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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하는 해리 해리스 미 대사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20 한국이미지상 시상식'(CICI Korea 2020)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 축사하는 해리 해리스 미 대사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20 한국이미지상 시상식"(CICI Korea 2020)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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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사실상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다. 외교관이 주재국 정상의 발언을 문제 삼는 것은 금기 사항인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14일 신년 기자회견 발언까지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제재 범위 내에서도 남북 간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개별 관광은 국제 대북제재에도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제연합(UN)의 대북제재 범위 내에서 북한 관광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해리스 대사는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게 낫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제재 범위 내에서'라고 말했는데도 그는 '제재를 촉발할 수 있다'며 우회적으로 경고했다.  (관련기사: 해리스 주한 미 대사 "남북 협력, 미국과 먼저 협의해야"

거기다 남북협력에 대해 한·미 실무진 협의를 먼저 거쳐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미국과의 우선 협의를 주문한 것이다. 이는 대사가 아니라 총독 수준의 발언이다.

해군 사령관 출신 해리스, 왜 한국으로 왔을까?
 
문 대통령,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신임장 제정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서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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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의 과도한 언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뒤에는 회담 참석자들을 불러 회담 뒷이야기를 캤다. 작년 9월에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현 정부가 종북좌파에 둘러싸여 있다는 보도가 있다"며 문재인 정권을 향한 의중을 드러냈다.

작년 11월 7일에는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을 대사관저로 불러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요구했다. 그해 11월 19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 출연한 이혜훈 의원은 해리스와의 30분간 대화에서 분담금 인상 요구를 20번 정도나 들었다고 한다.

해리 해리스는 1956년 8월 4일 요코스카 주일미군 해군기지에서 일본인인 후미코 해리스와 미 해군 준위인 해리 빙클리 해리스 시니어 사이에서 출생했다. 22세 때인 1978년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군 조종사를 거쳐 해군참모차장, 6함대 사령관, 합참의장 보좌관,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거쳐 2018년 7월 7일 주한대사로 부임했다.

일본·바레인·이탈리아 등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사막의 방패 작전, 사막의 폭풍 작전, 아프가니스탄 침공작전, 이라크 전쟁 등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다. 하버드대학·옥스포드대학·조지타운대학에서 행정학·국제정치학·안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북한과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 입장을 갖고 있다.

2017년 12월 이후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해 제1주적을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공식 변경하고, 중국에 대한 압박을 전 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 비슷한 시점부터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 기조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미국의 세계전략과 동아시아 전략이 이렇게 급변하는 시점에, 해리 해리스가 주한대사로 투입된 것이다.

정치적 급변 시점에 외교관이 교체될 때는 다 이유가 있다. 전략적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에 신임 대사를 파견할 때는, 그 대사에게 원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냈다. 이로 인해 일본의 입김이 뜨거워지던 1895년, 고종과 명성황후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 했다. 일본보다 강한 러시아가 조선을 장악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일본은 '주한공사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학자이자 외교관 출신인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를 불러들이고 예비역 육군 중장인 미우라 고로를 새로이 파견했다.

미우라 고로(1846~1926년)는 1868년 이전의 무신정권인 도쿠가와 막부(에도막부)를 타도하는 데 가담했다. 기존 권위를 타도해본 경험이 있는 그를, 일본은 1895년 8월 17일 주조선 공사에 임명했고, 그는 9월 1일 조선 수도 한성에 왔다. 그리고 10월 8일, 일본군과 일본 낭인(로닌)들이 경복궁에서 명성황후를 시해했다(을미사변). 이로써 조선 정국은 다시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

참고로, 상당수 서적에 '을미사변이 1895년 8월 20일 발생했다'고 적혀 있다. 8월 20일은 음력이므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1895년 10월 8일이다. 일본 정부가 학자 성향의 공사를 불러들이고 쿠데타 경력이 있는 군인 출신을 파견한 이유가 짐작 가는 부분이다.

존 무초와 제임스 릴리
 
 김구 암살 2개월 전인 1949년 4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증정하는 존 무초(왼쪽). 위키백과
 김구 암살 2개월 전인 1949년 4월 20일 이승만 대통령에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증정하는 존 무초(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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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격변기에 외교대표를 교체할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점은 주한미국대사 파견의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초대 주한미국대사인 존 무초(John Joseph Muccio, 1900~1991)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들 수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하고 1921년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한 무초는 1923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했다. 독일, 영국령 홍콩, 중국, 파나마, 쿠바에서 서기관이나 영사로 근무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막판인 1945년 4월 유럽점령군사령부의 독일 정치고문관이 됐다.

1946년부터 국무부에서 동북아 사무를 관장한 무초는 48세 때인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 직후에 주한미국특별대표로 임명됐다. 대한민국에 대한 미국의 정부 승인이 이뤄지지 않은 시기라서 대사가 아니라 특별대표로 임명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사나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4월, 그는 정식 대사가 됐다.

무초가 특별대표로 파견된 시점에서 한미관계의 최대 현안은, 미군정청 사무를 대한민국정부에 이관하는 것이었다. 3년간의 미군정 활동이 대한민국정부로 잘 계승될 수 있도록 하는 게 특별대표의 최대 과제였다.

이런 시기에 무초가 발탁된 배경이 '트루먼 도서관' 홈페이지(trumanlibrary.gov)에 실린 무초와 제리 헤스(Jerry Hess)의 인터뷰에 담겨 있다. 역사가인 제리 헤스에 의해 1971년 2월 10일 작성된 '존 무초, 구술 역사 인터뷰, 1971년 2월 10일(John J. Muccio Oral History Interview, February 10, 1971)'에 따르면, "당신이 이 특별한 위치에 발탁된 이유에 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무초는 이렇게 답변했다.

"글쎄요, 나는 꽤 오랫동안 부서(국무부 지칭)에 근무했거든요. 그때까지도 독신이었고, 꽤 건강했어요. 의심할 여지 없이 상하이와 중국 여타 지역, 독일, 파나마에서 얻은 경험이 핵심 요인이었죠. (중략) 합중국 군대와 오랫동안 함께한 경험이 내가 발탁되는 데 영향을 줬죠."

국무부 경험, 독신, 건강, 중국·독일·파나마 경험에 더해 미군 활동 경력이 임명 배경이 됐다고 무초는 말했다. 제2차 대전 막판에 유럽점령군사령부 정치고문관으로 일한 경력이 고려됐다는 것이다. 이 경력이 미군정을 대한민국정부로 연착륙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란 판단하에 미국 정부가 자신을 파견했을 거라고 해석한 것이다.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필리핀에서 민주화 열기와 반미운동이 고조되던 1986년, 미국 정부는 제임스 릴리 전 중앙정보국(CIA) 중국지부장을 주한미국대사로 임명했다.

아버지가 미국 석유회사의 중국지사 간부였던 이유로 1928년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출생한 제임스 릴리는 1940년 미국으로 이주해 예일대학을 졸업한 뒤 CIA 동아시아 요원이 됐다. 1979년 CIA를 은퇴한 뒤에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안보보좌팀에 근무하다가 타이완미국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1986년 시점에 미국이 그를 한국에 파견한 이유는 그의 회고록인 <중국통(Chinese Hands)>에 소개된 상원 인준청문회 장면에 묻어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의 주한대사 후보자 인준청문회에서, 훗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국무장관이 될 존 케리 민주당 의원이 "지금 한국에서 무엇이 우선이라 보십니까? 안보입니까, 민주주의입니까?"라고 질문했다. 주한대사에게 필요한 상황 인식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이 질문에 대해 릴리는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한국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를 무엇보다 바랍니다. 하지만, 우선 우리는 북쪽 방어지대를 튼튼히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한국을 지원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시켜야 합니다."

민주주의보다는 안보가 중요하고, 지금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원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식으로 미국의 지원 의사를 표시할 것이냐?'고 묻자, 릴리는 전두환 정권에 대한 레이건 행정부의 지원을 거론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했는데도 레이건이 백악관에 초청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그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두환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통해 민주화운동과 반미운동에 제동을 걸고, 필리핀 피플파워가 한국에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던 제임스 릴리를 한국에 보냈다는 것은 당시의 미국이 한국 민중의 정치적 기운을 억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1987년 6월항쟁으로 그 의도는 실패했다.

폼페이오의 의중은?
  
취재진 질문받는 폼페이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돈 쁘나뭇위나이 태국 외무장관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 취재진 질문받는 폼페이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019년 8월 1일 오후(현지시간)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돈 쁘나뭇위나이 태국 외무장관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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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정간섭 논란의 주역이 된 해리 해리스는 원래 한국이 아닌 호주로 갈 사람이었다. 2018년 2월, 그는 호주대사로 내정됐다. 말컴 턴불 호주 총리는 그의 내정을 반기고 그를 호주로 불러 주호주미국대사관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호주로 가야 했던 그가 한국에 오게 된 것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때문인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2018년 4월 국무장관에 임명된 폼페이오가 그를 강력히 천거하여 그의 보직을 주호주대사에서 주한대사로 바꿨다는 것이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과 호주는 중요한 지역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태평양함대 사령관을 지낸 그가 호주에 가는 것도 괜찮고 한국에 가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한국에 보낼 경우에 특별히 생기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은 대북·대중국 강경론자인 그를 한국에 둠으로써 표면적인 북·미 평화 국면 속에서도 긴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 등 동아시아의 냉전 구도를 통해 금전적 이익을 얻는 미국 군산복합체를 안심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또 인도·태평양전략을 통한 대(對)중국 압박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법도 된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훈풍이 부는 상황에서 해리스가 주한대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이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한반도 평화 정착에 혼신을 다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리스의 위험한 발언은 그 자신의 직설적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는 미국 정부의 의중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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