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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허균을 가슴으로 만나 공명한 한 헌법학자가 허균을 세상으로 불러냈다. 허균의 글, 지인들, 그가 머물던 장소에서 그의 눈물과 고통, 환희와 좌절, 혁명의 불타는 심장을 느끼고, 공명하던 마음을 <400년 만의 만남>(문예미학사)라는 책으로 엮은이는 이지현 교수다.
 
 400년 만의 만남 헌법학자 400년 전 허균을 불러냐다
▲ 400년 만의 만남 헌법학자 400년 전 허균을 불러냐다
ⓒ 문에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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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학자가 왜 400년 전 비참하게 사지가 찢겨 죽은 허균의 삶에 천착하게 된 것일까. 사실 그이가 추구하는 삶 또한 많은 부분에서 허균이 꿈꾸던 이상과 닮아 있다. 허균은 인간이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인간 세상을 만들려 혁명을 꿈꾸고 실천하려 한 죄로 사지가 찢겨 죽었다. 그의 죽음은 개인의 죽임이 아니라 평등 세상,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으로 향하던 문이 닫혀 버린 사건이 됐다.

저자는 헌법학자로 대학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사람이고, 페미니스트며 문화기획자다. 그이 역시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이자 작은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가 지향하는 삶과 현실의 괴리감이 그이의 여린 마음을 모질게 후벼팠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 그이가 명상을 시작하고 고전 강독모임을 하더니 인도 기행을 다녀오고 사찰과 영산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단순히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방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이가 불경을 공부하고 도가와 논어와 맹자, 중국의 고전과 시를 공부한 것은 허균을 만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던가 보다. 그이가  운명처럼 허균을 만난 순간을 그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허균을 400년 만에 만난 것은 운명이었다. 댓잎이 푸른 울림으로 다가올 때 선계폭포 뒤, 정사암에서 그를 만났다. 그제서야 시간과 공간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 정사암에 누군가 놓아 둔 홍길동전은 그의 아득하고 진한 피울음처럼 전해져 왔다.. 허균의 마지막을 눈물로 슬퍼한 선계폭포 밑에서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허균을 만난 것은 축복이었고 하늘의 선물이었다."
 
그이는 그리움을 동력 삼아 눈물길을 달려가, 마음의 눈으로 허균을 만나고, 마음의 집, 생각의 집을 짓는다. 그의 숨결을 가슴으로 느끼고 영혼의 교감을 통해 시대를 뛰어 넘어 그의 실체를 고스란히 체화한다.

허균은 사랑 많은 이상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였고 페미니스트며 사회 개혁을 꿈꾼 불타는 가슴을 지닌 혁명가며 형식과 제도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주의자였다. 그이는 자신이 만난 허균을 시대와 철학과 문학, 법과 제도와 삶으로 버무려 때론 아름답게, 때론 절실하게, 때론 냉철하게 풀어낸다.

신분제 사회에서 여성과 서얼은 늘 그림자처럼 실체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허균은 그 모든 불평등에 맞서 서자 출신들, 기생, 괴팍한 천재 화가와 어울렸다. 그야말로 옛사람이 정도라 말한 길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그런 그에게 늘 비난과 야유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비난에 초연했다. 허균은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한 인격체인 우주아로, 자연인으로 살고자 했던 것이다.
 
마음 편하고 정신이 깨끗한 건
용렬하고 비루한 데서 온 것
형벌을 당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벼슬에서 쫓겨나도 슬퍼하지 않네
비방을 하든 욕을 하든
언제나 희희낙락
내 자신이 기리지 않으면
누가 너를 기려주랴
성옹은 누구인가
바로 나 허균이지. - 나에 대한 찬미 중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던 헌법학자가 비운의 천재 혁명가 허균을 400년 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 이유는 그가 꿈꾸던 평등 세상이 아직도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삶의 위기는 외부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자신의 삶이 외적 요인에 휘둘리는 것은 자신이 깨어있지 못한 탓이다. 400년 전 치열한 삶을 살며 깨어 새 길을 열려했던 허균처럼, 우리 역시 남의 길이 아닌 나만의 길을 걸어야 할 순간이다.
 
'옛길을 따르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 /서산대사

우리는 늘 남의 길만을 간다.
내 길을 걷지 못한다.
이제는 내 길을 가야 하는 순간이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깨어있는 민중에 대해 말한다. 천하에 두려워할 바는 깨어 있어 민중을 일깨우는 호민뿐이라고 말이다. 이기심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 깨어 있는 사람인 호민(豪民)이 필요한 세상이다. 

시대의 아픔으로부터 자신과 사회를 지켜내고 싶은 이들에게 허균과의 만남을 풀어낸 이 책을 권한다. 글의 자락마다 담긴 시와 사상을 소개하는 글들은 삶의 깊은 이해를 돕는 귀중한 자료이자 위로가 될 것이다.

400년 만의 만남 - 그리운 허균, 당신에게 보냅니다

이지현 (지은이), 문예미학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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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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