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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이 단어는 주로 '없다'와 만나 분노로 이어지곤 한다. '염치 있는' 사람들을 만나본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염치'란 단어가 원래 갖고 있는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한다.[편집자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왕의 대역을 맡게 된 하선(이병헌 역)은 자신이 밥을 남겨야 수라간 궁녀들이 요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은 팥죽으로 됐다, 수라를 내가거라”라고 명한다. 실제 조선시대 양반들은 노비를 위해 밥의 1/3만 먹고 상을 물려줬다고 한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왕의 대역을 맡게 된 하선(이병헌 역)은 자신이 밥을 남겨야 수라간 궁녀들이 요기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은 팥죽으로 됐다, 수라를 내가거라”라고 명한다. 실제 조선시대 양반들은 노비를 위해 밥의 1/3만 먹고 상을 물려줬다고 한다.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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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염치는 나라의 '사유'이니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된다." (태종 10년, 1410)
"예의염치가 없사오면 사람이라 이를 수 없다." (세종 23년, 1441)
"선비 된 자가 염치가 없다면 그 다음은 볼 것도 없다." (성종 15년, 1484)
"염치가 있는 사람을 기용할 수 없다면 기용된 사람들은 반드시 염치가 없는 무리들일 것." (광해 즉위년, 1608)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염치'다. 염치가 없으면 사람도 아니라니, 조선시대에 염치는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일단 횟수부터 찾아봤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67번(국역) 염치가 등장한다. 중종실록에 232번 등장해 가장 많이 언급됐다. 정조실록에 138번, 광해군중초본에 119번, 명조·선조실록에 117번, 세종실록에 107번 올랐다. '예·의·염·치가 나라의 사유(四維)'라고 거론된 것도 158차례다. 예(禮)는 예절, 의(義)는 의리, 염(廉)은 청렴, 그리고 치(恥)는 부끄러움을 아는 태도를 각각 뜻한다.

'사유'는 중국 춘추시대 관자(管子)에 등장하는 말로, '예·의·염·치' 중 하나만 끊어져도 나라가 기울고 네 벼리(사유)가 모두 끊어지면 멸망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이 같은 사상은 조선시대 특히 강조됐다. 태종실록에 실린 '예의염치는 나라의 사유'라는 표현이 이에 해당한다. 즉, 조선시대에는 '염치'를 사람됨의 기본이라 여겼고, 그 기본인 '예의염치'가 무너진 사회는 멸망할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염치'를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을 지난 12월 26일 만났다. 이 소장은 "조선시대 시대정신이 염치"라고 규정했다. "유학자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철학이 '인의예지'인데 이 중 예가 '사양하는 마음'이고 거기서 비롯된 게 염치"라고 했다.

"조선시대 선비가 사대부 집에 손님으로 가서 밥상을 받잖아요. 그런데 밥을 다 먹어 버리면 '염치가 없다' 했습니다. 밥을 남겨야 종들이 먹으니까요. 사대부가 어느 집 종의 눈치를 보는 겁니다. 배가 너무 고프면 다 먹고 싶은 게 본능이죠. 그 욕망을 누르는 게 염치입니다. 그래서 보통 양반들은 밥의 1/3만 먹고 물려줬습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사양하는 것, 그럼으로써 '염치'를 갖는 것이야말로 짐승과 사람을 나누는 기준점이었던 셈이다.

"사회지도층의 염치 강조한 조선... 500년 왕조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12월 26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조선시대 시대정신이 염치”라고 말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12월 26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조선시대 시대정신이 염치”라고 말했다.
ⓒ 이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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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세우고 4년이 지난 태조 4년 1395년의 일이다. 대사헌 박경은 "사대부들은 경성에 거주하여 왕실을 호위하므로 과전(科田)을 주어서 염치를 기르게 했다"고 임금에 아뢰었다. '과전을 주어 염치를 기르게 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 소장의 해설이다.
 
"과전법은 땅의 소유권을 주는 게 아니고 땅에서 나오는 세금을 봉급 대신 가져가는 겁니다. '과전을 주어 염치를 기르게 했다' 함은 배고프면 염치가 없어지기 때문에 먹고 살 기본을 만들어 줬다는 겁니다. 국가 시스템을 짤 때 '안빈낙도'하는 성인(聖人)을 기준으로 한 게 아니라 착하려는 마음이 있는 보통 사람을 대상으로 시스템을 짠 거죠. 가난한 선비에게 염치를 가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봉급은 주면서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선비들에게 기본을 갖추도록 해준 것은 "사회 지도층에 염치를 훨씬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윗물이 청정해야 아랫물이 맑은 법. 이 소장은 "조선시대에, 법은 윗사람이 지키면 아랫사람은 지키게 돼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선비들이 자신의 염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은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남아있다. 사헌부·사간원의 '탄핵'을 받으면 그대로 사표를 쓰는 것도 염치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당시 탄핵은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다. 탄핵을 당했는데도 사표를 내지 않으면 '비루하다, 염치 없다'고 욕을 먹었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염치라는 게 사대부들이 벼슬에 나서고 물러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기준이 됐다"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염치'를 검색한 결과다. 국역으로 총 2067번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염치"를 검색한 결과다. 국역으로 총 2067번 등장했음을 알 수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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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과 한음'의 그 한음, 이덕형도 탄핵 당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광해 1년(1609) 영의정 이덕형은 왕에게 읍소한다.

"지난 해 의견을 진술하자, 대간들이 횡의(도리에 어긋난 의논)라 지목하며 심지어는 반복 무상(배반하였다가 복종하였다가 하여 그 태도가 늘 한결같지 않음)하다고까지 배척하여 추한 말로 비난하기를 끝없이 하였으니, 조정의 벼슬을 욕되게 한 신의 죄가 진실로 큽니다. 염치는 신 때문에 더욱 손상될 것이니... 삼가 바라건대 신의 보직을 체직(벼슬을 갈다)함으로써 공사를 온전하게 하소서."

한 마디로 '탄핵' 받았으니 나를 잘라달라는 거다. 광해가 이를 불허하자 이틀 뒤 또 상소를 올린다. 이때 또 '염치'를 언급했다. "예의염치는 나라를 유지하는 네 벼릿줄과 같다, 죄를 짊어진 사람이 모멸을 잊고 중책을 탐내 부임한다면 동료에게 수치가 된다. 지금의 대간이 자잘한 물의만 있어도 사직하고 직책에 나가지 않는 것은 그 체면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라고 했다. 염치없으니 날 좀 잘라달라 했는데 광해는 또 불허했다. 결국 이덕형은 광해 5년까지 영의정을 지냈다.

이 소장은 "신하가 사표를 내면 사안을 봐서 중하지 않다 하면 반려하는 게 임금의 염치였다, 아무 일 없이 사표를 내도 두 번은 반려했고 세 번째 사표 내면 진짜 그만두고 싶은가보다 생각해 수리할까 말까를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는 "선비들은 '사론(士論, 선비들의 공론)'을 법보다 무서워했다. 염치없는 행위를 하면 '사론에 저촉됐다'고 했는데 이를 감옥 가는 것보다 두렵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론에 저촉될까 두려워서라도 염치를 챙겼다는 것이다. 그만큼 타인의 비판에 민감했고, 따라서 그만큼 자신의 행동거지를 조심했을 터다.

제 역할을 못하는 자, 사양하는 마음이 없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자 모두 '염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때문에 이 소장은 "조선시대 500년 동안 권력형 부패가 크게 없었는데, 이 부패를 막는 기본이 염치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이 500년 역사를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염치' 덕분이라는 말이다.

절대 권력을 지녔을 것으로 생각되는 왕 조차도 '염치'의 규범 아래 있었다. 이 소장은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전제권력을 제한하는 장치가 많았다, 왕은 인사권도 마음대로 휘두르지 못했다"며 "아래에서 3명의 후보를 올리면 '낙점', 이름에 점을 찍는 방식으로 임금의 뜻을 밝혔는데 임금이 다 거부하고 자신의 의중에 있는 사람 이름을 대면 선비들이 '임금이 사심을 뒀다'며 물의가 일었다, 염치가 없다고 욕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응지상소도 '염치'의 일종이라고 봤다. 응지상소는 나라에 재난이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해결책을 구하는 왕의 명령에 관리나 백성이 답한 의견을 모은 글을 말한다.

"하늘이 임금에게 천명을 내려 대신 다스리게 했다고 여겼는데, 왕이 자기 사욕을 채우면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재해를 내린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재해가 발생하면 임금은 응지상소로 자기를 반성(수성)했고, 응지상소에 어떤 말이 있어도 처벌하지 않은 게 관례였습니다." 

'하늘의 뜻'을 믿었기에 왕도 스스로를 반성했다. 잘못을 되짚어봤고 자세를 낮췄다. 신하들의 '염치없다'는 직언을 흘려듣지 않았고 비판을 청해 들었다. '하늘'이라는 절대성 아래서 왕도 '염치'의 규범을 따랐다.

"깡패노릇하는 윤석열, 내로남불하는 조국... 모두 염치없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 '화기애애'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리는 임명장 수여식 전 차담회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 수석은 조만간 단행될 개각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다.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만난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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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현재 염치가 없어진 지 오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조선시대에 욕망을 제어하는 시스템이 훨씬 정교했다, 윤석열이 깡패 노릇을 하는데 예전 같았으면 의금부에서 체포해 감옥 갔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윤석열처럼 '선택적 수사'를 아예 못하도록 시스템으로 만들어놨습니다. 검찰이 조선의 사헌부 격인데 여기에만 수사권이 있는 것이 아니고 현 공수처로 볼 수 있는 의금부가 있고 형조에도 수사권이 있었죠. 만일 조선시대 사헌부가 이건 수사하고 저건 안 하는 식으로 했다면 의금부가 체포해서 (사헌부 수장을) 감옥에 가뒀을 겁니다. 지금의 검찰은 선택적 정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염치 있는 사람 찾기가 힘든 사회 아닙니까. 조국 전 장관도 비판받은 게 말과 행동이 달라서였습니다. 딸이 시험 안 보고 의학전문대학원까지 갔는데 스스로는 '평등사회·공정사회'를 얘기했으니까요. 염치라는 건 내로남불 하지 말라는 건데, 지금은 내로남불이 만연해 있습니다."
 

내로남불도, 선택적 정의 실현도 모두 '염치 없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진영 논리 양 극단이 모두 비판 받는 건 '그들만의 정의'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건 중간지대에 있는 거"라며 "서로 적당한 양보, '사양지심'을 통해서 사회가 좋은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기 건 하나도 양보 하지 않고 상대에게만 요구하니 그게 염치가 없는 거다, 역지사지가 안 된다"고 했다. "염치 없는, 짐승의 사회로 변한 거"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의 '시대정신'이라 할만큼 중하게 여겼던 '염치'가 꺾인 시점을 이 소장은 '일제 식민지배' 시기로 봤다.

"그때 모든 것들이 무너졌죠. 조선의 법률 체계를 모두 부인하고 일본이 강제로 독일법을 가져다가 적용시켰죠. 조선시대에는 개인의 재산권이 아주 잘 지켜졌는데 일제가 강제로 땅을 빼앗음으로써 그걸 무너트려버렸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거세게 일어난 것도 토지조사 사업이 1918년에 끝난 데 원인이 있습니다. 총독부 말뚝만 꽂으면 일본 땅이 됐으니까요. 그러니 들고일어날 수밖에요.

사회 기본 시스템이 모두 무너졌는데 일제 부역자들은 그 이후에도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니 염치가 지켜질 리가요. 염치가 없어지니 서로가 아귀다툼을 하는 겁니다. 염치 자체를 생각 안 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완충지대가 없어졌습니다."


이 소장은 낮게 한숨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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