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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결정된 업체가 있는 거 아니야?"
"업체랑 짜고 이러는 거 같아."
"관리소장이랑 동대표들 뭔가 있다."

  
아파트 주민 800명이 넘는 단톡에 이런 말이 올라왔다. 앞뒤 없이 누군가를 모함하는 이런 말이 점점 퍼진다. 올해 4월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폐쇄되었다. 안전검사에서 부적격판정을 받아서 조치된 결과다.

밖에 나가 놀아야 할 어린 자녀를 둔 주민들을 중심으로 원성이 터져나왔다. 동대표이자 아파트 공동체 활동을 하고 있는 아파트 감사가 놀이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을 벌여나갔다. 이 가운데 저런 말이 올라온 것이다.

실제 보았거나 앞뒤 인과가 명확한 합리적 의심이 아닌 '카더라, 아닐까' 하는 식의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면 사람들이 "진짜 뭐가 있는 거 아냐?"라고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거였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문제를 보면서 가짜뉴스가 어떻게 생산되고 퍼지는지를 목격했다. 실체 없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서동요>가 생각났다.

헌화공주를 취하기 위해 노래를 퍼트린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가짜뉴스 <서동요>. 헌화 공주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가짜 뉴스의 위력을 <서동요>가 잘 보여주지만 가짜 뉴스가 생성되는 데 어떤 심리가 작용하는지, 가짜 뉴스가 퍼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그림책 <근데 그 얘기 들었어?>에는 이 모든 게 나온다.

그림책 <근데 그 얘기 들었어?>가 알려준 '가짜뉴스에 대처하는 법'  
 
 '근데 그 얘기 들었어?' 밤코 글, 그림.
 "근데 그 얘기 들었어?" 밤코 글, 그림.
ⓒ 바둑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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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더지씨. 오늘 이사왔어요!

동물인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처음 보는 생김새의 등장인물이 두더지에게 인사한다. 두더지는 무당벌레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

"마을에 누군가 이사왔는데 네모난 몸 둥근 얼굴에 뾰족한 뿔이 났어!"

무당벌레는 버스정류장으로 날아간다. 정류장에는 토끼, 곰, 돼지, 코끼리, 오리가 서 있다. 무당벌레는 제일 앞에 있는 토끼에게 말한다.

"근데, 그 얘기 들었어? 마을에 누군가 이사 왔는데 네모난 몸 둥근 얼굴에 가시가 뾰족뾰족 돋았대!"

토끼는 곰에게, 곰은 돼지에게, 돼지는 코끼리에게, 코끼리는 오리에게 "근데, 그 얘기 들었어?"라고 운을 떼며 얘기를 전한다. 이 과정에서 이사 온 등장 인물은 점점 형태가 변한다.

네모난 몸에 뾰족한 얼굴이 됐다가, 몸이 뾰족한 산봉우리 같고 얼굴이 네모졌다가, 몸은 산만하고 이빨이 뾰족한 네모 얼굴까지. 이야기가 오리쯤 갔을 때 이사 온 인물은 이미 괴물이 돼 있었고, 오리는 모두에게 외친다.

"괴물이 마을에 이사왔다. 다 도망가!!"

정류장에 있는 동물들은 괴물이 마을에 쳐들어와 자신들을 잡아먹는 상상을 하며 공포에 떤다. 이때 저 밑에서 작은 목소리로 누군가 말한다.

"저, 저기, 저기요!! 제발... 내 얘기 좀 들어줘!!"

오늘 이사 왔다고 다시 말하는 앞에 나왔던 아이. 작아서 저 밑에 있는 그 아이는 개미였다. 이사 하느라 각설탕과 막대사탕을 들고 있었던 거다. 다시 버스정류장, 동물들이 "근데 그 얘기 들었어?"라고 말하는 거미에게 몰려든다. 개미에게 미안하다고 한 곰만 빼고. 

밤코 작가의 <근데 그 얘기 들었어?> 그림책 이야기다. 이삿짐 뒤에 있는 개미를 보지 못한 채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괴물을 만들어가는 동물들. 그림책은 동물들이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는 왼편에, 그 상상 속 인물은 오른편에 배치해 그림으로 보여준다.

마을에 괴물이 쳐들어 올 거라고 겁에 질린 동물들을 오른편 괴물이 왼편으로 넘어와 다 잡아 먹는 장면이 세 장에 걸쳐 진행된다. 가짜뉴스가 우리를 어떻게 공포에 몰아넣는지를 시각화한 작가의 재치가 기발하다. 

이사 온 인물이 괴물이 아니고 개미란 걸 알게 된 뒤 동물들은 무안해하지만 마지막에 거미가 "그 얘기 들었어?" 하니까 다시 모이고, "설마, 말도 안돼, 진짜?"를 내뱉는다. 이때 개미에게 "미안해"라고 말한 곰만이 소문이 만들어지는 동물들과 떨어져 있다.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다. 소문에 휩쓸리지 않는 방법으로 책을 든 곰을 보여주는 이 장면을 보며 무릎을 쳤다. 가짜뉴스에 대한 대처는 '알아보기, 깨어있기'라는 걸 작가가 책을 통해 이야기하는 점이 좋았다.

앞면지와 뒷면지도 재미있다. 앞면지에서 이삿짐을 든 개미를 보고 두더지가 처음 이야기를 퍼트리는데, 뒷면지에는 안경 쓴 두더지가 나온다. 도너츠 조각에 가려진 개미를 보고 "안녕하세요!! 개미씨!"라고 말하는 두더지. 일련의 사건이 눈이 어두운 두더지의 실수에서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두더지는 땅 속에 살기 때문에 시력이 나쁜 것과도 연결되어 재미를 더한다.

눈이 나쁜 두더지가 말한 걸 버스 정류장 동물 중 한 명이라도 말을 전하지 않았다면 개미가 괴물이 되고, 동물들이 공포에 사로잡힐 일은 없었을 거다. 두더지의 나쁜 시력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과정을 보면서 아파트 단톡의 가짜뉴스가 생각났다. 책을 보며 서 있는 곰처럼 휩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어땠을까?

SNS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 중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근데 그 얘기 들었어?"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솔깃한 이야기에 눈 돌리지 않고, 곰처럼 책에 눈을 두고 우직이 서 있어야겠다. 가짜뉴스가 퍼져 나가는 눈덩이를 멈출 수는 없어도 깨어 있으면 눈덩이 굴리는 데 손을 보태진 않을 수 있으니까.

근데 그 얘기 들었어?

밤코 (지은이), 바둑이하우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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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