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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들, 유명한 미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일화, 그리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재능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기자말]
[기사수정 : 5일 오후 8시 44분]

위대한 화가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위대한 조각가 하면 미켈란젤로가 떠오른다. 우리가 미술사에서 배운 미술가들도 거의 대부분이 남성 미술가들이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루벤스, 마네, 모네, 고흐, 피카소, 로댕. 그렇다면, 여성 미술가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왜 미술사에서 사라졌을까? 여성은 남성에 비해 예술적 능력과 창조성이 떨어지는 것인가?

1971년, 린다 노클린(Linda Nocklin)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글에서, 미켈란젤로나 렘브란트, 피카소 같은 여성 미술가가 왜 탄생할 수 없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여성이 남성보다 예술적 재능이 뒤떨어져서가 아니라, 가부장적 사회제도와 교육체제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린다 노클린의 주장은 페미니즘 논의가 비로소 미술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오랫동안 미술사에서 여성 미술가들은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다. 린다 노클린이 말했듯이,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가 만들어낸 성차별적 가치관 때문이다. 미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여성은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지는 회화나 조각 훈련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고, 자수나 공예 등의 가정용품이나 실용적 생산품, 혹은 꽃 그림 수채화 등의 분야에서만 작업해야 했다.

이러한 소규모 작품들은 감정적, 장식적, 아마추어적인 '여성의 영역'으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미술의 최상위 자리에 군림했던, 위대하고 영웅적인 미술 장르인 회화와 조각은 남성의 영역이었다. 당연히 이러한 여성의 작품들은 남성의 회화나 조각 작품에 비해 열등하고 이류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훌륭한 여성 미술가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그들 중 수많은 미술가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권력을 장악했던 미술계에서 그들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기술을 가진 장인에 지나지 않았던 중세의 미술가 개념에서 천부적인 재능과 학식을 가진 존경받는 존재로 변모한 르네상스의 새로운 예술가상도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등한 존재로서, 예술에 있어서도 남성이 성취한 업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간혹 뛰어난 여성 미술가들이 등장하더라도, 그들은 예외적이며 특수한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은 당대의 대표적인 휴머니스트인 보카치오의 언급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여성을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고, 여성은 온순하고 정숙해야 하며 집안일에 능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믿기 어렵지만, 이런 사고방식이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여성관이었다. 이는 여성을 자연의 결점, 혹은 오류로 보았던 중세의 여성관의 연장이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도 이런 경향은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18세기의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계몽주의는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더욱 견고하게 했다. 자본주의는 바깥일을 하는 남성과 가정을 돌보는 여성이라는 역할 분담을 공고히 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 정신을 중시한 계몽주의는 남성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옹호하는 데 이용되었으며, 여성의 가치나 권리를 신장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루소는 여성들은 남성이 가진 지적 능력을 결여했으므로 공적 생활에서 떨어져, 가정에서 훌륭한 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기르는 것이 본분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식의 성차별적 가치관이 여성 미술가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축, 조각, 회화 등 위대한 미술은 남성만이 할 수 있으며, 여성에게는 초상화, 정물화, 자수, 공예 등이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 대부분의 여성은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이 허락되지 않았고, 미술가의 필수 요건인 누드 데생도 배울 수 없었다.

대부분의 유럽 도시에는 여성이 누드 데생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예술 길드나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 법까지 있었다. 중세나 르네상스의 대부분의 여성 미술가들이 화가의 딸이거나 화가 집안 출신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들은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작업실에서 미술 기법을 배울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세기와 20세기 초반까지도, 여성 미술가들은 당대의 주류 남성 미술가와 밀접한 개인적 관계를 기반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네의 제수로서, 당시 인상주의의 수장이었던 마네의 예술적 영향과 후원을 받은 모리조와, 드가의 오랜 예술적 동료로서 그의 도움을 받은 메리 카삿의 경우가 그 예다. 이렇듯, 여성 미술가들은 열악한 미술적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다.

그러면, 오늘날의 상황은 어떤가? 현대사회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여성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가 높아지고, 미술계에서도 과거에 비해 여성 예술가들의 활동이 활발하며, 그들의 작품들도 더 많이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예술가의 작품들은 남성 예술가의 작품에 비해 덜 주목을 받고, 미술관들에서 덜 전시되며, 더 낮은 가격으로 팔린다. 미술시장에서의 양성 불평등을 조사한 한 리포트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의 미술관 및 화랑에서의 남성 미술가 대 여성 미술가의 전시회 비율은 70:30이라고 한다.

미술사에서의 여성 소외에 대한 논의는 1985년 뉴욕에서 결성된 익명의 여성 미술가 그룹인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에 의해서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불이 붙는다. 게릴라 걸스는 거리 활동을 하거나 시위를 할 때 흉측한 고릴라 가면을 쓰고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렇듯 최근까지도 미술계에서 여성 미술가들의 위치는 참으로 초라했고,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물며, 여성의 사회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시대에, 여성들이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제약과 고난이 따랐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릴라 걸스 고릴라 가면을 쓰고 여성 미술가들의 권익을 위해 거리 활동 중이다.
▲ 게릴라 걸스 고릴라 가면을 쓰고 여성 미술가들의 권익을 위해 거리 활동 중이다.
ⓒ Aleph-Fa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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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걸스가 제작한 포스터 왜 여성들은 메트로폴리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발가벗어야 하는가?
▲ 게릴라 걸스가 제작한 포스터 왜 여성들은 메트로폴리턴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발가벗어야 하는가?
ⓒ biz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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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소홀히 하고 전시에서 누락시킨 미술관들도 차별의 미술사에 있어 암묵의 협조자였다. 그러나 이제 페미니즘 미술가 및 미술사학자들의 움직임에 부응하여, 미술관들도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베키오 궁에서 우피치를 거쳐 피티 궁까지 연결된 바사리 회랑(Vasri Corridor)에는 전시된 16세기에서 현재까지의 1700명의 유명한 미술가들의 자화상 중 단지 7%만이 여성 미술가들의 자화상인 이유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사리 회랑의 현실은 여성 미술가들이 전체 미술가의 7%만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활동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수십 년간 세계의 유명 미술관들과 페미니스트 미술사가들은 역사에서 그 이름이 자취를 감춘 위대한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발굴해내고 재평가하고 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는 두 명의 여성 미술가의 단독 전시회를 열었고, 루브르 박물관은 현대 여성 미술에 주목해왔다.

벨기에 앤트워프의 왕립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은 17세기 정물화가 클라라 페테르스의 단독 전시회를 기획했다. 그리고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의 '여성 미술가 단체'와 협력하여 역사에서 사라진 여성 미술가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되찾아 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술관들은 오랫동안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를 숨기고 부정해왔다. 그러나 전통에 뿌리를 둔 진부하고 보수적인 미술관들은 지금 서서히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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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속 천문학> 등 두 권의 책 출간을 앞둔 작가. 현재 브런치 작가로 미술에 관한 글과 영화 리뷰, 문화 예술,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http://omn.kr/1m0rs https://brunch.co.kr/@sjkim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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