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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구의원 선거가 범야권의 압승 결과로 나온 25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 앞에서 경찰의 봉쇄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의 구조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홍콩 구의원 선거가 범야권의 압승 결과로 나온 25일 오후 홍콩 이공대학교 앞에서 경찰의 봉쇄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의 구조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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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홍콩 시위를 아이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위의 현장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소식에 갑자기 이곳 광주의 아이들의 심정이 궁금해졌다. 지금의 홍콩은 1980년 광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뉴스를 여러 매체를 통해 그들도 이미 접했을 터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적어도 광주 사람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듣기만 해도 가슴 뭉클해지는 자랑스러운 역사다. 외국인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라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적 앞에 광주를 먼저 말하는 이유다. 5.18은 광주고, 어느새 광주는 민주, 인권, 평화와 동의어가 됐다.

광주에서 5.18과 8.15를 헷갈려하는 아이들은, 단언컨대, 없다. 어차피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라 6.25 전쟁과 5.18의 시대적 거리감은 큰 차이가 없을지언정,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이구동성 답한다. 광주에서 5.18은 '필수 교양'이라고나 할까.

기말 시험이 끝난 학기말 홍콩 시위를 수업 주제로 삼았다. 언제 어떻게 시작이 되었고, 그들의 주장과 요구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찾아보도록 했다. 그러다 보면 과거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절부터 이어져온 홍콩의 역사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지리적 환경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될 것이라 여겼다.

세계사나 세계지리에 젬병인 아이들조차도 홍콩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대강 알고 있었다. 수천 년 중국 역사를 통틀어 사실상 아이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사건이 아편전쟁인 까닭이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 하면 단박에 떠오르는 사건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아편전쟁이라고 답한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1842년 영국이 중국으로부터 빼앗아간 아편전쟁의 전리품. 아이들이 한 문장으로 정리한 홍콩의 역사다. 두 나라 간 조약을 통해 반환 시기가 정해져 1997년 다시 중국 영토가 되었고, 홍콩 시민들이 겪게 될 제도적, 문화적 충격을 완화시키고자 50년 간 '일국양제'를 도입했다는 정도로 요약해냈다.

홍콩 시위 역시 영국식으로 길들여진 시민들을 서둘러 중국화 시키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충돌이라며 간명하게 정리해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국이 사전 약속한 대로 50년이라는 말미를 기다리지 못하고 홍콩 시민들을 겁박한 것이라며, 모든 책임이 중국 정부에 있다고 명토 박았다. 중국을 두고 대국답지 못한 지질한 행태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았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었다. 비록 중국 정부의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홍콩 시민들을 두둔할 순 없다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힘으로 좌우되는 국제 질서가 엄연한 현실인데, 약소국의 비애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칫 홍콩 편을 들었다간 중국이라는 강대국에 해코지 당할 게 빤하다고 이구동성 말했다.

무자비한 공권력에 끌려가고 총격과 구타를 당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해도, 홍콩은 1980년 광주와는 상황이 아예 다르다고 억지를 부리는 아이도 더러 있었다. 철저히 고립된 채 불의한 권력에 시민 항쟁으로 맞선 광주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있는 홍콩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는 거다. 광주는 몰라서 못 도와준 거고, 홍콩은 알면서도 모른 채 하는 거라는 뜻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국제 사회에서 존재감조차 희박한 나라였으니, 지금의 홍콩이나 중국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광주의 상황을 알았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리라는 거다. 중동의 쿠르드족이나 아프리카의 소수 부족의 학살 사건에 둔감한 것도 다 그런 이유 아니겠느냐며 되묻기도 했다.
 
 9월 1일 홍콩 중앙정부청사 앞에서 5대 요구안 수용을 위해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 현장.
 9월 1일 홍콩 중앙정부청사 앞에서 5대 요구안 수용을 위해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 현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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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에 대한 해석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결론은 돌고 돌아 중국에서 멈췄다. 요컨대, 홍콩 시민의 요구는 정당하지만, 자타공인 세계 최강대국 중국에 맞선다는 건 무모하다는 것이다. 시위 주동자들은 처벌을 받고, 수많은 시민들이 좌절과 냉소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곧, 홍콩 시위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홍콩 시위를 주제로 한 수업은 적잖은 깨달음을 주었다. 교과서에서는 자유와 평등을 말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가르치지만, 정작 아이들의 판단과 선택은 애초 그와는 별개라는 점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요즘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시험을 치를 때는 이상에 동그라미치지만,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나 몰라라 한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 감각'이 두루 필요하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도,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것을 꿈꾸자'고 했던 체 게바라의 이야기도, 요즘 아이들은 죄다 이상보다는 현실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읽는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면 이상주의자고,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하면 현실주의자다. 이 둘의 경계는 제법 명확하다.

학교에서 20년 넘도록 아이들 앞에서 이상을 가르쳐왔다고 자부했는데, 되레 그들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거듭 났다. 물론, 그들을 나무랄 순 없다. 일개 교사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십여 년 간 받아온 학교 교육의 힘은, 아이들이 그동안 경험한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이라는 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오롯이 증명할 뿐이다.

홍콩 시위에 대한 아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침묵'이다. 지지를 표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경우라면 그저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수라는 뜻이다. 혈기 왕성한 세대답지 않게, 모르는 척 입 다물고 있는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중국에 대한 저자세를 아이들은 적극 두둔하고 옹호하고 나섰다.

듣자니까, 얼마 전 몇몇 대학생들이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 요구에 반대하며 주한 미국 대사관을 월담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비록 담을 넘은 행위 자체는 현행법 위반일지언정 정의감의 발로에서 나온 행동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들은 직접 실천으로 옮긴 것일 뿐, 솔직히 마음속으로야 당장이라도 달려가 담을 넘고 싶은 국민들이 대다수다.

그런데도 지엄한 국법은 그들을 잡아다 철창 속에 가두었다.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서둘러 구속시킨 것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대한민국 공권력의 가혹한 조치다. 오로지 미국의 심기를 경호한 과잉 대응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평등과 호혜를 바탕으로 유지되어야 할 동맹 관계를 오로지 돈으로 환산하는 미국 대통령의 행태에 우리는 언제까지 주눅이 든 채 굽실거려야 할까. 한낱 대사가 주재국의 대통령을 두고 종북좌파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망언에 또한 언제까지 관용을 베풀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저 냉혹한 국제 질서라고 눙치기에는 국가적 자존심에 난 생채기가 너무나 크다.

수업이 끝날 즈음, 맥락상 홍콩 시위와 유사하다 싶어 미국 대사관 월담 사건을 잠깐 소개했더니, 아이들은 뜬금없이 우리가 미국 앞에서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대꾸했다. 지는 해인 미국의 눈치를 살필 일은 얼마 남지 않았고, 앞으론 중국 앞에서만 납작 엎드리면 된다는 거다.

"어차피 중국이든 미국이든 우리에겐 동맹국이 아니라, 종주국일 뿐이에요. '미중 교체기'에 눈치껏 적절히 처신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냉혹한 국제 질서 속에 '처세의 달인'을 자처하는 아이들이 늘어만 가는 현실이 씁쓸하다. 미국 대사관의 담을 넘은 대학생들의 결기에 외려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다. 호혜와 평등, 공존과 상생을 외친 그들의 신념과 진심은 존중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더 많은 이상주의자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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