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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미술사'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들, 유명한 미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일화, 그리고 역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재능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기자말]
15,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 등장해 중세의 신 중심적 가치관에 변화를 일으켰지만, 여전히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세속의 삶과 인간의 감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신, 원죄, 지옥, 징벌과 같은 종교적 개념들이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정신세계의 중심이었다.

여기 16세기의 한 도예가의 작품들을 보면, 종교적인 요소가 당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가를 느끼게 된다. 이 도예가의 이름은 베르나르 팔리시(Bernard Palissy)이다.     
  
   베르나르 팔리시의 도자기 접시
  베르나르 팔리시의 도자기 접시
ⓒ wikiw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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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중앙의 뱀을 위시해 물고기들, 초록색 도마뱀과 개구리 등 다양한 생물들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는 이 접시들에 포도와 복숭아, 사과, 체리 같은 우리가 좋아하는 맛있는 과일을 담아 먹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마치 이 접시를 만든 도예공은 지상의 식탐과 미각의 쾌락을 경계하고, 소박하게 먹고 마시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현대인은 이 독특하고 그로테스크한 도자기 접시 뒤에 숨겨진 정신적 배경에 낯설기만 하다. 이 접시들은 다분히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적 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우리는 그때만큼 '종교적'이지 않다. 대신에, 합리주의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세상을 보려고 한다. 또한, 세속적, 관능적 즐거움에 더 이상 죄의식을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생을 즐기며 살기 위해 몸을 가꾸고 맛있는 것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최근까지, 서양 문명권은 이브가 뱀의 유혹에 빠져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오랫동안 기독교의 원죄 의식에 강한 영향을 받아왔다. 서양 문화에서 뱀과 같은 파충류는 어둠과 죄악의 상징 같은 동물이다. 팔리시의 접시에 등장하는 달팽이, 개구리, 뱀, 도마뱀 등은 어둡고 습기 찬 세계에서 기어 나온 일종의 어둠의 자식들이다. 따라서 그의 도자기 접시들은 르네상스 시대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종교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레오나르도에 필적하는 르네상스 만능인

베르나르 팔리시는 프랑스의 신교도인 위그노(Huguenot) 도예공이다. 그는 식물들 사이사이에 뱀, 도마뱀, 개구리와 같은 양서류와 파충류, 어류, 갑각류 동물이 있는 큰 타원형 도자기 접시를 만들기로 유명하다. 여기 있는 동물들은 대부분 실물로서, 죽은 동물의 사체를 말려 주형을 떠 성형한 것이다. 여기에 다양한 색깔의 납 유약을 칠해 화려한 색채의 유희를 보여준다. 

팔리시는 중국 도자기에 매료돼 도자기의 유약과 굽기의 비밀에 대해 알아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한 세라믹 작품들을 창조해내게 된 것이다.

그는 유약을 발라 구운 도기가 왜 그렇게 광택이 나는지 궁금했고, 바로 유약의 비법을 밝혀내겠다는 욕구에 휩싸여 유약 성분을 분석하는 데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었다. 직접 가마를 만들어 연구하는 과정에서 전 재산을 탕진하기도 했다.

수없이 실패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를 반복한 후, 마침내 영롱한 색채의 유약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투박하고 둔탁한 도자기 스타일인 '러스틱 웨어(Rustic Ware)'를 발명했다.

이러한 그의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노력에 대해, 그의 아내와 주변 사람들은 그가 정신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는 도자기에 미쳐 있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도자기 제조에 빠져 오랜 시간 실패와 좌절을 맛봐야 했고, 신교도에 대한 프랑스의 종교 박해로 생을 마감했다. 종교개혁자 칼뱅의 가르침을 따르는 위그노였던 그는 구교로 개종하길 거부하다 바스티유에서 옥사했던 것이다.

팔리시는 지질학, 수문학 및 화석 형성 원리를 연구한 탁월한 자연 과학자이기도 했다. 당시 유행했던 연금술을 오랫동안 연구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과학적 지식을 소유하게 됐고 한다. 르네상스 전문 미술사학자 마틴 캠프는 예술과 과학의 교점에서 만들어진 미술의 역사를 연구한 저명한 학자이다. 그에 의하면, 팔리시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못지않은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졌고, 미켈란젤로를 뛰어넘는 치열한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났다고 한다. 

팔리시는 회화와 도자기 제조에서 지질학과 고생물학 등 자연사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문 지식을 갖춘 진정한 '르네상스 만능인'이었던 것 같다.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 못지않은 르네상스 천재형 인간이었지만 그들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했고, 도자기 업계에서만 전설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을 뿐이다. 

베르나르 팔리시 웨어

팔리시의 도자기들은 사실적인 형상과 섬세하고 풍부한 색상들의 향연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 세계의 수집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소장품 중 하나이다. 실제의 개구리, 뱀 등 양서류, 파충류, 갑각류 및 조개껍질을 점토나 석고로 주형을 뜬 후 형태를 얻어냈다. 그는 동물들의 생명을 제거해 도자기 속에 박제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접시 위에 영원한 삶과 생명을 불어넣은 셈이다. 그리고 접시들은 이 생물체들의 작은 우주가 됐다.
   
  베르나르 팔리시의 도자기 접시
  베르나르 팔리시의 도자기 접시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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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에서 보듯이, 그의 접시 위의 뱀이나 개구리, 물고기 등의 생물들은 마치 살아 있는 실물처럼 피부조직이 세밀하고 정교하다. 이렇게 세세한 피부조직까지 캐스트(주물)을 떠내려면 엄청난 인내와 기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가 어떤 방식으로 이 어려운 일을 해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와 식민지 개척의 여파로, 당대 유럽 지역에서는 외국의 이국적인 동식물들이 활발하게 유입됐다. 이로 인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연사 연구와 특이한 자연물, 생물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왕과 부유한 귀족들은 이런 자연물 표본들을 수집해, 자신의 사치스러운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그리고 금속 세공인들도 이런 자연물들을 사용해 금과 청동으로 화려한 장식품을 만들어 그들의 후원자의 수장고를 채웠다.

실제의 동식물 캐스트를 이용한 채색 도자기로 특징지어지는 팔리시의 도자기 양식은 그의 사후에도 많은 추종자들에 의해 프랑스에서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19세기의 도자기 양식 '팔리시 웨어(Palissy Ware)'의 탄생에 영향을 준다.

팔리시 도자기의 부활은 19세기 중반 유럽의 도자기 회사 '마프라(Mafra)'와 민톤사(Minton & Co)의 '빅토리안 마졸리카(Victorian Majolica)'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편, 그의 작품 중 일부는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및 클루니 박물관, 런던의 빅토리아 및 앨버트 박물관 및 영국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참고문헌]

Bernard Palissy - Wikipedia
Bernard Palissy, French potter & scientist - Britannica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sjkim138)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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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속 천문학> 등 두 권의 책 출간을 앞둔 작가. 현재 브런치 작가로 미술에 관한 글과 영화 리뷰, 문화 예술,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http://omn.kr/1m0rs https://brunch.co.kr/@sjkim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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