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우리는 '르네상스'라는 단어에서 무엇을 떠올리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우아한 모나리자, 완벽한 남성미의 대명사인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그리고 아름답고 성스러운 라파엘로의 마돈나, 아마도 이런 것들일 것이다. 그리고 중세의 암흑시대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휴머니즘이 탄생하고, 고대의 찬란한 문화가 재생된 시대라는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르네상스에 대한 개념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고정 관념이 100% 진실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니다. 어느 시대이든, 어떤 사회이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이 혼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와 다른 르네상스의 모습은 무엇인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거나, 음산한 종교적 신앙심을 표현하거나, 인간적인 격렬한 감정과 고통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르네상스는 고대 고전문명의 부활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세속적 욕망을 표현하고, 근대적인 이성이 싹튼 계몽의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이 시기의 많은 미술 작품들에서 질서와 균형, 조화를 이상으로 하는 그리스 고전문화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답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르네상스가 그다지 고전문명으로의 복귀에 충실했다거나, 또는 평온하고 이성적인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질서정연함과 거리가 먼 아주 거친 시대였고, 열정과 상상력, 어둠이 넘치는 시기였다.

또한, 대부분의 르네상스 미술 작품들은 여전히 독실한 가톨릭 신앙과 열정을 나타내려 했고, 세속적인 욕망의 상징인 비너스보다 성모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연옥과 지옥을 훨씬 더 많이 그렸다. 고대의 이상을 부활시키려고 한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등의 작품은 르네상스의 한 곁가지일 뿐이며, 그와 완전히 다른 르네상스의 다른 한 가지가 있었던 것이다. 

르네상스에 대한 완벽하고 이상적인 개념은 바사리의 미술비평으로부터 시작된다. 잘 알다시피,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200여 명의 삶과 작품에 대해 쓴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의 생애(Le Vita de'Piu Eccellent Architetti, Pittori, et Scultori)>로 알려진 최초의 미술 비평가이자 그 자신도 화가이고 건축가이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이 중세의 미숙한 미술로부터 진화했다는 식으로 생각했는데, 이는 사실주의 기법을 기준으로 미술사의 발전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원근법과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 최절정에 달했던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에 이르러 비로소 완벽한 미술이 탄생했다고 믿었다. 오늘날까지도 이런 바사리의 시각은 사실주의적인 그림이 훌륭한 예술이라는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르네상스 미술에서, 바사리가 언급한 피렌체 르네상스가 차지하는 부분은 전체 르네상스 미술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볼로냐 등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과 북유럽 지역에서 활동했던 많은 미술가들은 이러한 이상주의적인 고전 미술의 부활과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작품은 히에로니무스 보스처럼 중세적인 강한 원죄의식에 사로잡혀 있기도하고, 아르침볼도의 채소들로 구성된 초상화처럼 기괴하기도 하며, 델라르카의 울부짖는 성모처럼 격렬한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르네상스 시대라고 해서 어느날 갑자기 고요하고 이상적인 고전주의로 완벽하게 방향을 튼 것은 아니다. 이 시기는 오히려 중세의 어둡고 종교적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더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우리가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르네상스 미술의 이러한 어두운 측면을 갖고 있었다.

염세적 종말론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르네상스의 대표적 미술가로서, 완벽하고 이상적인 그림들을 그린 화가가 아닌가? 그러나 이른바 그의 '템페스트 드로잉'은 레오나르도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에 혼란을 준다. 그것들이 온통 뒤죽박죽의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 찬 그림이기 때문이다.

그를 존경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의 후원으로 말년에 안락한 생을 보냈던 레오나르도는 생계를 위해 제작하거나 팔 작품 대신, 순전히 자신이 그리고 싶은 작품들에만 몰두해 작업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의 말년은 염세적인 비관론으로 특징지어진다. 1517년에서 1518년경 그의 인생이 끝나갈 무렵에 그린 11개의 '템페스트 드로잉(Tempest drawings)은 그가 가진 '세상 종말의 비전'이었다. 이 반복되는 폭풍우 주제는 죽음과 파괴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이는 레오나르도가 이 세상을 곧 종말에 가까워지는 암울하고 어두운 것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르네상스에 대한 우리의 아름다운 환상을 깨는 이 어둡고 음울한 드로잉은 광대한 폭풍우에 압도된 풍경을 표현하고 있다. 사방에 갈퀴와 병, 농기구 같은 것들이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고 있으며, 견고한 모든 것들, 산, 요새와 갖가지 사물들은 홍수와 폭풍우에 의해 모두 산산이 부서지고 있고, 폭풍우 구름에서 시작되는 비와 나선형의 회오리 바람이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혹시 이 그림들은 과학 연구에 몰두했던 레오나르도의 자연 탐구를 위한 소묘가 아니었을까? 거센 바람이 나무들을 땅바닥에 쓰러트리고 말을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을 습격하는 허리케인의 드로잉을 보자. 윗부분에는 홍수가 남긴 온갖 잔해물로 가득하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허리케인으로 인한 전형적인 자연재해의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묘사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구름 속에 숨어 있는 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폭풍우와 바람의 신들이 사납게 물을 분출시키고 있으며, 왼쪽 작은 구름 속에는 천사들이 트럼펫을 불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도 트럼펫을 부는 천사들이 등장한다. 이것이 종말의 장면을 뜻하는 게 아니면 무엇일까?

드로잉의 한쪽에는 특유의 거꾸로 된 거울 손글씨로 '아담'과 '이브'라는 글자도 쓰여 있다. 아담과 이브는 기독교도들에게 있어 원죄의 상징이다. 따라서 아담과 이브의 원죄, 즉 인간의 원죄 때문에, 신이 폭풍우를 통해 이 세상을 끝나게 한다는 메시지를 언급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템페스트 드로잉들은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관심에서 나온 사실적 소묘라기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은유하는 것이며, 염세적 선지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템페스트 A Tempest, 1513-18, 종이에 블랙 초크, 펜, 잉크, 27 x 40.8 cm, 왕립 도서관, 윈저성
  템페스트 A Tempest, 1513-18, 종이에 블랙 초크, 펜, 잉크, 27 x 40.8 cm, 왕립 도서관, 윈저성
ⓒ Royal Collection Trust

관련사진보기

 
 
   그림 1의 세부. 폭풍우로 나무와 말을 탄 사람들이 땅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그림 1의 세부. 폭풍우로 나무와 말을 탄 사람들이 땅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다.
ⓒ Royal Collection Trust

관련사진보기

 
르네상스 미술 새롭게 보기

르네상스는 중세의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이행하게 했고, 인간에게 새로운 삶의 기쁨과 활기를 되찾아준 정신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히 르네상스는 인간의 역사에서 근대정신의 태동을 알리는 나팔수 역할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중세적이고 종교적인 특징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 시기에 그려진 대부분의 회화 작품도 마돈나와 아기 예수 혹은 그리스도, 그리고 성인과 성녀들을 그린 종교화나 제단화였다.

우리가 아는 르네상스는 전체 르네상스의 극히 일부분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의 최전방에 있었던 레오나르도 역시 이상주의적인 완벽한 르네상스 화가의 모습 외에, 뜻밖의 어둡고 음울한 중세적 종말론자이기도 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Leonardo da Vinci - A tempest - Royal Collection Trust <https://www.rct.uk>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미술관 속 천문학> 등 두 권의 책 출간을 앞둔 작가. 현재 브런치 작가로 미술에 관한 글과 영화 리뷰, 문화 예술,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http://omn.kr/1m0rs https://brunch.co.kr/@sjkim138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