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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 한 해도 저물어 간다. 인생의 속도는 제 나이와 같은 속도로 달려간다는 말이 요즘 들어 부쩍 절실히 와닿는다. 큰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다니, 초등 생활도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재취업한 지 어느덧 3년을 채워가는 중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구인광고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여기저기 제출하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회 초년생의 마음으로 급여는 포기하되 무조건 집 근처 직장을 선택해서 동종 업무 부서를 희망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다. 애타는 마음으로 면접 요청 연락을 간절히 기다렸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 단절이 반복되었던 나는 늘 조급했다. 끊임없이 개정되는 세법의 흐름을 잃지 말아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공백기가 길어지면 그 감을 잃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늘 아이를 키우는 순간에도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묵직한 다짐이 나를 등 떠밀고 있었는지 모른다.

둘째 출산 후, 시어머님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육아휴직 후 복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다가 다시 나의 전공 업무로 돌아왔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나를 먹여 살릴 동아줄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말이다.

구인공고안과 실제 근무와 급여가 다른 이유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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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을 둔 아줌마가 설 직장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9시에서 6시까지 근무하는 직장을 원했으나, 면접을 보면 구인공고와 달리 고정으로 연장 근무 하는 회사가 많았다. 노동법상, 초과 시간에 대해선 연장 수당을 지급해야 하므로 구인사이트에서 급여 입력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급여에 맞춰 시간을 축소해서 게시했다고 한다. 이 면접을 준비하기 위해 아침부터 화장하랴, 정장 입으랴, 수선 떨며 집을 나선 들뜸은 서글픔으로 돌아왔다.

또 다른 직장에서는 여성 실장님과 면접을 봤다. 두 아들이 있다는 나의 상황을 확인하고선 애들이 아직 어린데 일을 하려고 하냐며 엄마로서의 나를 혼내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같은 여자임에도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하고 싶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어떤 의도로 압박 면접을 진행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동안의 면접 경험에서 '애 엄마'라는 핸디캡은 '아이 때문에' 퇴사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식이 팽배했고, 아이 때문에 일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는 이유는 당연한 논리로 여겨졌으니까.

사실, 다시 사회로 복귀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다. 빠른 년 생이라 일찍 공교육을 접했기에 이미 1년을 아껴뒀었고, 일과 학업을 동시에 진행했기에 제 나이에 비해 경력도 실속 있게 쌓았다고 자부했다.

업무 역량을 증명할 관련 자격증도 8개나 취득했기 때문에 사회로의 귀환은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결혼을 하면서 대구에서 부산으로 왔다. 이때 재취업할 때만 해도 수많은 면접에서 100% 합격 통보를 받은 과거는 이제 그야말로 소싯적 이야기가 되었다. 현실의 나는 그저 애 둘 딸린 아줌마였고, 재취업 문턱은 너무나도 높고 험난했다.

수많은 이력서 접수와 면접을 경험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면접이 있다. 면접 장소에 도착한 회사는 외관상 규모가 크고 건물 내부도 깔끔해 좋아 보였다. 한껏 부푼 마음으로 기대하며 면접장으로 향했다.
  
경험이 쌓인 면접이라도 여전히 긴장과 어려움이 반복되었다. 담당 면접관은 나의 이력서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찬찬히 훑어보더니, 이런 말을 먼저 꺼냈다.

"기존에 담당 직원이 현재 혼담이 오고 가고 있어요. 오랫동안 다닌 직원인데 여직원이 결혼하면 퇴사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에는 입사하면 회사의 전반적인 업무를 해야합니다. 일단 회계 업무보다는 그 외 다른 업무도 보면서요. 아! 1종 보통 운전면허증이 있네요? 그러면 트럭 운전도 할 수 있겠네요. 택배 영업소에 가서 물품 배달할 수 있겠죠? 우리 회사에 경차가 있긴 한데, 경차로 배달할 물품은 아니거든요. 트럭으로 운전해야 해요."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경력과 무관한) 배달 업무를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에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회사라고 알려놓고 실제로는 1시간 연장 근무 수당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근무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거다. 어차피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돌아온 사회여서 급여 욕심은 없었다. 그저 내가 잘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오전 8시에 출근하는 근무 상황은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나섰다. 다시 차에 돌아와 시동을 켜는 순간, 핸들을 붙잡고 그동안 면접 경험에서 쌓인 서러움과 서글픔, 나락으로 떨어진 자존감에 엉엉 울었다. 비 내리는 날에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종종걸음으로 나왔던 부푼 기대와 달리 위축된 마음으로 떠났다.

왜 워킹맘들이 출산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까지도 일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종전 회사에는 재무팀에서 전무님과 팀장님의 총애를 받고 근무했던 나였는데, 그 울타리를 벗어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은 사회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함양초등학교 입학식.
 2019년 함양초등학교 입학식.
ⓒ 함양군청 김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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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8일 KB금융경영연구소에서 발표한 '2019 한국 워킹맘 보고서'에 따르면 워킹맘이 퇴사나 이직을 고민하는 시기는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라는 이유가 50.5%로 가장 높았다. 그때문인지 2020년 개정된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경력단절 인정 사유에 '결혼'과 자녀교육'이 추가된다고 한다.

그동안 경력단절 여성의 정의에 임신, 출산, 육아만이 사유로 포함되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여성의 경력단절 인정 사유에 '자녀교육 및 결혼'이 추가되면서 기존 경력단절 여성 등의 재취업 지원과 함께 여성의 경력단절 예방과 창업 지원이 가능해진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재취업 기한과 대상기업이 '퇴직 후 3년 이상 10년 미만의 기간 이내 동일기업'에서 '퇴직 후 3년 이상 15년 미만의 기간 이내에 동일 업종 기업'으로 확대된다. 또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재고용할 경우 기업에 주는 세제공제 요건이 완화된다. 현재, 경력단절 여성들을 사회로 복귀시키기 위한 각종 교육 정책이며 지원금 혜택 확대 등 경력단절 여성을 우선적으로 채용한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었다.

이 반가운 소식을 들으면서도 나는 정말 가장 시급한 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교육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이다. 경력단절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인식 개선은 물론이고, 노동법 준수에 대한 기업 교육 또한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시대가 바뀌어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실은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는 기업들이 너무 많다.
  
올해 초, 현재 부서 내 신입사원 채용 시기에 면접관으로 참석했다. 3년 전의 나처럼 결혼과 출산, 육아로 포기했던 직업을 되찾으려는 여성들이 많았다. 정부 지원 교육 센터에서 관련 자격증을 새롭게 취득하고 준비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위축된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자리에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와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같은 반 엄마도 같은 시기를 견뎌와서 지금은 한 회사에 몇 년째 근무하고 있다. 나도 원하는 위치에 (집과 가까운 거리) 내가 잘 하는 업무를 맡아 근무하고 있다. 사회로 귀환하면서 신입의 마음가짐으로 포기했던 급여는 인정과 성과로 보상받고 있고, 그리고 가끔은 버텨내고 있다.
  
복직이든 재취업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응원하고 싶다. 경력 단절이 아니라 경력 이동으로 인식되는 대한민국 사회를 꿈꿔본다. 저출산 시대에 우리는 위대한 출산을 했으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은영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keeuyo) 및 브런치(https://brunch.co.kr/@keeuyo)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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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은 회계팀 과장, 부업은 글쓰기입니다.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특기로 되고 싶은 욕심 많은 워킹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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