에 걸쳐 보조금을 지원했다. 보조금 총액은 2769만 3938엔, 아시아연구기금 조성기금 10억 엔까지 더하면 10억 2700만 엔 수준이다. 한화 약 115억928만900여 원에 달한다. 기금 설립 이후에도 별도의 심포지움, 연구사업 등을 위한 자금이 지속 유입됐다고 볼 수 있다.

일본재단이 아시아연구기금에 영향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정황 증거는 또 있다. 아래는 지난 2017년 6월 일본재단의 오가타 다케주(尾形武寿) 이사장이 <리베라루 인사이트>라는 일본 월간지 기고를 통해 언급한 내용이다(관련 링크).
 
필자는 서울에 본부를 둔 '아시아연구기금'의 일본 측 필두 이사를 맡고 있는 관계로 한국에도 많은 지인을 가지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 수준에서 이미 끝났다. 남아있는 것은 국내 문제", "서울 일본 대사관과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 위안부 동상을 두는 것은 국제법상으로도 문제가 있다"라는 목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것이 '정론(正論, 이치에 합당함, 기자 주)'이라고 생각하지만, 반일 앞에 결국은 "소리 없는 소리"로 끝났다.

일본재단의 이사장 스스로가 '서울에 본부를 둔 아시아연구기금의 일본 측 필두 이사'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시아연구기금에 대한 일본재단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힘들어 보인다. 더불어 이 인물은 '위안부'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한국의 태도를 문제 삼는 등 일본 우익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재단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의 망언

아시아연구기금을 설립한 일본재단의 성격을 더 깊게 들여다보려면 일본재단의 중추가 되는 인물의 성향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말할 것도 없지만 일본재단의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일본재단 회장 사사카와 요헤이다.
 
 (가운데)사사카와 요헤이 일본재단 회장(일본재단 홈페이지)
 (가운데)사사카와 요헤이 일본재단 회장(일본재단 홈페이지)
ⓒ 일본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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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자의 후손으로 일본재단과 그 계열사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사카와 요헤이는 <산케이 신문> 등 극우 언론,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과감히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블로그는 주된 의견 표출구라고 할 수 있는데 한 달에 약 20회에 가까운 게시글을 올리고 있다. '위안부' 이슈, 강제징용노동자 문제, 경제보복 국면 등 한국에 대해서는 강경하고 공격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아래는 지난 2017년 2월 24일 사사카와 요헤이 본인이 작성한 블로그 글의 일부다. 해당 글은 '위안부 동상을 둘러싼 수수께끼'라는 제목으로 올렸다(관련 링크).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서도 전부터 소박한 의문을 가져왔다. 동상은 어떻게 봐도 10대 초반의 소녀로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오해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각종 자료를 봐도, 그렇게 어린 '위안부'는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가운데, 문제의 소녀상은 2002년 6월 13일에 일어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으로 사망한 당시 14세의 두 여중생을 애도하여 만들어진 기념상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알았다. 동상은 사건 후, 민족미술협회에 소속된 부부에 의해 제작되어, 격렬한 반미투쟁 속에서, 미군기지 근처에 설치를 시도했지만 한국 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채 보존되고, 그것이 위안부 동상으로 사용되었다. 소녀상 옆에 의자가 있는 것은, 사건에서 희생된 또 한 명의 소녀가 여기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행히도 진위는 알 수 없다.

(중략) 위안부 소녀상은 이미 한국을 중심으로 50개 이상이 설치, 일본군이 소녀까지 위안부로 징용하고 있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고, 일본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전문가에 의한 제대로 된 조사를 하고,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면 공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효순이 미선이 사진과 위안부 동상의 얼굴 사진을 올리며)

미군 차량으로 인해 사망한 두 명의 사진.

위 돌아가신 사람과 (위안부 소녀상 얼굴이 -기자 주) 닮지 않았습니까?

 
 사사카와 요헤이 블로그(효순이,미선이 사진과 위안부 동상의 생김새를 악의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사사카와 요헤이 블로그(효순이,미선이 사진과 위안부 동상의 생김새를 악의적으로 비교하고 있다)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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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망언이다. 특히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과 연결시켜 의혹을 제기하는 것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한국 국민이 매우 슬퍼했던 '미군 장갑차 여중생 압사 사건'을 평화의 소녀상 설치라는 또 다른 주제와 연결해,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감정적이고 우발적인 현상으로 왜곡하려는 듯하다.

더욱이 사사카와 요헤이는 그와 관련된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불행히도 진위는 알 수 없다"며 무책임한 발언까지 하고 있다. 또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 중 10대 소녀들이 있었다는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보도가 넘쳐나는 상황까지 부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사카와 요헤이는 최근 <산케이 신문> 기고 등을 통해 "한국인은 만일 틀린 것이 있어도 명백한 증거가 아니면 스스로의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한다면서 한국이 "고자질 외교"를 통해 일본 비판을 전개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사사카와 요헤이라는 인물의 발언은 상당히 격하고 감정적이다(관련 링크).

독도에 대한 일방적 주장 펼치는 사사카와 평화재단

일본재단의 어두운 면은 더 있다. 바로 '사사카와 평화재단'이다. 이 재단은 1986년 일본재단 및 모터보트계(界)* 기부금을 통해 설립됐다. 설립자 사사카와 가문의 이름을 따온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일본재단 그룹에 속해 있으며 일종의 '계열사'라고도 볼 수 있다. 본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명예회장은 앞서 언급한 사사카와 요헤이 일본재단 회장이다. (*일본재단이 그 연혁에서 밝힌 것처럼, 일본재단은 모터보트 경정사업의 수익으로 성장했으며 사사카와 료이치는 1952년 '전국모터보트경주회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실상 모터보트계를 장악해 왔다)

2018년 대차대조표에 따르면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자산은 1400억 엔 수준에 달한다. 이들은 조직 목표로 국제이해, 국제교류, 국제협력을 통해 인류 복지와 건전한 국제 사회 발전에 기여, 세계 평화에 기여 등을 표방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표면적인 부분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들이 지원하는 사업 속에 녹아 있는 우익적 편향성과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움직임이다.

각종 사회공헌, 봉사, 기부에 초점을 둔 일본재단과는 달리 사사카와 평화재단은 그 움직임이 상당히 정치적이고 또 자유롭다. 이들은 안보 연구, 지역 연구라는 관점에서 다양한 국제 현안을 다루고 강연회나 세미나 등을 활발히 개최하는데, 한일 관계와 관련한 민감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영토와 관련된 부분, 즉 독도와 관련된 왜곡된 학술활동과 대외 홍보 추진이다. 사사카와 재단이 운영하는 별도의 자료센터도 있을 정도인데, 이 자료센터에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이 올라와 있다.
 
 사사카와 평화재단 독도관련 라이브러리
 사사카와 평화재단 독도관련 라이브러리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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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竹島 Facts & Figures>라는 별도의 정보 라이브러리를 개설,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영유권(법과 역사), 지리, 독도의 해양과 기상, 생태계, 산업, 환경 등에 관한 상당히 꼼꼼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나열해 놓고 있다.

물론 이는 일본 측의 일방적 주장이다. 이에 더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연구저널까지 간행하고 있어 일본 우익단체의 단순한 주장으로 넘기기에는 그 규모가 심상치 않다(관련 링크).

어렵지만 감시가 필요하다

사사카와 재단 외에도 일본재단과 연관을 맺고 있는 조직은 많고 그 관계는 복잡하다. 필자의 조사를 통해서도 일본재단의 실체를 깊이까지 파헤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그들은 스스로 사업을 정당화하고 합리적으로 잘 포장하고 있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일본재단 홈페이지만을 둘러봐서는 그들의 부정적인 측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일본재단으로부터 조성되어 한국에 들어온 자금 '모두가' 역사 수정주의에 이용된다고도 볼 수 없다. 한센병 환자를 돕는 사업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업을 목적으로 조성된 기금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된 부분까지 그냥 모른 척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편적인 조사를 통해서도 그들의 우익적 방향성이 드러나는 부분이 많다. 

류석춘 교수 사태로 불거진 아시아연구기금에 대한 비판은 일본재단의 실체를 좀 더 뚜렷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배후의 실체에 대해 조금 더 접근해야 한다. 과거 일본 도요타 재단이 뉴라이트계 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한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일본 우익계 자금이 학술계로 유입되는 현황을 예민하게 파악하고 조사해야 한다.
 
일본재단의 설립자 사사카와 료이치는

일본재단의 설립자 사사카와 료이치는 1899년 출생, 1930년대 침략전쟁 당시 일본에서 정치활동을 전개해 왔으며 파시즘,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국수대중당' 결성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왕 숭배, 일제의 침략전쟁(중국, 만주, 몽골 진출 등)을 지지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전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됐으나 이후 불기소, 석방됐다.

료이치는 석방 후에도 일본 정계에서 전범들을 지원하고 반공 활동에 매진하며 일본 우익의 실력자로서 그 지위를 유지했다. 특히 사사카와 료이치는 당시 정부가 관리하던 공영 경기였던 경정(보트 경주)의 사업권을 따내 그 수익금으로 일본선박진흥회라는 재단법인을 창설했다. 이것이 바로 현 '일본재단'의 전신이다.

일본재단의 현 회장인 사사카와 요헤이는 자신의 아버지 료이치가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긴 하지만 죄가 없음이 인정되어 석방을 받았음을 강조했다. 더불어 일본재단이 꾸준히 한국에 대한 기부를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2005.6.3. 사사가와 요헤이 블로그).

그러나 사사카와 료이치의 과오가 전혀 없다는 논리로는 볼 수는 없다. 사사카와 료이치의 석방은 전쟁 당시 수상이자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와 대립하는 입장에 섰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인정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일본 내 공산주의 세력을 견제한다는 목적에서 연합군에 협력적인 전범이 활용됐던 당시 상황들도 운으로 작용했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침략전쟁시기 전시 군수동원에 일조한 것으로 A급 전범 용의자가 된 기시 노부스케조차 죄가 없는 무결한 사람이 된다.(기시 노부스케는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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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니스트, 작가 한국 근현대사 및 일본 역사/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역사 팟캐스트 채널 <역사와 사람 이야기>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