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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실종 당시 20세)씨 실종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맨 왼쪽이 둘째형 노대영씨다.
 2019년 4월 4일 국회 정론관에서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실종 당시 20세)씨 실종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 맨 왼쪽이 둘째형 노대영씨다.
ⓒ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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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13일 오전 11시 30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실종·사망 사건이 많았다.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런 사건들을 조사해 은폐된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을 밝히려는 시도가 지속돼 왔다. 그러나 명확하게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가 처벌받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38년 전 실종된 서울대 법대생의 가족과 친구들이 정보기관에 진실을 밝혀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노진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가족·친구들 모임(노사모)'은 지난해 12월 28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에 '노진수 강제실종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접수했다. 

노진수(1962년생, 당시 만 20세)씨는 서울대 법대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982년 5월 22일 서울대 앞 자하연독서실에서 정보기관원으로 추측되는 낯선 남자들에 의해 연행됐다. 이후 38년이 지난 현재까지 생사와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노진수씨의 형인 노대영씨는 지난 10일 기자에게 "진수가 학교 다닐 때 기관원으로 보이는 남자 세 명을 따라 나갔다가 실종됐다는 내용을 담아 진정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노대영씨에 따르면, 최봉태 법무법인 삼일 대표변호사가 이석수 국정원 기조실장에게 해당 사건을 알리고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지난 2004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 2기는 국정원과 경찰청에 노씨 관련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이들 기관은 "노씨 관련 수사기록 및 자료가 없다"고 통보한 바 있다. 

이석수 실장은 '총풍'(1997년에 있었던 판문점 총격 요청 사건)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공안검사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의 처가 땅 특혜거래 의혹을 감찰하다가 우 수석의 반격으로 검찰수사를 받게 돼 자리에서 물러난 특별감찰관 출신으로 2018년 8월 국정원 기조실장에 발탁됐다.

이 실장에게 사건 조사를 요청한 최봉태 변호사는 지난 20여년간 강제징용·위안부·원폭 피해 등 일제 강제동원 관련 국내외 재판을 이끌어 왔다. 최 변호사는 국내외 법원에서 '개인 청구권 유효' 판결을 받아낸 바 있으며, 현재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노씨와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다.     

노씨는 1981년 1학년 과대표를 맡았고, 사법학과 내 사회참여적인 서클 '피데스'에 가입, 사회과학 세미나에 참여했다. 또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학생총회에서도 활동했다. 같은 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대동제 행사에서 촌극을 기획해 무대에 올렸고, 검은 리본을 만들어 강의실 책상 위에 놓기도 했다. 

진상규명 이뤄지지 못하고 38년 흘러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과 권고 2차 보고서'에 따르면, 노씨는 실종 약 5주 전인 1982년 4월 중순 고교 동기인 손아무개씨를 고려대 앞에서 만나 "미행당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에게 통상 월 10~20만 원의 생활비를 받았는데, 같은 달 초 어머니 최소선(88)씨에게 50만 원을 송금해달라고 부탁했다. 노씨는 실종 3일 전인 같은 해 5월 19일 서울 성동구에 사는 누나 집을 찾아가 5만 원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동안 노씨 가족과 친구들은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안해 본 일이 없다. 지난 2000~2004년까지 활동한 의문사위에 사건을 접수했지만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았다. 노씨 사건은 당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된 30건(총 조사건수 83건)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실종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고, 더 나아가 '공권력'의 행사로 사망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시 의문사위는 KBS <추적60분> 제작진으로부터 "국군 정보사령부 소속 설악개발단(HID) 공작팀원이었던 제보자 박아무개씨(1969~1972년 정보사 복무)가 1982~3년경 신림동 고시촌 앞에서 정보사의 지시로 노씨를 동료들과 살해한 후, 차량을 이용해 강원도 고성 소재 도원저수지에 수장시켰다"는 내용의 제보를 받기도 했다. 박씨는 당시 <추적60분>과 접촉해 이 같은 내용을 제보, 진술했으나 정작 의문사위엔 "돈이 궁해서 허위진술한 것"이라고 번복하면서 의문을 남겼다.  
  
이후 노씨 가족과 노사모는 지난해 4월 초 강나단 미국 변호사(법무법인 삼일)를 선임하고, 유엔인권이사회 산하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앞서 의문사위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더 조사해 볼 만한 여지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WGEID는 지난해 11월 초 "대한민국 정부의 사건 파악 내용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노씨 사건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했다. 유엔 진정은 노씨의 법대 동기인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의 건의로 이뤄졌다. 백 교수는 현재 WGEID의 위원 겸 부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도 노씨 사건을 지난 2000년 5~8월까지 총 10차례에 걸쳐 추적 보도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노진수씨 최종 목격자 독서실 총무를 찾아서 ). 노사모가 밝힌 바에 따르면, 노씨의 서울대 법대 1년 후배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사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클 피데스 활동을 함께했고, 노씨가 1학년 때 1년 휴학한 뒤 1982년 3월 복학해 82학번과 함께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조 전 장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학과 선배들과 해당 사건에 대해 협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장관 취임 35일 만에 사임하면서 사건과 관련해 재조사를 비롯한 여타 조치를 취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했다는 후문이다. 

이렇듯 가족과 친구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못하고 38년이 흐른 가운데 국정원이 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추정되는 노씨의 관련 자료(동향관찰 자료 등)를 내놓고 진실을 밝힐지 주목된다. 특히 노씨 가족은 현재 노씨를 납치·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사 소속 '설악개발단' 관련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있어 관련 자료를 국정원 혹은 정보사가 내놓을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제보나 양심선언이 꼭 나왔으면"
 
 2019년 11월 27일 서울시내 모 레스토랑에서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 송년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진수 실종사건 진상조사추진위원회’(가칭) 발족식이 개최됐다.
 2019년 11월 27일 서울시내 모 레스토랑에서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 송년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노진수 실종사건 진상조사추진위원회’(가칭) 발족식이 개최됐다.
ⓒ 김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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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해 11월 27일 서울시내 모 레스토랑에서 열린 서울대 법대 81학번 동기 송년회에서 '노진수 실종사건 진상조사추진위원회'(가칭) 발족식이 열리면서 동기들이 진상규명에 뜻을 모았다. 

이날 위원장으로 선출된 진상윤씨는 10일 통화에서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했지만 거의 결과가 없었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하자고 뜻을 모아 결성하게 됐다"면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선 목격자나 가해자의 양심고백이 나와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의문사위는 지난 2004년 조사 당시 노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자하연 독서실 총무를 수소문했으나 찾지 못했다. 또 노씨 가족과 추진위는 현재 노씨를 연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낯선 남자 3명의 양심고백을 기다리고 있다.  

이날 발족식에 참석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개별 입법 추진까지 노력해보자"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의원 역시 노씨와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추진위는 최 변호사를 비롯해 국회의원 동기들로 추진위원을 구성할 예정이다.

진상윤 위원장은 "진수는 사회성이 강하고 정이 많은 친구였다"면서 "이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열병을 앓듯이 노동문제 같은 사회 부조리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미행' 등 실종 전 특이 행적에 대해선 "미행을 당했다고 하면 형사들 생각에선 진수가(운동권 및 재야 인사들과) 특별한 커넥션이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진수만 미행하면 (수배자 행방 등) 상당한 정보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면서 "당시 상황에선 진수가 요시찰·요주의 인물로 명단에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밝혔다.  

노씨 형 대영씨도 "어머니가 올해 88세시고, 큰형이 경북중학교 3학년 때 유리창을 닦다가 2층에서 떨어져서 죽었다. 형의 죽음을 밝히겠다면서 법대에 갔기 때문에 사랑하는 내 동생은 없어질 애가 아니다"라며 "기관원이 안 데려갔으면 아직도 살아 있을 애"라고 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지금 안되면 영영 못 밝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제보나 양심선언이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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